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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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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일은 MB-삼성-박연차 잇는 ‘허브’

정·재계 최고 실력자는 물론 전 정권 후원자와도 각별한 인연…
“그의 계좌는 판도라의 상자, 검찰도 못 열 것”
등록 2009-04-30 11:46 수정 2020-05-03 04:25

“최근 재계의 관심사는 천신일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범위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자금 수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검찰에서는 천신일 회장을 수사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천 회장의 계좌를 ‘감히’ 열어보지는 못할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회장 선임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개입했다는, 우제창 민주당 의원의 폭로가 있었던 4월22일 기자와 만난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천 회장의 66년 삶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게와 관계를 보면 그 말은 쉽게 이해가 간다.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이징 국빈방문에 동행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대통령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의 친분을 알려주듯, 서로를 보는 표정이 흐뭇해 보인다. 천신일 회장이 지난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서울 서초동 건물을 담보로 30억원의 채권을 설정한 사실을 보여주는 등기부등본(아래). 사진 연합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이징 국빈방문에 동행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대통령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의 친분을 알려주듯, 서로를 보는 표정이 흐뭇해 보인다. 천신일 회장이 지난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서울 서초동 건물을 담보로 30억원의 채권을 설정한 사실을 보여주는 등기부등본(아래). 사진 연합

이건희·박태준 아우르는 인맥

그의 직함은 세중나모그룹 회장과 고려대 교우회장이다. 만남의 범위는 정치권력의 정점인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권력의 정점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아우른다. 이들과는 ‘친구’ 또는 ‘형·동생’ 하는 사이다. 이병철 고 삼성그룹 회장은 ‘아버지’라고 불렀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역시 ‘아버지’라고 부른다.

천신일 회장과 같은 학교를 나온, 50년 지기의 증언이다.

“천 회장은 고려대에서 윤천주 교수(고인·전 문교부 장관)와 만나면서 거물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윤천주 교수가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핵심 참모였고, 천 회장은 윤 교수의 핵심 참모였다.” 천신일 회장은 윤 교수가 1963년 학계를 떠나 정계(공화당 사무총장, 제7대 국회의원)에 몸담았을 때 5년간 비서관으로 보좌했다. 윤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이론적 토대를 갖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제계에서 천 회장을 도와준 것은 박재홍 동양철관 사장(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조카)이었다. 박 사장은 자기 회사 공장장이던 천신일이 제철화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1974년). 제철화학은 포항제철 용광로에서 나오는 콜타르를 재활용하는 업체였다. 포항제철은 골치 아픈 부산물을 처리해서, 제철화학은 콜타르를 공짜로 얻어서 좋았다. 그런데 천신일 사장은 이익을 다 독점하지 않고, 수익의 35%를 포철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박태준 회장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천신일 사장을 아들처럼 예뻐하기 시작했다.”

천신일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때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우제창 의원은 “박태준 회장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천신일 회장의 부친과 고 이병철 회장이 평소에 알던 관계로, 아들을 이병철 회장에게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 회장 회사 삼성생명 빌딩에 입주

천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비공식’ 비서 노릇으로 최고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뜨기 전 자녀들에게 ‘내가 죽고 나면 천신일을 잘 부탁한다. 본인이 싫다고 거절하기 전까지는 잘 도와주라’고 유지를 남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삼성그룹을 오로지하게 된 이건희 전 회장과 미국 유학 시절부터 남다른 우정을 쌓아왔다고 한다. 세중나모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세중나모여행의 매출 50%는 삼성그룹에서 나온다. 삼성그룹의 해외출장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세중나모는 삼성생명 빌딩 19층에 본사를 두고 있다.

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기(61학번)로 만났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투쟁을 이끌었던 ‘63동지회’ 동지다. 이 대통령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인 것으로 유명하다. 천 회장이 고려대 교우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교우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한 것도 천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많았다.

천신일 회장의 핵심 인맥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천신일 회장의 핵심 인맥도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천 회장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그만큼 많은 역할을 했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 대선 최고의 공신은 천신일 회장이다. 그는 ‘몸’으로뿐 아니라 ‘돈’으로도 고생했다”고 말했다. 친이 쪽의 다른 당직자도 “천 회장은 자기 돈을 가져왔든, 다른 데서 끌어왔든 돈을 많이 댔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당시 후보가 대선 직전 낸 30억원의 특별당비도 천 회장이 빌려준 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서초구 빌딩(양재동 12-7) 등기부등본을 보면 2007년 11월30일 채권최고액을 39억원으로 하는 근저당이 설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근저당권자는 천신일 회장이다. 이 근저당은 2008년 4월29일 해지됐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또 다른 빌딩을 담보로 잡히고 제2금융권에서 36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돈으로 천 회장 돈을 갚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이계 핵심 인사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대통령에게 ‘당비 5억원만 내달라’고 요청하기에, 논의 결과 MB 재산(380억원)의 10%를 내기로 했다. 그래서 30억원을 내게 됐다. 우리는 MB가 담보 잡고 (은행에서) 만든 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천 회장이 빌려줬더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천 회장이 사실상 이명박 캠프의 후원회장이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천 회장의 계좌가 ‘판도라의 상자’로 비유되는 것은 이런 탓이다. 바꿔 말하면 검찰이 천신일 회장에 대해 수사해야 할 이유다. 검찰도 이를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천 회장이 2007년 대선 전에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천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박연차, 천신일 관련 부분은 함구”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법조계 인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천신일 회장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 회장은 최근 ‘천 회장과는 50년 넘은 사이다. 사업 관계로 얼마나 많은 돈거래를 했겠느냐. 돈거래 내역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변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현 정권 아래서도 사업을 계속해야 할 박연차 회장으로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정보를 쉽게 말하기 힘들 것이다.

천신일 회장은 박연차 회장과 유년 시절 부산 사상의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았다. 천 회장(1943년생)이 박 회장(1945년생)보다 두 살 많았다. 두 사람은 1970년대에 다시 맺어진다. 박연차 회장이 신발공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천 회장이 집안 땅 일부를 떼줬다고 한다. 이 땅에서 지금의 태광실업이 배태했다. 박 회장은 사업에 성공한 이후 천 회장에게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연차 회장이 2006년 농협의 휴켐스를 인수했을 때도 천 회장은 곧바로 사외이사를 맡았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사업가는 “박연차 회장이 천신일 회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길 때 걱정스러웠는데, 천 회장이 선뜻 맡는 것을 보면서 ‘(인수 과정에 문제가 있어) 후에 탈이 날 텐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4월23일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규명할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를 ‘천신일 특검법’으로 통칭했다. 박연차 회장이 지난 대선을 전후한 시점과 지난해 이 대통령의 측근에게 20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과 천신일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빌려준 30억원의 특별당비 마련 과정에 대한 의혹 등을 수사하도록 돼있다.

이에 대해 천신일 회장의 한 지인은 “천 회장은 비례대표 3~4번을 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고, 공석이 된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가는 것도 거절했다”며 “그만큼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30억원의 특별당비 출처가 박연차 회장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천 회장은 2007년에 자기 재산 110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제창 의원, 포스코 인사개입설 폭로
“천신일 회장이 전화 걸어 사퇴 종용”


지난 1월15일 오전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18층 ‘스틸(Steel) 클럽’에서 포스코 결산 이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구택 전 회장은 사퇴 뜻을 밝혔다. 그는 “정치권 압력으로 인한 사퇴가 아니다”라고 외압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포스코 안팎에선 정치권의 인사 개입 얘기가 파다했다.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포스코 회장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한 우제창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들과 포스코 인사들의 접촉은 지난해 11월~올해 1월 말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말부터 포스코에는 회장 교체설이 나돌았다. 검찰은 국세청을 상대로 감세 로비를 벌인 의혹을 잡고 이구택 전 회장을 조사했다. 이 전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이와 때를 같이해 이 회장 아들의 병역 회피 의혹 등의 소문도 흘러나왔다.
새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당시 포스코 건설 사장)과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윤석만 포스코 건설 회장(당시 포스코 사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우제창 의원에 따르면, 천신일 회장은 1월28일 윤석만 사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정준양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날인 1월29일 오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포스코 CEO추천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윤 사장이 메모를 해가지고 와서 (우제창 의원이 폭로한 내용을) 다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오랜 시간 격론을 벌였다. 이구택 회장이 정부 의도대로 정준양 후보를 지명했는데 자칫 그것이 안 될 뻔했다. 이것이 다 윤석만 후보가 정부의 외압 사실을 그 자리에서 폭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당시 포스코 CEO추천위원회 위원은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을 비롯해 박영주 전경련 부회장,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손욱 농심 회장,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허성관 전 해양수산부 장관, 박상용 연세대 교수 등 8명이었다. 이날 CEO추천위원회에서 정준양 현 회장이 새 회장으로 결정돼 2월27일 주총에서 회장으로 정식 선출됐다. 포스코는 정 회장 취임 뒤 사외이사로 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등을 사퇴시켰다. 새 사외이사로는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 등 ‘이명박 캠프’ 출신 인사 2명이 합류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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