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양한 ‘진보’가 등장하고 있다. 손학규·정세균·정동영(왼쪽부터) 등 이른바 ‘빅3’ 당권 주자가 7·28 재보선 공동 유세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정치에도 유행어가 있다. 참여정부 임기가 반환점에 거의 이르렀을 무렵, 여당인 열린우리당 안팎에서는 ‘난닝구’와 ‘빽바지’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각각 당내 실용파와 개혁파를 상징했던 난닝구와 빽바지의 유래는 2003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린우리당 창당이 막 꿈틀대던 시점이었다.
당시 옛 민주당의 최대 현안은 분당이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사수파’와 ‘신당 창당파’로 나뉘어 난투극을 벌였다. 2003년 9월4일 옛 민주당 당무회의장에서 ‘그때 그 장면’이 펼쳐졌다.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성이 회의장에 난입해 민주당 사수를 외쳤다.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난닝구’의 탄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때부터 난닝구를 호남 지역주의에 기댄 민주당 당권파, 즉 실용파를 일컫는 용어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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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바지’의 주인공은 유시민 전 의원이었다. 2003년 4월 재보선 당선 직후 유 전 의원이 국회의원 선서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흰색에 가까운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와 남색 재킷 차림이었다. 의석 곳곳에서 고함과 야유가 쏟아졌다. 개혁국민정당 소속 유 전 의원은 “국회는 일하는 곳이어서 일하기 편한 차림으로 왔다”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달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유 전 의원의 파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30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집단 퇴장했다. 유 전 의원을 비롯한 3명의 당선자는 결국 국회의원 선서를 다음날로 미뤄야 했다. 그렇게 빽바지는 유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개혁파의 상징이 됐다.
빽바지와 난닝구가 맞붙은 건 2005년 4월2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였다. 유 전 의원을 지지하는 개혁당 출신 당원들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한 문희상·염동연 등 당내 실용그룹을 정조준했다. 통일부 장관을 맡고 있던 정동영 의원도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개혁당 그룹의 기반이던 기간당원제를 무너뜨리려는 ‘원흉’, 당권파의 ‘수괴’ 정도의 이미지가 정 의원에게 씌워졌다.
실용파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유시민 그룹을 ‘분파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논쟁이 펼쳐진 공간은 주로 열린우리당 당원 게시판이었다. 개혁파와 실용파의 싸움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개혁파가 실용파를 향해 “난닝구는 민주당으로 돌아가라”고 몰아붙였고, 실용파는 “우리가 난닝구라면 너희는 빽바지”라며 맞섰다. 인터넷 논쟁이 대개 몇 차례 오가다 보면 막싸움으로 비화하듯, 개혁파와 실용파의 노선 갈등은 결국 난닝구와 빽바지의 싸움으로 끝났다. 열린우리당은 이 사건 직후 홈페이지에서 난닝구와 빽바지를 금칙어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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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을 소모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싸움이 격화될수록 실용파 대 개혁파의 노선투쟁보다 권력투쟁 양상이 도드라졌고, 비난의 수위도 한계선을 넘나들었다. 열린우리당의 판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홈페이지에서 두 단어를 금지하며 양쪽의 논쟁을 인위적으로 끝낸 결정만 봐도 그렇다.
대신 얻은 것도 있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압도적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잡탕 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도 지니게 됐다. ‘실용’과 ‘개혁’의 갈등은 그때 이미 싹트고 있었다. 당시 임채정·정동영·강봉균 의원은 실용 노선을 강조했고 송영길·유시민·임종인 의원은 개혁 노선으로 맞섰다. 성장과 분배 등 복지정책뿐만 아니라 개별 개혁법안에 대한 입장도 제각기 달랐다. 이듬해인 2005년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은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 길을 놓고 표류하는 열린우리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았다.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은 2006년으로 이어졌다. 5·31 지방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은 2·18 전당대회를 통해 한 차례 ‘붐업’을 시도했다. 내각에 차출됐던 열린우리당의 두 대주주 정동영(DY)-김근태(GT) 의원이 맞붙었다. DY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실용파 대표 주자였다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비정규직 문제 등 개혁 어젠다를 앞세운 GT는 개혁파의 대표였다. 2·18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개된 개혁 대 실용의 노선투쟁은 DY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이념논쟁의 결과라기보다 조직력에서 승패가 갈렸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어쨌든 결과는 실용 노선의 승리였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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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부터 DY-GT의 실용-개혁 논쟁까지 복기한 이유가 있다. 2010년 10월3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때와 유사한 이념논쟁, 혹은 노선투쟁이 빚어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구도는 흥미진진하다. 정동영 의원의 ‘담대한 진보’가 신호탄이었다. 정 의원이 먼저 진보 담론을 선점하자 전당대회에서 그와 맞붙을 정세균 전 대표도 ‘진정한 진보’를 내세우며 맞불을 놓았다. 천정배 의원은 ‘유능한 진보’를 외쳤고, 박주선 의원은 ‘따뜻한 진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의 전성시대다.
반면 손학규 전 대표는 실사구시의 정치, 생활정치를 화두로 들었다. 2008년 7월 대표직 퇴임 이후 줄곧 강원도 춘천에 머물던 손 전 대표는 여의도 복귀 선언과 함께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춘천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손 전 대표는 발표문에서 “실사구시 정치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국민이 기준이 되는 정치가 진보의 길”이라며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이 가장 우선시되는 ‘국민생활 우선 정당’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정동영·정세균·천정배 의원 등이 진보 노선을 주장하는 반면, 손 전 대표가 그보다 좀더 오른쪽인 실사구시 노선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정체성 및 미래 비전과 관련해 논쟁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각자 은연중 자신의 ‘신상’(새로운 상품) 진보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내고 있다.
“정동영 의원이 말한 담대한 진보란 사실 이인영 의원의 작품인데 정 의원이 무단으로 도용한 것에 불과하다.”(손학규 전 대표 쪽)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 전 대표가 진보를 주장한다면 정통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을 스스로 의식해 진보를 앞세우지 못한 것 아닐까 싶다.”(정동영 의원 쪽)
“정동영 의원의 담대한 진보는 아무 내용이 없고, 손학규 전 대표의 실사구시 정치는 좋다는 가치는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아 실체를 알 수 없다.”(천정배 의원 쪽)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따뜻한 진보라고 한 건데, 민주당이 아무리 진보·왼쪽을 주장한다 해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당권 주자들이) 진보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활동은 또 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진보라는 개념보다 중도를 주장하려 한다.”(박주선 의원)
2003년 9월4일 옛 민주당 당무회의장에서 한 당직자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민주당 사수’를 외치고 있다. 이때부터 한동안 ‘난닝구’는 실용파의 대명사가 됐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이인영 전 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어떤 식으로든 진보 경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념논쟁이라기보다 이번 기회에 민주당의 정신과 철학,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뒤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와 관련해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합리적 대안이 많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큰 틀에서 보면 이들의 주장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보를 자처한 당권 주자는 말할 것도 없이 실사구시를 강조한 손 전 대표 쪽에서도 정치 복귀 첫 일성이 ‘실사구시 정치’로 언론에 나간 것에 대해 당황한 기색이다. 장문의 글을 통해 워낙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가운데 ‘실사구시 정치’만 강조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손 전 대표 쪽 관계자는 “생활정치와 실사구시 정치 역시 ‘새로운 진보’의 길을 가기 위한 목적과 수단인데, 언론에는 너무 한쪽 면만 알려졌다”며 “내부적으로는 전당대회에서 활용할 만한 구호의 네이밍 작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 단계에서 민주당 당권 예비주자들이 제시하는 진보 어젠다는 아직 구체적인 정책과 방안이 없는 구호 수준에 불과하다. 쟁점이 될 만한 현안에 대해 어떤 진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일단 너도나도 ‘○○○ 진보’에 이름을 걸쳐놓고 있는 상태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여당이었을 뿐만 아니라 좌우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었던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과 달리 지금의 민주당에는 ‘좀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외부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외부의 규정력이 크지 않았던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오히려 이념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조건이 마련됐다면 현재의 민주당 처지에서 진보 이외의 다른 주장을 내놓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시절의 실용 대 개혁 논쟁은 권력투쟁으로 변질됐다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으며 마치 과도한 노선투쟁·이념논쟁이 당 해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오해까지 빚어졌다. 당시 ‘개혁의 과잉이 문제냐 개혁의 부족이 문제냐’ 하는 논란도 실용파와 개혁파 간 설전의 대상이었지만,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 열린우리당의 실패 요인이 개혁의 과잉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노선투쟁을 통해 더 건강한 권력이 살아남지 못한 당의 한계 때문이지 이념논쟁 그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인영 전 의원은 “지금은 모두 진보를 이야기하는 만큼 앞으로의 논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로 발전시키며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를 구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며 “진보를 말한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그 주장이 오래가고 일관되기를 바라고, 다음에 말을 바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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