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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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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나른 컨베이어벨트

등록 2003-06-25 15:00 수정 2020-05-02 19:23

포드사 창립 100주년을 맞아 돌아본 포드주의…철저한 분업과 노동통제로 저항 부르기도

자동차 생산의 살아 있는 역사인 포드자동차가 6월16일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1903년 디트로이트에서 자본금 10만달러와 노동자 12명으로 포드사를 설립해, 1908년 세계 최초의 대중차를 생산하면서 자동차 대중화 시대와 함께 내구 소비재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헨리 포드는 큰 성공과 작은 실패를 여러번 경험한 뛰어난 사업가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삶과 포드사의 부침의 역사는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포드주의(Fordism)라는 말이 생산방식과 노동편성 방식,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순환 방식을 특징짓는 이름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세기는 포드주의의 생성, 발전, 변형 또는 소멸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로

특히 그가 파격적으로 지급한 ‘일당 5달러’는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기인 전후 황금기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생산할 당시 자동차는 장인 노동자의 숙련노동에 의존해 주문 제작하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말 없는 마차’에 불과했다. T형 포드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908년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자동차 값은 평균 2천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포드는 825달러에 팔았다. 그 후 가격을 300달러 이하까지 낮췄다. 포드는 어떻게 싼값으로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었을까?

헨리 포드가 착안한 것은 노동자가 작업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물이 이동하여 정해진 위치에 있는 작업자들에게 흘러가는 컨베이어벨트였다. 이전까지 자동차는 장인들의 수공 조립품이었다. 포드는 이동 조립라인을 통해 단기간의 훈련을 거쳐 생산현장에 투입되는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를 고용해 낮은 비용으로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컨베이어벨트가 활용되려면 작업자 한 사람마다 과업이 구분되도록 분업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이 표준화·단순화되어야 한다. 당시 작업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과학적 관리 기법이 테일러에 의해 시도되고 있었다. ‘시간동작 연구(time and motion study)’로 불리는 테일러주의는 집고 들고 걷고 구부리고 맞추는 작업 동작을 ‘초시계’로 측정해 반복작업을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능력을 향상시켰다. 테일러식 노동분업과 과학적 관리의 원리는 포드의 컨베이어벨트라는 기계적 생산시스템과 결합하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극단적 분업과 기계속도에 의해 통제되는 단순반복적 노동으로 표준제품을 만들고, 이에 따라 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이 관습과 경험으로 체득한 작업관련 지식을 모두 빼내 공장의 시간동작연구실로 옮겨 와 관리자의 손에 집중시켰다. 이제 노동자는 관리자의 손에 독점된 노동과정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된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해리 브레이버만은 1974년 에서 테일러주의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노동분업으로 인해 노동자는 탈숙련화되어 더 이상 두뇌노동이 필요없이 손노동만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헨리포드는 보통 노동자의 임금이 일당 2, 3달러이고 10시간 노동제이던 1914년 8시간 노동에 일당 5달러라는 파격적인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한다. 헨리 포드가 박애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럼, 왜 헨리 포드는 파격적인 임금을 노동자에게 주었는가?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다

현대 경제학의 한 조류에서는 이를 효율임금가설로 해석한다. 주어진 생산성 수준에서 되도록 낮은 임금으로 고용한다는 효율성의 원리를 뒤집어, 높은 임금을 주어 노동자의 사기와 헌신도를 높여 더 높은 생산성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헨리 포드는 효율임금론이 등장하기 전에 이를 먼저 실천했다. 강화되고 단조로운 노동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결근율은 75%나 감소했고 이직이 줄었다.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산출물 단위당 노동비용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고임금의 효과만은 아니다. 오히려 포드는 전과자로 구성된 구사대를 동원했고, 생산현장에 T형 포드자동차 대수보다 더 많은 헨리 포드의 첩자를 뒀다고 한다. 작업현장의 주류판매 금지, 성적 타락 금지 등의 노동규율도 강요했다. 헨리 포드의 사고에는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이유가 없다는 가부장적 노사관계관이 깃들어 있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에 구현된 이런 강화된 노동규율은 이후 포디즘의 해체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량생산이 개화함으로써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그러나 대량 생산된 내구재를 대량으로 소비해 줄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생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드의 일당 5달러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비싼 내구소비재에 대한 구매력의 원천이었다. 생산성 증대로 인한 이득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상대적 고임금으로 지급해 돌려준다면 내구소비재의 대량소비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성장의 호순환 구조인데, 일당 5달러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를 떠받든 하나의 지주가 된다.

축적체제로서 포드주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인정해 고도성장의 과실을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포드는 대량생산 방식을 통한 생산성 이득을 노동자에게 고임금으로 배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고임금이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떠받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개혁좌파(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몫이 되었다. 전후의 주도권을 발휘한 사민주의 정당들의 정책을 통해 대량생산 방식으로서 포드주의는 대량소비를 뒷받침하는 복지국가와 케인즈주의 거시경제 관리와 함께 자본주의 황금기를 일구어낸 중심축이 된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포디즘에 구현된 테일러주의의 극단적인 분업과 단순반복적 작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어 결근율이 다시 높아졌다. 포드주의 작업장에 대한 불만도 치솟았다. 노동자들은 ‘공장 문 앞에 멈춘 민주주의를 공장 안까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장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서기에 이른다. 유럽을 휩쓴 68운동의 혁명적 분위기와 미국의 반전운동의 기운에 힘입어 노동자들은 경제적 분배 정의의 요구를 넘어 인간화된 작업장을 실현하라는 산업민주주의의 요구를 분출시켰다. 생산방식이자 노동편성 방식으로서의 포드주의는 극단적인 분업과 기술적 합리성에만 의존하여 노동의 인간화 요구를 무시했기에 노동자들의 불만과 집단적 저항의 표적이 되었다. 이런 내적 한계로 인해 포드주의는 70년대 들어 고도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고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포드주의의 몰락

헨리 포드는 자신의 성공을 가져온 단순한 디자인 T형 자동차를, 그것도 검은 색만 고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20년대에 GM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헨리 포드의 이런 경직적 태도로부터 힌트를 얻었을 법한 포드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등장했다. 전용기계를 사용하고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를 활용해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으로서 포드주의는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맞지 않는 경직적 체계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탈포드주의(post-fordism)와 유연화(flexibilization) 주장은 포디즘의 몰락을 확인한 이론적 성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직적’ 노동의 몰락만이 아니라 노동권 자체의 쇠퇴를 가져온 출발점이 되었다.

독점기업의 고도성장 과실을 노동자에게 배분한 포드주의는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했지만, 비인간적이고 통제 위주인 노동편성의 한계로 인해 노동자의 저항을 받아 내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국적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시대에 경직적 체계인 포디즘의 효용성은 상실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끈 포디즘의 저력은 일당 5달러라는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함께 신화로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생명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포드사는 자동차 생산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100대 기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김성희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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