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별관, 방송인 강병규씨가 기자들 앞에 섰다. 이른바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논란에 대해 해명하겠다는 자리였다. 강씨는 응원단장으로 문제의 응원단을 구성했다. 논란의 핵심은 연예인들이 응원을 핑계로 나랏돈 2억원으로 놀다 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강씨는 “우리는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연예인 응원단을 파견한다고 해 지원을 받은 것뿐”이라며 “국고 낭비라는데, 서울시 행사에서 연예인이 개런티를 받고 출연하는 것도 혈세 낭비인가”라고 되물었다.
강씨는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이유에 대해 “항공편도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좌석이 없어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됐다.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은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는 총액 1억1천만원에 이르는 숙박비에 대해서도 “올림픽 당시 중국 물가가 엄청 올랐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원래 1박에 27만원 하던 방인데 145만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지원금 사용내역은 내일(24일) 문화관광체육부에서 해명할 예정”이라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강씨의 해명에 대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에게 물었다. 이 문제를 추적해온 최문순 의원 보좌진들은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예인 응원단을 구성하자는 제안은 강씨가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게 먼저 한 것이다. 강씨는 문화부가 제안한 것처럼 바꿔 말했다.
연예인 응원단에 대해 문화부 공무원들은 최문순 의원실에 이렇게 털어놨다고 한다.
“7월 중순께 유인촌 장관이 불러 장관실에 가보니 강병규씨가 함께 앉아 있었다. 유 장관이 ‘연예인들이 뜻을 모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기로 했으니, 최대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강병규씨는 이후 무리한 요구를 했다.”
강병규씨는 문화부에 △모든 올림픽 경기장에 검문과 검표 없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VIP용 ‘프리패스 차량’을 응원단에 배정해달라 △중국어가 가능한 문화부 공무원을 현지 가이드로 배정해달라 △숙소도 VIP급으로, 하루 숙박비는 100만원을 기준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문화부 실무진은 프리패스 차량과 문화부 공무원 가이드는 거부했다. 강씨는 요구사항이 거절되자 유 장관에게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프리패스 차량은 각국 올림픽위원회에 10대 정도 배정되는 귀빈용이다. 연예인 응원단이 그런 차량을 쓸 정도로 귀빈인지는 의문이다. 국민 세금을 받는 공무원을 가이드로 쓰겠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설명대로면, 응원단은 처음부터 100만원 이상급 호텔을 찾았던 것이다. 비행기 요금과 좌석 문제도 대한항공에 확인해본 결과 해명과 달랐다. 베이징행 비즈니스석(프레스티지석) 요금은 90만원인데, 이코노미석은 40만~57만원이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당시 연예인들은 비즈니스석을 탔고, 수행원들은 이코노미석에 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좌석이 없었다면 모두 비즈니스석을 타야 이치에 맞는다.
지원금 사용내역을 문화부에서 해명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최문순 의원실 관계자는 “예산 사용내역을 요구하니, 문화부에서도 강병규씨가 대표로 있는 비유(BU)엔터테인먼트에서 사용내역을 받아서 주더라”며 “문화부에서도 비유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영수증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서 정확한 사용내역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의혹이 생기는 부분은 강병규씨가 문화부에 이런 과감한 요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문순 의원실 관계자는 “유인촌 장관이 촛불 이후 궁지에 몰려 있던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국민의 관심을 최대한 베이징올림픽으로 유도해보려고 연예인들을 동원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강병규씨 쪽에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해명을 요청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화부 관계자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요즘 현안이 워낙 많아 강병규씨가 (프리패스 차량과 공무원 가이드 제공 등) 그런 요구까지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연예인들도 개런티 받지 않고 자신들의 짬을 내서 국가적인 행사에 동참한 것인데 너무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유인촌 장관도 10월24일 국회 문화부 국정감사에서 “자발적으로 올림픽 선수단을 응원하겠다고 나선 연예인들을 도와주고 싶어 추진한 것”이라며 “내가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응원단들을 옹호했다.
유 장관, ‘스포츠토토 기금’ 270억원 써‘몸값’ 비싼 연예인들이 개런티 없이 올림픽 응원에 나서겠다는 대가로, 정부가 경비를 대신 지원해준 것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외유에도 과감히 돈을 ‘지를’ 수 있는 문화부 장관의 쌈짓돈이다. 연예인 응원단에게 지급된 2억600만원은 체육복권인 ‘스포츠토토 기금’에서 나왔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9조에 따라 스포츠토토의 수익금 10%는 문화부 장관이 지정하는 문화·체육 사업에 지원한다. 이 돈도 엄연한 정부 돈이다. 단, 사용내역은 국회에 예·결산을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유인촌 장관이 취임 이후 사용한 스포츠토토 기금은 모두 270억원. 최문순 의원이 베이징 응원단에 나랏돈 2억여원이 지급된 사실을 밝혀낸 것도 이 쌈짓돈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문순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문화부는 처음 토토기금 사용내역을 제출할 때 연예인 응원단 예산내역을 빼고 제출했다”며 “문화부도 외부로 드러날 경우 말썽이 생길 것을 염려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토토기금이 국회 예·결산에서 제외된 것은 스포츠토토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초기에는 액수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2007년 말 기준으로 746억원이 적립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일부 여당 의원들도 국회의 감시 아래 두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스포츠토토 적립금이 국회 통제를 받도록 ‘국민체육진흥법’ 등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장관 임의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용처를 ‘법령’에 명시하도록 하고, 사용한 내역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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