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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심보’에 누더기 된 노동시간 단축

내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 ‘주 52시간제’ 시행 앞두고
유연근로제 확대·특별연장근로 도입 등 법 개정 당시 합의 무력화

제1289호
등록 : 2019-11-24 10:38 수정 : 2019-11-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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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다. 국회가 됐든 정부가 됐든 이해 당사자들의 주장이 격돌하고 그 사이에서 ‘흥정’이 이뤄진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회와 정부의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주 52시간제) 시행과 ‘보완대책’ 논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2004년부터 시행된 ‘주 40시간제’는 온데간데없고,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에 맞추기 어렵다는 경영계 주장에 정부와 정치권 모두 휘둘리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본래 취지인 장시간 노동하지 않을 권리, 일터에서 건강할 권리, 일·생활 양립을 위한 권리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거래되고 흥정된다.

경영계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경기 불황으로 인한 중소기업 부담 악화를 들어, 2020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되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늦춰야 한다거나, 유연근로제 시행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당의 일부 의원과 정부도 이 의견에 동조한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저도 (국회의원으로서 주 52시간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투표했다. 그래서 스스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제는 늘 어려운데 노동시간 단축은 언제 하나

정부의 이런 기조는 11월1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추진방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고용부는 국회가 탄력근로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50인 이상 사업장의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원래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 때만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실시할 수 있는 ‘주 12시간 초과 연장근로’의 인가 사유를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에 대해서도 허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 52시간 노동’, 더 근본적으로는 ‘주 40시간 노동’ 기본 원칙을 허물게 된다.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는 해석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번 개정된 시행규칙을 다시 돌려놓는 일은 매우 힘들다. 경제 상황과 중소기업은 정부와 국회 입장에선 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기에 가장 적정한 시점은 언제일까? 2018년 2월 국회가 5년간의 논의 끝에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의 시행 시점을 2018년 7월로, 50~299인 사업장의 시행 시점을 2020년 1월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논의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은 어떠한 주장을 했으며, 그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주 52시간 보완대책’은 당시 입법 과정에서 왜 빠진 것일까?


주 52시간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주 40시간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2003년(2004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단계적 시행) 이후 딱 10년 만인 2013년부터다. 주 40시간제 시대에 주 52시간을 목표로 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시작된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이는 고용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당사자 합의를 통해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한다. 법에는 연장근로·휴일근로·야간근로의 언급이 있는데, 고용부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별개로 해석했다. 1주에 12시간인 연장근로의 한도가 소정근로일(통상 월~금)에만 해당하고, 휴일근로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주 40시간제임에도, 휴일노동 ‘8+8시간’이 더 생겼고 여기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 합치면 68시간이 돼버렸다. 고용부의 이런 해석에 따라 기업들은 주 40시간제하에서도 노동자에게 68시간씩 일을 시켜도 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2013년부터 ‘주 52시간 상한’은 기본 합의사항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는가’ 논란은 주 52시간제 논의에도 불을 붙였다. 연장근로이면서 야간근로인 경우 각각 50% 할증률이 적용돼, 100% 할증이 된다. 시급이 1만원이라면, 야간근로이면서 연장근로일 경우 1만5천원이 아니라 2만원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연장근로이면서 휴일근로인 경우 50%를 할증해야 하나, 아니면 100%를 할증해야 하나. 이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소송이 법원에 접수됐고, 하급심 법원에선 100%, 50% 각각 다른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경영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할증률이 100%가 되면, 즉 ‘중복할증’이 되면 기업의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시절인 2013년부터 여야 의원을 불문하고, 주 노동시간 상한을 52시간으로 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쏟아졌다. 2015년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노사정 소위를 만들어 경영계·노동계를 법안 논의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당시 여야는 주당 노동시간 한도가 52시간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개정법 시행 시기와 중복할증, 특별연장근로 허용 문제를 두고 여야가 대립했다.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중복할증을 해야 하고, 정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 개정법의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하며,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그 반대였다. 법안의 세부 내용은 다를지라도, 도입 시기와 전 사업장 시행 시기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2016년 1월부터 시행돼, 전 사업장에는 2018년을 넘기지 않는 기간 안에 시행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2015년 김무성 의원이 발의한 안도 시행 시기가 2017년부터 2020년 1월1일로 정해져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는 지속됐지만 대선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 52시간제를 실시하고 임기 중에 매년 80시간씩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시행 시기를 300인 이상 사업장엔 2019년,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5~49인 사업장은 2021년으로 대폭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2017년 11월24일 김영주 당시 고용부 장관이 “68시간 행정해석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고용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8년 7월1일부터 시행이 가능하다고 선회했다.

2017년 5월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주 52시간제’ 앞당긴 것은 ‘중복할증’ 포기 대가

2018년 2월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8년 7월,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을 시행 시기로 하는 극적 타결이 이뤄진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야당은 탄력근로제 확대와 특별연장근로도 주장했으나 이는 개정법에 반영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회의록에 적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중복할증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자 한 말이다.

“(사업장 규모별 시행 시기 간격을) 1년6개월로 줄이고 특별근로시간 아예 양보를 했고 탄력근로제도 아예 양보를 했고, 그렇지요? 그 다 양보한 이유가 (휴일·연장근로 할증률을 100%가 아닌) 50%로 해준다 이것 때문에 다 양보를 했던 것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그것(특별근로시간·탄력근로제) 양보를 그건 다 그대로 굳히고 50% 그것은 흔들어버리려고 하면 도둑놈 심보지. 정치를 그렇게 하시면 됩니까? 그게 팩트 아닙니까? 그래서 그 50%를 흔들면 우리는 원천무효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당기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미루고, 특별연장근로가 불허된 것은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을 포기한 대가였다. 주 52시간제의 보완대책으로 거론되는 탄력근로제 개정 논의는 애초 2022년 12월31일까지 논의하기로 근로기준법 부칙에 적혀 있다. 이 역시 여야 합의의 결과다. 2018년 2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근로시간 단축이라고 하는 주 52시간이 전면 정착되는 2023년 1월1일부터 탄력적 근로시간제도가 확대 적용되도록 반드시 21대 국회에서도 그 방향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논의를 꼭 진행해주시기를 희망한다는 요청을 남기고자 합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시기를 2023년 이후로 정했다는 것이다.

법 개정 1년도 안 돼 깨진 ‘국회의 타협’

이러한 국회 합의는 바로 깨진다.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에 따른 부작용 논란이 계속되면서 정부는 노동 문제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최저임금도 올랐는데 주 52시간으로는 기업을 운영할 수 없다”는 비판이 경영계·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2013년부터 국회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는데도 경영계에서는 준비가 덜 돼 52시간 적용이 어렵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중복할증에는 반대했으면서도, 노동시간이 단축돼 노동자의 임금이 깎이게 생겼다는 기사가 보수언론에서 나왔다.

이런 경영계의 공세에 밀려 정부와 국회에서 ‘보완대책’으로 제기된 것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다. 2022년까지 논의하기로 한 국회 합의가 있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2018년 12월, 김학용 현 국회 환노위 위원장(자유한국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탄력근로제 확대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현재 최대 3개월인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노동자들은 3개월을 주 64시간씩 내리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 또한 연장·야간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사라져 임금 손실도 발생한다. 진통 끝에 경사노위가 2019년 2월,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대신 근로일 사이 11시간 휴식 보장 등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안을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영계와 보수야당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 플러스알파를 요구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자거나, 선택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선택적근로제는 탄력근로제 같은 주 최대 근로시간 한도가 없이 단위기간을 평균해 52시간을 넘기지만 않으면 되는 제도다. 단위기간이 확대됐을 때, 며칠씩 24시간을 밤새워 일해도 무방하다.

정부와 여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의 불만이 상당하고,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며, 내년 총선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경영계와 야당이 요구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취지다.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만 양보하는 타협

정부와 여당이 경영계와 타협하는 와중에 발생한 노동자의 손실, 즉 노동자들이 양보한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애초 1주를 7일이 아니라 5일로 봤던 정부의 기이한 행정해석 때문에 주 최대 68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다 52시간으로 바로잡는 대가로 통상임금의 100%를 할증받을 수 있었던 휴일·연장근로수당의 할증률이 50%로 깎이게 됐다. 이렇게 50%로 할증되는 대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막아 ‘과로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듯했으나, 다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추진되면서 물거품이 됐다. 선택근로제도가 개정될 경우 과로 가능성은 더 커진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이고 양보를 거듭하는 것은 노동자가 됐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가 현실화하면, 기업이 ‘경영상 이유’라고 주장하고 고용부가 인가해주면 52시간을 넘기는 연장근로도 해야 한다. 한정애 의원은 야당 시절이던 2017년 3월20일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순간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그대로 두고 다른 합의를 흔들어버리려는 여당을 향해 “도둑놈 심보”라며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던 하태경 의원은 주 52시간제 논의 과정에서 또 다른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결론이 날 때 어쨌든 우리가 같이 짊어지고 나가야 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2017년 11월23일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고작 1년9개월 전에 국회가 합의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단축에선, 노동자 편에서 책임을 짊어진 이도, ‘도둑놈 심보’를 비판하는 이도 없어 보인다. 타협의 산물이라는 정치에서 양보해야 하는 것은 늘 노동자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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