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세 개 가득 메운 화면 앞에 선 대통령과 부총리의 단어는 한결같이 원대하다.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문재인 대통령)라고 했다.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의 문”(홍남기 부총리)이라고 했다. ‘미래’라는 단어를 아로새긴 듯한 네이버 브레인리스로봇(클라우드에서 통신망으로 제어하는 두뇌 없는 로봇) ‘어라운드’와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전용 차체가 화면 안에서 번쩍인다.
7월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 발표됐다. 5년 동안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이 160조원 투자한다. 디지털·그린 경제로 전환한다. △데이터 댐 △인공지능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리모델링 △친환경 미래차 등을 재정 지원을 집중할 10대 대표 사업으로 정했다.
감동 없는 ‘100년의 계획’
“다들 비슷했을 것 같아요. 신선하지 않네.”(우석진 명지대 교수) “별다른 감동은 없었던…”(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제학자의 평가를 듣기 전, 직관적인 느낌부터 묻는다. 그저 그렇다. 시장 반응도 대체로 미적지근하다. 7월14일 주식시장에서 네이버(-3.37%), 카카오(-2.56%), 두산퓨얼셀(-11.42%) 등 디지털·그린과 엮인 주요 기업의 주가는 다소 하락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차익 실현 탓일 수도 있고, 이미 잔뜩 오른 가격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100년을 설계하는 계획’이 발표된 날, 흥분은 고조되지 않았다.
발표장의 설렘과 바깥세상의 덤덤함 사이, 온도차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경제정책은 그런 것, 공허한 말일지라도 “때에 맞춰 정책을 내며 구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도”(이일영 교수) 하고, 당장 내 삶과는 먼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이전 경제정책에 견줘 가혹한 비판의 대상이 될 만한 내용이 아니기도 했다. 전환을 피할 수 없으니 대응하고, 대응을 넘어 기회로 삼겠다는 것, 정부가 으레 할 만한 얘기다. 나름 이 과정에서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고 얹었다. 해오던 대로(어쩌면 약간 더 힘을 주어서) 발표했고, 언론은 전문가의 비판을 조금 담아 보도했고, 세상은 대개 무심했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강조한다. ‘이번만은 다르다’고. 코로나19 이후 전환은 “대대적”이고, 그래서 뭔가 하지 않으면 “항구적 손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헛헛함을 그저 남겨두기에 개개인에게도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다. 아득하게 여겨지는 ‘구조’라는 것의 변화 속도가 가파르다. 집에 격리돼서, 일터가 생산을 중단하면서, 구조조정 얘기가 들려오면서 크고 작게 체감했을 변화다. 원대한 정부의 포부와 그저 그런 반응의 간극이 이번만은 달리 다가온다. 한국판 뉴딜의 흥분은 어디쯤에서 멈춰버린 걸까? ‘해오던 대로’의 관성이 전에 없던 비극으로 이어질 여지는 없을까. 혁신·전환·뉴딜의 의미를 되짚으며 생각한다.
혁신
한국판 뉴딜, 특히 디지털 뉴딜은 2000년대 정부의 성장동력 정책과 맥이 닿아 있다. 디지털 뉴딜로 “새로운 성장경로”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선도국가를 지향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표현도 비슷하다. “10년 후 우리를 먹여 살릴 산업”(참여정부 차세대 성장동력), “다가오는 또 다른 60년, 대한민국의 성공신화”(이명박 정부 신성장동력), “2020년까지 국민소득 4만불 정조준”(박근혜 정부 미래 성장동력). 저마다 국가와 성장을 강조한다. 수십 년 뒤 먹거리와 선명한 숫자를 내보인다.
관성 앞에 멈춰버린 뉴딜의 흥분
‘정부가 혁신 방향을 지정한다. 유망한 산업을 골라낸다. 자원을 몰아준다.’ 공식이 된 성장동력 정책에 비판은 꾸준했다. “정책의 방향이 자본의 경쟁력 강화, 성장 우선주의, 수출주도형 축적에만 맞춰져 양극화나 불평등 같은 사회적 모순을 관리하는 역할이 방기되고 있다.”(윤상우,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화’) “신성장 분야로의 진입과 투자가 예상보다 크게 저조하다”(장석인 외, ‘한국의 성장동력정책 평가와 향후 발전 과제’)
자원을 몰아 받는 대기업은 이미 정책과는 별 상관 없이 나름의 혁신을 하고 있다가 혁신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새삼 주목받았다. 중소기업을 혁신의 자리에 두는 정책은 정부 조달 사업에 참여하는 단기 대책이 많았다. 결과물이 불명확한 ○○○개 기업 육성 정도가 더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속성은 불균형을 더했다. “이전에도 대기업·수도권 중심의 불균형은 있었지만, 4차 산업의 속성 자체가 독점이나 쏠림을 낳는 면이 큰 만큼 지역·산업·노동 불균형을 한층 깊게 했다.”(이일영 교수) 데이터를 쌓아둔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힘이 실렸다. 생산보다 연구·개발 기능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며 수도권으로 기업 활동이 쏠렸다.
혁신을 두고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나. 고민도 있었고 나름의 답을 찾은 듯도 보였다. “정부가 정책을 펴서 직접 자원을 배분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가 기업가적 혁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는 사회 갈등을 조정·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변양균, <경제철학의 전환>)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정책은 공정한 산업생태계 조성과 중소기업 혁신, 임금 상승에 맞췄다. 가만두면 벌어질 불균형에 집중했다. 눈에 띄는 성과는 더뎠다.
혁신 향한 정부 정책목표와 수단은 ‘안갯속’
돌고 돌아 2020년 한국판 뉴딜은 다시 ‘지정된 혁신’을 향한다. 실은 2019년 뒤늦게 발표된 문재인 정부표 산업·혁신 정책인 ‘제조업 르네상스’ 내용을 이어받았다. 정부가 할 수밖에 없는 것 일부를 포함했다. 공공 데이터를 모으거나 스마트 산업단지를 만드는 인프라 사업이다. 의아한 사업도 없지 않다. 공공서비스를 미리 알려주고 처리하는 똑똑한 인공지능(AI) 정부를 만든다. 학교에 와이파이를 설치한다. 정부 서비스 질을 높일지는 모른다. 다만 이것이 혁신을 이끄는가 묻는다면 “재정사업을 펴고 공공 조달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 혁신의 확산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성태윤 연세대 교수). 다시 혼란하다. “혁신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한 기준이 서 있지 않다보니, 기업이 알아서 잘할 법한 사업과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이 두서없이 섞여 있다.”(이일영 교수)
전환
그리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할 일의 목록을 다시 짚는다. “전환 과정을 따라오기 어려운 곳들을 지원해야 한다. 혁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성태윤 교수) “그럴듯한 것들로만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처질 데로 여기고 관심을 꺼버리는 제조업·영세서비스업·지역이 전환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다, 언제 어떤 산업이 필요할지 모를 불확실성의 시대에 다양한 산업 구색을 맞춰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이일영 교수) 디지털·녹색 경제로의 전환은 산업적 기회이기에 앞서 ‘적응’의 문제다. 정부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디지털·그린 경제로의 전환으로) 일자리 미스매치, 저숙련 노동 수요 감소 등도 함께 진행.
디지털 기반이 취약한 전통 서비스업 및 중소 제조업체 등에 충격이 집중.
‘전 국민 고용보험’ 재원 조달 방안도 아리송
뒤처진 이들의 적응을 돕는 건 정부가 해내야 할 일이다. 해법을 제시했다. 전 국민 고용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했다. ‘가능할까?’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은 고용 안전망 선언을 넘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다. 적자 국채를 발행할지 증세를 할지. 정부의 대답은 ‘지출 구조조정’뿐이다. 그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성태윤 교수)
디지털과 녹색으로 전환하는 과정 곳곳에도 갈등의 씨앗이 있다. “공공 데이터를 모아 데이터 댐을 만드는 인프라 사업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다만 데이터가 기업 이윤을 위해 쓰일 때 데이터 주인인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사회적 신뢰가 필요한 작업이니만큼 넓게 보며 오랜 준비가 필요한데 그런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우석진 교수)
녹색 전환은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탄소 중립 사회를 ‘지향’한다”고 적었을 뿐이다. 탄소 중립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6월 한국판 뉴딜 밑그림(경제정책 방향)보다 나아간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사이 유럽연합과 미국이 치고 나갔다. 유럽연합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우리 돈 1천조~2천조원 이상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돌연 초라해졌다.
두루뭉술한 청사진 속에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이 감춰졌다. 역시 경제정책 발표 때마다 반복된 일이다. “논란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우석진 교수)라고 짐작된다. 이번만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았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목표 없는 그린 뉴딜로는 기후위기를 막아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에서 한국판 뉴딜이 “친기업 반서민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뉴딜
다시 한국판 뉴딜 발표장. 디지털 댐, 녹색 댐을 말하는 부총리 목소리, 상기돼 있다. 1930년대 미국 뉴딜의 후버댐 사진이 스친다. 후버댐으로 상징되는 미국 뉴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평가는 대개 회의적이다. 뉴딜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미국 실업률은 20%를 웃돌았다.
반면 뉴딜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호불호는 갈려도 대개 동의한다. “뉴딜은 미국 정부의 권한을 영구적으로 강화했다. 사회보장을 자선에서 권리로 바꾸었다.”(앨런 그린스펀,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미국 뉴딜에서 가져와야 할 은유는 댐이 아니라 사회개혁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한국판 뉴딜이 기존의 혁신성장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새로 포장해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은 얼마나 틀릴까. …디지털 산업 육성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개혁으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나원준, ‘한국판 뉴딜의 비판적 검토와 대안 모색’)
“결국 딜, 딜이 빠졌다”
“결국 딜, 딜이 빠져 있다는 것.” 우석진 교수가 가장 아쉬웠던 대목을 짚는다. 한 걸음만 들어가도 ‘딜’해야 할 것이 넘쳐난다. 노동의 쏠림과 감소 앞에 기업과 정부와 노동자가 감당할 부담을 어떻게 나눌까? 녹색 전환을 위해 좌초할 것들을 위한 대안은 뭘까? 데이터 경제와 정보인권 사이 절충점은 있을까?… 하나같이 까다롭다. 뉴딜의 성과와 부담이 공정하게 나뉘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답 못 찾을 질문이다. 나설 이 정부뿐이다. 청사진과 찬란한 말로 감춰둘 수도 없다. ‘이전과는 달리’ 2020년 뉴딜이라면 적혀야 할 것들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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