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외길 시계장인의 하루서울 중구 소공동 한화빌딩 앞에서 지하 어귀로 들어서면 첫눈에 만나는 모습이 있다. ‘시계와 함께한 외길 60년’이란 팻말 뒤편에서 돋보기가 달린 안경을 쓴 채 골똘히 일하고 있는 수리기사를 창 너머로 만난다.그 모습 아래 ‘숙명’이란 시구가 적혀 있다. “일터에 오면...2025-03-08 20:21
강에 사는 말이라더니보기만 할 때는 귀엽다. 새끼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조차도 귀여움이 흘러넘친다. 보기만 할 때는.그래서일까. 1909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 ‘창경원’이 개장하고, 1912년 독일에서 한 쌍의 하마가 수입됐을 때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이름 그대로라면 ‘강물에 ...2025-03-01 19:53
까마득히 높은 신축 아파트 너머, 5일마다 열리는 백스무 살 일산장아파트가 밀집한 수도권 역 주변에 100년이 훨씬 넘은 오일장이 선다. 3과 8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서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일산장이 그곳이다.일산시장은 경의선 철도가 개통된 1906년 문을 연 것으로 전해진다.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임시군용철도감부를 설치...2025-02-22 20:44
동백 가오리 따라 하기쑥스러웠던 걸까. 처음엔 구체적인 지명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머나먼 남쪽 끝, 바닷가’에 내려가 산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캐물어야 ‘경상남도 남해’라고 답해줬다. 재밌는 일은, 시간이 흐른 뒤에 상대를 만나면 내가 ‘전라남도 해남’에 사는 줄 알고 있었...2025-02-15 20:10
21년 만에 ‘춘식이’로 돌아온 낭만의 레트로, 교외선 열차청춘의 설렘을 품고 서울 외곽을 달리던 교외선 열차가 아파트촌 사이로 다시 달린다. 2004년 운행을 중단한 지 21년 만이다. 전기 배선이 없는 옛 선로 위로 노란색 디젤기관차가 앞뒤에 붙어 객차를 끈다. 노란색과 갈색의 위아래 배색이 카카오 캐릭터 ‘춘식이’를 연상...2025-02-08 19:38
새를 어찌할 수 있는가2024년 12월은, 충격으로 열리고 닫혔다. 12·3 계엄령은 역사책에서나 보게 될 줄 알았던 쿠데타의 망령을 눈앞에 내밀었다. 국회에서 빠르게 해제됐지만, 지속되는 내란에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순 엉터리 계엄령인 줄 알았더니, 치밀하게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2025-02-01 18:10
‘파란 키세스’ 조선소 노동자 유최안 껴안다겨울비가 내린 2025년 1월13일 밤, 파란 비옷을 둘러쓴 청년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 본사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들은 비티에스(BTS)의 ‘아미밤’ 등과 같은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까마득히 높은 한화빌딩을 배경으로 갖가지 깃발이 펄럭인다. ‘대한수족냉증...2025-01-18 20:23
계엄왕과 봉황어질어질하다.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설마가, 사실이었다. ‘그럴 리가!’는 곧 ‘그럴 수가!’가 되었다.2024년 12월3일 밤을 엄습한 계엄 사태는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내란의 (여진이 아니라) 본진이 한 달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럴 줄도 몰랐지...2025-01-11 20:32
우린 축제처럼 데모하지눈이 웃는다. 입이 달싹인다. 어깨는 들썩인다. 발꿈치가 들려 몸이 솟구친다. 서로에 휩싸여 앞으로 나아간다. 드문드문 외국인도 섞였다. 거리 축제인가, 유명 페스티벌일까.2024년 마지막 토요일인 12월28일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이 펼...2025-01-04 20:43
원숭이와 불행한 행복우리의 몸과 마음은 과거를 통과해 만들어졌지만, 시선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흘러가버린 것과 다가오는 것 사이에 지금이 끼어 있다. 다가오는 것은 우릴 흥분시킨다, 기대하게 한다, 불안하게 한다. 그 세계는 과연 멋질까, 끔찍할까.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일찌감...2024-12-21 20:34
종이컵 촛불의 데자뷔? 아이돌 응원봉 물결2016년 서울 광화문광장을 붉게 물들였던 촛불이 2024년 12월7일 8년 만에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날, 애꿎게 또다시 순식간에 코끝이 빨개지는 12월 맹추위다.말 그대로 ‘데자뷔’라 할 만한 풍경이지만 찬찬히 살...2024-12-14 21:08
사자와 전사자 사이에대통령이 비서(그냥 비서가 아니라 총비서)에게 근사한 선물을 보냈다. 일흔두 살 블라디미르 푸틴이 마흔 살 김정은에게 돈독한 우정의 선물을 보냈다. 늙은 사자가 젊은 사자에게 사자를 보냈다. 독재자가 독재자에게, 1999년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이래 25년째 ...2024-12-07 22:26
파리는 억울한가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신앙심이 깊었다지만, 엉뚱한 상상력과 기상천외한 형상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른바 성실한 괴짜였다. 존 밀턴이 쓴 타락과 구원의 대서사시 ‘실낙원’의 삽화를 그리는가 하면, 흡혈 곤충을 근육질 괴물...2024-11-23 19:53
칠순의 눈빛과 댕댕이의 눈망울이 만나면 쑥스러운 표정의 한 어르신이 살그머니 강의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곧 뒤따라 들어온 어르신이 눈빛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테이블 주위로 둘러앉아 자리를 채운다.잠시 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동물매개치료사들이 크고 작은 켄넬(반려동물 이동장)을 ...2024-11-16 20:36
소 어디 있소거의 모든 동물에게 ‘본다’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돼 있다. 잡아먹기 위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사람은 살짝 다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시각은 생존과 연결되지만,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도 본다. 타고난 구경꾼이다. 단지 구경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자원과...2024-11-09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