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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소통방식 이명박-노무현 ‘대조’

현장 탐방 잦은 이 대통령 ‘깜짝쇼’ 비판 받기도… 인터넷 편지 즐긴 노 전 대통령 외로움 토로
등록 2009-02-06 07:15 수정 2020-05-02 19:25

조선시대 성종·숙종·정조는 평범한 사대부의 옷차림을 한 채 궁 밖으로 나가 민생을 살피는 미행(微行)을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서민의 고단한 삶을 눈으로 보며 ‘위민’(爲民)의 뜻을 다지고, 초야에 묻힌 인재들을 발굴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떤지,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를 직접 확인하려는 국가 최고 지도자의 민생 시찰은 계속된다. 인의 장막에 가리기 쉬운 청와대에선 누군가 걸러준 ‘가공된 민심’만 듣기 십상인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9월20일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 정선군 북평면 남평리를 찾아 피해주민과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하고 있다(왼쪽/ 연합 김동진)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2월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함께 배추를 나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9월20일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 정선군 북평면 남평리를 찾아 피해주민과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하고 있다(왼쪽/ 연합 김동진)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2월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함께 배추를 나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때인 2007년 8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여의도에 있으니 모든 화제가 정치 중심인데,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딴판인 것 같다.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생을 확인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민생 시찰을 자주 했다. 지난 1년 동안 재래시장, 대형마트, 공단 등을 방문한 뒤 상인들과 함께 배춧단을 나르거나 국밥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설날 오후에도 갑작스레 경기 성남시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를 방문해 한국도로공사 교통정보센터 상황실과 콜센터, 경찰청 고속도로본부 순찰대 상황실 근무자 등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조해진 의원(한나라당)은 그의 이런 모습을 두고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이나 대학 시절을 거쳐 (현대건설에) 갓 입사할 때까지 대통령 스스로가 ‘절박한 민생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서민들이 있는 현장에 가면 편안해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잦은 민심 탐방은 그가 ‘현장 스타일’인 탓도 있지만, 다른 여러 가지 포석도 깔려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대화하고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국민들이 실제로 뭘 원하는지 느낄 수 있다. 또 (언론을 통해) 피상적으로 비치는 이미지와 달리 현장에선 대통령의 진정성을 국민들한테 전달할 수도 있다. 정부 정책의 효과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기획관실은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살리기 등의 주제에 맞춰 대통령이 어디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지를 가늠한 뒤 민생 탐방 일정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미지 정치에 강한 거부감

조해진 의원은 ‘당근과 채찍’을 민생 시찰의 또 다른 효과로 꼽았다. “국민들로선 당장 경제난을 해결하긴 어렵지만 자신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지도자의 행보가 위로가 된다. 또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챙기면 장·차관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긴장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심 탐방을 하지 않았다. 편지와 인터넷으로 대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10차례 가까운 편지를 써서 인터넷에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이 민심 탐방을 나간 것은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를 입은 부산·마산·정선을 잇따라 방문한 것이 처음이었다. 민심 탐방에 나서게 된 이유도 태풍 매미가 몰려온 당일 대통령이 예정대로 뮤지컬 관람을 강행한 것에 대한 여론의 질타 때문이었다. 등 떠밀려 간 셈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태도가 잠시 바뀐 적이 있었다. 2005년 말부터 2006년 초 사이였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조기숙 당시 홍보수석이 임기 중반을 맞은 2005년 중순부터 ‘정치는 이미지다. 대통령은 이미지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민생 시찰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며 “노 전 대통령도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말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사는 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을 방문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잠시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그 직후에 “2005년 1년간의 사진을 보니 올해 내가 국민들과 밀도가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국민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기숙 전 수석도 2006년 2월 자리를 물러나면서 “대통령이 이벤트나 정치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어 국민과 밀착된 홍보를 하지 못한 면이 있었지만, 대통령께 꾸준히 건의한 결과 철학에 어긋나지 않는 한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중반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런 ‘이미지 정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통령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나에게 이미지 정치를 권하지 말라”고 강하게 다그쳤다고 한다.

현장 방문을 부정적인 뜻의 ‘이미지 정치’로 받아들이는 이는 노 전 대통령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말 이 대통령의 서울 가락시장 방문을 놓고 적지 않은 누리꾼들이 “쇼”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엔터테인먼트 기능은 대통령의 기능 중에서도 매우 큰 부분이다. 정치인인 대통령이 (특정한 메시지와 관련한) 상징적인 ‘쇼’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민생 탐방을 거부했던 노 전 대통령은 속으로는 엄청난 외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전직 의원의 이야기다. “2006년 중순부터 노 전 대통령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고립돼 있고 인간적으로도 외롭다고 했다. 청와대를 방문한 한 측근에게는 ‘밤에 경호원 2명만 데리고 남대문시장에 가서 둘이서 소주 한잔합시다. 여기(청와대)는 답답해서 못 살겠소’라고 말할 정도였다.” ‘외로웠던’ 대통령은 밤마다 인터넷에 매달렸고, 그 결과가 잇따른 편지였다.

용산 참사 비판 여론엔 귀 막아

하지만 ‘현장’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작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촛불 민심’이 끓어올랐을 땐 귀를 닫았다. 이명박계의 한 의원은 “촛불 정국 때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만 틀어박혀 민심을 읽어보려는 노력을 안 했던 게 사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노력을 했다면, 여론이 그렇게 악화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수도권의 한 한나라당 재선의원은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빨리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거취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데, 민심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 차례의 민생 시찰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었던 것일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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