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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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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소송’ 다음은 통신사 대 CP 싸움

방송통신위원회 대신 페이스북 손들어준 재판부…

2016년 개정된 ‘상호접속고시’가 원인
등록 2019-09-03 02:34 수정 2020-05-07 01:06
방송통신위원회 대 페이스북 소송에서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회 대 페이스북 소송에서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언론이 ‘세기의 소송’이라 이름 붙였던 페이스북-방송통신위원회 소송이 페이스북의 완승으로 끝났다. 페이스북이 일부 통신사 이용자의 접속 경로를 국내 ‘캐시서버’가 아닌 국외로 우회하면서 접속 속도가 지연되는 등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고, 방통위가 이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법원은 시정명령이 위법하다고 8월22일 판결했다.

그동안 국내에선 페이스북·유튜브·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공급사업자’(CP)가 시장을 장악하면서도 ‘적정한 통신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에 방통위가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정부가 글로벌 기업에 철퇴를 내렸다’는 ‘애국심’ 섞인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소송에서 방통위가 완패하면서 접속경로 변경 사건을 계기로 CP를 규제하려던 방통위는 ‘머쓱’한 상황이 됐다. 또한 망 이용료 논란의 근본 원인인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상호접속고시)을 개정하라는 CP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국내 일일 접속자 수가 1200만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은 국내에 서버가 없다. 서버와의 거리가 멀수록 접속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이용자가 자주 쓰는 콘텐츠를 가까운 곳에 쌓아두고 신속하게 전송할 수 있는 서버, 캐시서버다. 페이스북은 KT와 계약해 비용을 내고 목동 데이터센터에 캐시서버를 설치한 뒤, 이를 SK텔레콤(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U+) 이용자와 연결해왔다. SK와 LGU+ 이용자는 페이스북에 접속하려면 캐시서버가 설치된 KT 통신망을 쓸 수밖에 없다.

SK와 LGU+ 접속 경로 국외로 변경

그런데 2016년부터 개정된 상호접속고시가 시행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2016년 이전까지 규모가 비슷한(동등계위) 통신사들 사이에 ‘접속통신료’를 정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된 상호접속고시는 서로 주고받은 데이터 양을 계산한 뒤, 데이터를 많이 보낸 쪽이 상대방에게 접속통신료를 정산하도록 했다. KT 캐시서버에 접속하는 SK와 LGU+ 이용자 때문에 KT가 내야 할 돈이 많아졌다. KT와 페이스북은 2016년 11월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약 만료일인 2018년 7월 이전에 페이스북이 SK·LGU+와도 직접 접속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2017년을 전후해 SK와 LGU+ 이용자의 접속경로를 KT 캐시서버에서 국외로 바꿔 이들 이용자의 페이스북 속도가 느려졌다. 페이스북 쪽은 “KT가 접속통신료 정산을 이유로 다른 두 통신사에도 직접 접속할 것을 요구해 캐시서버 설치를 1년 넘게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이미 계약한 KT와의 관계를 고려해 접속경로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전기통신사업법이 금지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로 보고,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의 서비스 제공으로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법원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고,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이라고도 보지 않았다. 판결문을 보면 “접속이 지연되거나 불편이 초래되는 경우까지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법 위반 여부가 통신사의 전송 용량과 다른 CP들의 트래픽 양 등 외부의 여러 요소에 의해 좌우돼 수범자(법률을 적용받는 자)의 법 집행 여부에 관한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고 봤다.

네이버·왓챠 등 “‘접속고시’ 개선하라”

그동안 통신사들은 CP들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망 이용 대가를 추가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또한 방통위는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에 CP의 의무로 적정한 망 용량 확보, 전송경로 변경 때 통신사에 미리 통지, 이용자 피해가 예상되면 전송경로 일방적 변경 불가 등의 내용을 담으려 했다.

이러한 방통위의 가이드라인 제정 논리를 법원 판결이 모조리 깨고 있다. 재판부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통신사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CP가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이용자의 피해도 “SK와 LGU+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CP 대상 규제 확대에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인터넷 이용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으며, 이는 정보를 제공하는 CP가 있음으로써 더욱 고양될 수 있다”며 “만약 CP에 대하여 서비스 품질과 관련하여 법적 규제의 폭을 넓혀간다면 CP의 정보 제공 행위 역시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CP를 제재하려면 전기통신사업법의 명문 규정이 필요하다”며 법안 개정 필요성을 재판부도 언급은 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침해한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들었던 근거를 재판부가 모두 배척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네트워크 품질이 저하돼 트래픽 양이 감소하였다 하더라도, 서비스 품질의 저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전혀 없다”거나 “이용자들의 (통신사 상대) 민원 건수는 객관적 근거로 삼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국내냐 국외냐,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갈렸던 CP들이 ‘상호접속고시 개정’에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CP 대 통신사로 전선이 정리되는 셈이다. 8월26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국내 CP인 네이버·왓챠플레이·카카오·티빙, 글로벌 CP인 구글·넷플릭스·페이스북은 공동성명을 내고 “망 비용 구조의 근본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상호접속고시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통신사 간 상호정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통신사가 망 비용을 계속 올릴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고착화했다”며 “망 비용이 합리화되면 국내에서 혁신적인 IT 서비스가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고 이용자도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고 밝혔다. 반대로 통신사들은 8월28일 CP 성명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내어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CP가 망 이용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것은 통신요금 인상 등 이용자의 부담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기정통부 “연말까지 개선 완료”

양쪽 모두 ‘이용자 편’임을 주장하는 가운데, 서로 국외 사례 등을 들어가며 논란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상호접속고시를 관장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미 상호접속고시와 관련한 연구반을 운영 중이며, 합리적 개선 방향에 대해 통신사·CP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연말까지 개선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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