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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행진하는 군인들의 퍼레이드



처음 열리는 9·28 서울 수복 기념 시가행진…

반북·반공 의식 고취하려는 구시대적 사고가 만든 이상한 국군의 날 행사
등록 2010-09-30 06:10 수정 2020-05-02 19:26
문민정부 이후 5년 주기로 규모를 축소해 열렸던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이명박 정부 들어 2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됐다. 2008년 10월1일 국군의 날에 서울 테헤란로에서 벌어진 퍼레이드.한겨레 김정효 기자

문민정부 이후 5년 주기로 규모를 축소해 열렸던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이명박 정부 들어 2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됐다. 2008년 10월1일 국군의 날에 서울 테헤란로에서 벌어진 퍼레이드.한겨레 김정효 기자

9월2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군인들의 시가행진이 시작된다.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행렬이 이어진다. 9·28 서울 수복과 10월1일 국군의 날을 통합해 기념하는 행사다. 한 달 전부터 정부는 “어느 때보다 성대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홍보해왔다.

육·해·공 사관생도와 3사관학교 생도, 국군 의장대, 6·25 참전 7개국 군악대, 국내외 참전용사 등이 시가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광화문광장과 시청 앞 서울광장 일대에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만든 ‘명품 무기’의 축소 모형이 전시된다. 행사를 주관하는 보훈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청와대·국방부 등과 마지막까지 조율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내용은 이미 시민에게 공개됐다. 지난 9월15일 F15K, F4, F5 등 공군 1개 편대가 서울 노원·성북·중랑·종로·서대문구 일대 500m 상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9·28 행사 축하 비행을 위한 사전 답사였다. 영문 모르고 깜짝 놀란 시민이 적지 않았다. 이후에도 전투기들의 ‘저공 답사’는 간간이 이어졌다. 행사 당일에는 31대의 전투기가 참여할 예정이다. 공군 전투기들이 서울 도심에서 저고도 비행을 하는 것은 1999년 공군 창군 50주년, 2008년 건군 60주년 행사에 이어 세 번째다.

왜관에서 서울까지, 재현되는 6·25

이례적인 일은 더 있다. 9·28 서울 수복을 정부가 나서 기념하는 것부터 처음이다. 1950년 9월28일은 북한 인민군에 점령된 서울을 한국군·유엔군이 되찾은 날이다. 서울 수복의 주력이던 해병대 차원에서 그동안 기념행사를 치렀는데, 올해는 정부가 직접 주관한다. 공식 기념식을 경복궁에서 열고 뒤이어 도심 행진을 펼친다. 국방부는 “대신 국군의 날인 10월1일에는 따로 행사를 치르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9·28 서울 수복 기념행사라는 꼬리표를 붙이긴 했으나, 서울 도심의 군인 행진도 이례적이다. 군사정권 시절, 매년 국군의 날마다 열리던 군인들의 서울 도심 행진은 김영삼 정부 이후 5년마다 한 번씩,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해에만 그 규모를 축소해 열렸다. 노무현 정부 때는 2003년 성남 공군기지에서 경축행사를 열고, 광화문 일대에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되돌렸다. 2008년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선진정예강군 출정식’을 열었고, 뒤이어 강남 테헤란로에서 대대적인 시가행진이 펼쳐졌다. 서울대생 강의석(24)씨가 “전쟁을 반대한다”며 알몸으로 군인들의 행진을 막아선 것도 이때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축소됐던 시가행진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며 “한국형 전차 등 첨단 무기 20여 종을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크게 홍보했다.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가했다.

국군의 날 행사를 겸한 이번 9·28 행사는 ‘건군 60주년’을 기념한다며 성대하게 열린 2008년의 군인 시가행진 이후 2년 만에 치러진다. 기념식, 문화행사, 무기 전시, 시가행진 등의 기본 뼈대는 2년 전과 비슷하다. 20년간 ‘5년 주기’를 지켰던 서울 도심 군인 행진의 간격도 그만큼 단축됐다.

이례적인 행사의 배경에는 ‘6·25 전쟁 60주년 기념 사업’이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6·25전쟁의 실상에 대한 이해와 안보 의식 고취 △국내외 참전 용사들의 명예 고양 △참전국과의 안보협력 관계 발전 등을 목표로 ‘6·25 전쟁 60주년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여러 사업이 있지만 각종 ‘전승 행사’가 두드러진다.

지난 9월3일, 경북 왜관철교 아래서 낙동강 전투 전승행사가 열렸다. 군인 500여 명이 모의탄을 동원해 당시 전투를 ‘실감 나게’ 재연했다. 9월15일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서는 한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의 해군함정 12척, 한국 공군 KF16 전투기 편대, 한·미 해병대 장병 200명 등이 참가한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로 인천상륙작전을 재연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한·미 해군·해병대 등 800여 명이 참가한 행진이 인천 도심에서 열렸다.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지금 한국에선 9월 초 국군이 낙동군 전선을 사수하고, 곧이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드디어 9월 말 서울을 되찾는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이 하나하나 재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방을 돌았던 그 현장이 9월28일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다. 국군의 날 대신 9·28 수복에 방점을 찍은 이유다.

사라진 국군의 날 변경 논란

그러나 김환영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은 “9·28 서울 수복 등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이면에는 대한민국 군대의 정체성이 북한과 맞서 싸운 데 있다는 낡은 생각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논란’을 대표적 예로 들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6·25 60주년을 기념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국내 첫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고 그의 회고록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올해 들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미흡하다”며 태도를 바꿨다. 여론 수렴 결과,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백선엽은 만주 군관학교 졸업 뒤 조선인 항일유격대를 소탕하는 간도 특설대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한국군 참모총장까지 맡았다. 김 사무처장은 “친일을 했어도 상관없고 오직 북한군과 싸워 이긴 것이 중요하다는 우리 군 수뇌부의 정서가 ‘백선엽 원수 추대론’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2008년의 건군 60주년 기념 행사보다 더 성대한 측면이 있다. 반공·반북 의식 고취에 초점을 맞춰 대한민국 군대를 조련하려는 행사가 1년 내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제기되던 ‘국군의 날 변경론’은 6·25 재연의 분위기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 2006년 9월, 민족정기의원모임·민족문제연구소·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으므로,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 창설 기념일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를 통해 일제 잔재와 군사독재의 오명으로 얼룩진 국군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군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국군의 날이 10월1일로 제정된 것은 1956년 9월14일이다. 미 군정 아래서 국방사령부가 설치된 날(1945년 11월13일), 남조선 국방경비대가 창설된 날(1946년 1월15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설치된 날(1948년 8월15일), 국방경비대가 국군으로 정식 편제된 날(1948년 9월1일) 등과 아무 관련이 없다.

10월1일은 6·25 전쟁 때 육군 3사단 병사들이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이다. 이승만 정부는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해 국군의 날을 제정했다. 그 전까지 각 군에서 치르던 육군기념일(10월2일), 해군기념일(10월11일), 공군기념일(10월1일) 등도 모두 통합했다. 이 때문에 “국군의 연원과 전통·정신을 기리는 날로 보기엔 의미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비준된 날(1953년 10월1일)을 기념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시 민족정기의원모임 소속으로 관련 결의안을 추진했던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임정의 군대인 광복군까지 계승하고 있으므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당시 시국이 혼란스러워 국회 결의안 추진을 미뤘다가 이후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이런 노력을 이번 국회에서 이어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초라한 광복군 창설 70주년 행사

광복군 창설일은 1940년 9월17일이다.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김구의 주도 아래 지청천을 사령관으로 임명해 광복군이 만들어졌다. 2010년은 6·25 발발 60주년인 동시에 광복군 창설 70주년이기도 하다. 지난 9월17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광복군 창설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황의선)가 주관했다. 9·28 수복 행사를 주관하는 보훈처의 김양 처장, 명예원수로 추대될 뻔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도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그 규모와 내용은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북진한 일을 기념하는 행사에 비할 바 없이 소박했다.

김환영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반공을 내세워 군의 ‘정신전력’으로 삼았지만, 오늘의 젊은 장병들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광복군이 우리 군의 뿌리임을 분명히 하면, 대한민국 군대의 새로운 정신전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사 북한이 무력을 쓴다 해도 “민족군대의 정통성을 잇는 우리 젊은 군인들이 민족 공동체에 대한 배신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공 의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런 충고에 아랑곳없이 이명박 정부는 9월28일, 국군의 날 기념식을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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