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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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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고통의 대가

등록 2002-08-22 00:00 수정 2020-05-03 04:22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산업시설이 대거 파괴되고 경제 시스템이 마비된 일본이 전후 가장 먼저 실시한 경제정책은 이른바 '경사 생산방식'이다. 도쿄대학의 아리자와 히로미 교수가 제안한 이 정책은 모든 자원을 석탄생산에 집중한 뒤 증산한 석탄을 이용해 철강생산을 늘리고, 그 철강을 다시 석탄생산에 집중 투입해 경제의 엔진에 시동을 걸자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정책은 실제 일본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철강과 석탄(연료)이 산업화 과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포스코의 전신인 옛 포항제철(포철)의 탄생 과정도 이런 정책을 연상시킨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산업화를 위해 철강 증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재원이 없었다. 정부는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통해 일본 자금을 끌어들인다. 정부는 일본과 협상을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으로 무상자금 3억달러, 해외협력기구에 의한 공공차관 2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를 들여왔다. 포철 설립에는 이 돈 가운데 무상자금에서 7천만달러, 공공차관에서 5천만달러를 합해 모두 1억2천만달러가 투입됐다. 66년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이 2억5천만달러였으니, 1억2천만달러는 당시로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런 까닭에 포스코는 오랫동안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이 대부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88년 6월10일 이른바 '국민주' 1호로 주식을 공개했다. 포스코는 국민주 공개를 통해 일반국민이 전체 주식의 절반 이상을보유한 명실공히 '국민기업'이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 과정은 포철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외국인투자자들에게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분 소유에 대한 제한을 하나둘씩 풀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반기보고서 제출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율은 60.4%에 이른다. 반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지분은 3.45%에 불과하다. 앞선 세대들이 식민지 백성으로 겪은 고통의 대가로 받은 피 같은 돈으로 포스코가 설립됐다는 사실은 이제 잊히고 있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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