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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본지 통화서 “12월 강의 끝나봐야 알지” 여운… 내년 개각 맞물려 여권 내부 시끌
등록 2008-11-11 05:07 수정 2020-05-02 19:25

“아직은 (한국에) 들어갈 계획이 없다. (귀국 계획은) 12월에 강의가 끝나봐야 알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여의도 정가를 흔들고 있는 ‘조기 복귀설’에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직접 밝혔다. 이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 존스홉킨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머물고 있다. 11월7일 과 한 전화 통화에서 귀국 시점을 놓고 “지금 내가 당장 가야 될 급한 일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연말 이후 상황을 지켜본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존스홉킨스대뿐만 아니라 몇몇 대학에서 ‘특별히 서둘러 들어갈 일이 없으면 비자를 연장해서 강의를 1년 더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은 오직 욕만 먹는데, 미국 일류대 교수는 존경만 받으니까 의원보다 낫다. 정권 만드는 데 참여했으면 됐지, 만든 다음에 뭘 할 거냐는 생각은 안 해봤으니까….” 하지만 방점은 “12월 강의가 끝나봐야 알지”에 찍혀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동반 불출마를 요구했던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의 요구를 접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 등 ‘친이 직계’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8대 총선에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동반 불출마를 요구했던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의 요구를 접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 등 ‘친이 직계’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교수직이 의원보다 낫다”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여권 내부 권력 재편의 신호탄이다. 복귀론의 파장이 박근혜계는 물론 이명박계 안에서도 복잡한 이유다.

조기 귀국설의 진앙지는 ‘이재오계’를 대표하는 공성진 최고위원이다. 공 최고위원은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연말까지 강의를 해야 되니까 연말에 복귀할 여건이 되는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이후 상황은 이쪽에서 귀국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호전되느냐 여부에 달려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11월2일 돌연 “이 정권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책임의식과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좌파정권 10년의 갭을 메우고 실용정부의 안착을 위해 역량 있는 인사들이 필요한데,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기 귀국설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이런 태도 변화에는 ‘10·29 재·보궐 지방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공 최고위원은 “지원 유세를 갔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강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연만 강조하더라. 벌써부터 ‘다음 권력’으로 당이 넘어갈 조짐을 보이는데, 그건 그만큼 정권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단 얘기고, 이 전 의원 같은 구심점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명박계 깊어가는 위기감

지금 한나라당의 주류는 ‘이명박계’지만, 힘의 균형추는 급속도로 ‘박근혜계’로 기울고 있다. ‘월박’(이명박계에서 박근혜계로 넘어간 의원들), ‘복박’(박근혜계로 되돌아온 의원들)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의원 대부분이 양다리”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다음 총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30%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천에 모든 것을 거는 의원들은 박 전 대표 쪽에 ‘보험’을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박 전 대표가 ‘태클’을 거는 것도 한 이유다. 공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권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여당이 한 몸이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만 해도 당론이나 마찬가지인 걸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이라는 사람이 반대하고 있다. 국민이나 수도권에 투자하려던 외국 기업은 현재 지도자와 미래 지도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여의도연구소장은 박근혜계인 김성조 의원이다. 박 전 대표 스스로도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현실적 대안 없이 수도권 규제 완화부터 전면적으로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고 날을 세운 바 있다.

이재오계 의원들은 ‘내각의 책임의식 부족’도 이유로 꼽는다. 이재오계 한 의원은 “금융위기 국면만 보더라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내각은 한나라당 안에서도 교체론이 들끓을 만큼 무력했다”며 “이명박식 개혁을 뒷받침하려면 국회가 각종 규제 개혁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친이 진영이 결집해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처럼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한 정권 창업자들은 이를 수성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그 책임과 권한을 발휘할 유일한 시간은 내년뿐”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르고 나면 정국은 급속도로 대권 경쟁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들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정책 수행을 통해 정치력을 보여주려면 최소한 내년엔 이 전 의원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 “차분하게 멀리 보고…” 부정적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이재오계 의원들은 이 전 의원이 내년 설 전후로 예상되는 개각에 맞춰 복귀하기를 바란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존스홉킨스대 강의가 끝나는 내년 1월부터 미국 비자가 만료되는 4월(실제로는 5월25일) 사이 어느 때인가 들어와야 한다. 당에 와서 일을 하면 분란을 일으켜 본말이 전도될 수 있기 때문에 당 밖에서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역할로 국무총리부터 대통령실장, 특임 장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설도 분분하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11월3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어떤 사람이 가만히 잘 있는 사람을 흔들어놓았다. 그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닌데…. 다 때와 시간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사람’은 공성진 최고위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월1일 ‘친이 직계’ 그룹인 안국포럼 출신 의원 12명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의 거취를 놓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차분하게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며 복귀론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결정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이 전 의원의 복귀를 마뜩잖아한다. 당 안에선 이 부의장이 이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1년만 더 있다 들어오라”고 했다는 ‘풍문’이 나돈다. 이 전 부의장은 실제로 최근 이재오계 진수희 의원을 불러 “지금 들어오면 이 전 의원이 다칠까봐 걱정돼 했던 말이다. 그를 걱정해도 진 의원보다 더 오래 그를 알아온 내가 더 걱정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진수희 의원은 미국에서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고 11월2일 귀국한 바 있다. 결국 이 전 의원 쪽은 이런 결정권자들의 부정적 태도 때문에 귀국 시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두언·조해진·이춘식 의원 등 친이 직계 그룹도 ‘이재오가 아닌 우리가 돌파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국포럼 출신의 한 의원은 “이 전 의원은 (개각 전엔) 못 들어온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안국포럼 출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이 전 의원이 들어와 전면에 나서는 데 흔쾌히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로 꾸려진 인문학 공부모임 ‘아레테’는 11월5일,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하고 현안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자신들의 역할 확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계 불쾌감·이상득 쪽도 몸 사려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를 막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18대 총선 직전 ‘이상득·이재오 동반 불출마’ 문제를 놓고 이상득계·이재오계·친이 직계 사이에 쌓인 앙금이 가시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이 전 의원 쪽과 친이 직계는 이상득·이재오 두 사람의 동반 불출마를 전제로 ‘전략적 제휴 관계’를 형성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이 자신을 밀어내려는 이들을 고깝게 여긴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 전 의원이 막판에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재오계와 친이 직계의 관계도 틀어지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배신’을 당했다고 여기는 친이 직계로선 ‘승률 100%’가 아니라면 굳이 이 전 의원이라는 카드에 손을 댈 이유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 쪽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저랑은 관련 없는 얘기”라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계 일각에서도 “‘이 전 의원이 들어와 잘하시겠죠’ 수준으로 ‘덕담’을 해야 박 전 대표가 큰 정치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이 전 의원이 또다시 무리수를 두더라도 이를 비난할 명분을 쌓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박근혜계 한 핵심 의원도 “이 전 의원이 떠날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돌아와봤자 분란만 일으킬 뿐, 이 대통령한테도 박 전 대표한테도 이 전 의원 스스로한테도 백해무익하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상득 전 부의장 처지에서 보면,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는 순간부터 인사권을 비롯한 자신의 권력을 함께 나눠줘야 한다. 박 전 대표 쪽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도 포기해야 한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와의 관계 단절은 ‘훗날의 안전’을 생각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전당대회 ‘후원자’가 돼주겠다는 명분으로 당내 각 세력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공간도 줄어든다. 당 안에서는 “이상득 전 부의장이 자신을 정점으로 한 여권 내부 권력의 균형을 깨고 다 잃느니, 정권의 ‘전위대’ 하나(이재오)를 잃는 게 낫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식의 해석이 나온다.

MB 방미길 재회에 관심 집중

이 대통령에게도 이 전 의원은 ‘계륵’에 가깝다. 전면에 나서는 ‘돌격대장’ 역할을 맡기기엔 이 전 의원이 더없이 제격이지만, 무턱대고 불러들이기엔 반대도 위험부담도 너무 크다. 이 전 의원의 핵심 측근조차 “이 전 의원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 또 당내 분란에 상응하는 공백기를 가졌다는 점을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언제 어떤 자리를 맡더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이재오 전 의원으로서는 내년 상반기에는 어떻게든 돌아와야 한다. 당의 구심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2010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내년 재·보궐 선거에서 의원 배지를 되찾거나, 장관직을 맡아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

두 사람은 11월14일 이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워싱턴을 방문하는 김에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방미길엔 복귀설을 가장 강력히 주장하는 공성진 최고위원도 동행해 ‘인재 활용론’을 펼 계획이다. 여섯 달 만에 재회하는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뾰족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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