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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피하는 공무원들

‘공무원 복지포인트’ 법적 근거 없이 수년간 미징수…

일반 기업·공공기관엔 과세 ‘형평성’ 논란
등록 2018-04-17 22:26 수정 2020-05-03 04:28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공무원들이 여가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사실상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공무원들이 여가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사실상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했다는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죽음을 피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세금을 피하는 사람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프랭클린이 한 말은 “죽음과 세금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였다고 한다. 프랭클린은 자신에게 세금이 부과될 것이 확실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국회의원 등 공직에 있었던 프랭클린에게 세금이 부과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정부 13년 동안 과세 대상 ‘검토 중’

그러나 프랭클린이 미국 공무원이 아니라 한국 공무원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한국 공무원에게는 해마다 개인별로 평균 100만원의 공무원 복지포인트가 지급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복지포인트가 과세 대상인지 아닌지 확실히 답을 내리지 않고 있다. 무려 13년 동안 검토 중이다. 그동안 당연히 복지포인트에 과세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달리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명백히 과세 대상이고 그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민간기업은 물론 공기업, 사립학교 교원이 받는 복지포인트에는 과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과 국립학교 교사의 복지포인트만 비과세가 되는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공무원에게 복지 비용을 적립해주는 제도로 2005년 처음 생겼다. 문화, 여행 등 여가생활에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 사용처에 ‘쇼핑’도 포함돼 있다. 사실상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돈이다.

이 복지포인트에 과세가 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공무원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복지포인트는 과세 대상이 되는 게 마땅할 것 같은데, 비과세로 운영되는구나”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과세로 제도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과세를 해야 하는 곳에 미징수를 하고 있다. 세법적으로 과세를 해야 마땅하지만,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세금을 걷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어떻게 법적 근거 없이 세금을 걷지 않는 위법행위가 지속되고 있을까? 그 비밀은 기획재정부가 국세청에서 건네받은 ‘폭탄’에 들어 있다.

일반 사기업에서 지급하는 복지포인트는 물론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소 등 공공기관 비공무원이 받는 복지포인트를 근로소득으로 보고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은 국세청 예규로도 확인할 수 있는 일관된 원칙이다. “사용 방법에 관한 기준이 없고, 업무 관련으로 지출했다는 증빙 자료가 없이 근로를 전제로 규칙적으로 지급된 금액은 과세 대상인 근로소득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2003두3089)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5년 미납 세금만 5천억원

국세청은 유독 공무원이 받는 복지포인트엔 과세하지 않았다. 그 대신 2005년 기획재정부에 질의 공문을 보냈다. “공무원에 지급하는 복지포인트 지급액이 과세 대상 근로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이듬해인 2006년에 재차 질의했지만 기획재정부는 13년이 되도록 여전히 회신하고 있지 않다. 보다 못한 한 민원인이 2010년 기획재정부에 동일한 질문을 했다. 회신을 하지 않으면 민원처리에관한법률 위반이 되니 회신을 해야 했다. 그러나 회신 내용은 길지 않았다. “검토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질의에는 기획재정부 역시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상 공무원 복지포인트는 인건비가 아니라 물건비에 분류되는 것이 맞다. 법제처 해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과세 여부는 행정법(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이 아니라 세법에 따른다. 세법은 행정법과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예산편성상 분류되는 계정 형식과는 별개로 세법은 실질과세 원칙에 따른다. 근로를 제공하면서 영수증 증빙 없이 정기적으로 받는 금액은 특별한 비과세 규정이 없으면 모두 근로소득으로 보는 것이 현행 근로소득세법을 해석하는 대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해마다 세금이 징수되지 않는 공무원 복지포인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복지포인트 지급액은 약 3조3천억원, 미징수 세금 규모는 약 5천억원에 이른다. 매년 1천억원 넘는 세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정부는 이런 황당한 일을 13년 동안 지속하고 있을까? 공무원 1인당으로 따지면 추가로 거둘 세금은 대부분 연 10만원 미만이다. 공무원들이 복지포인트를 과세 대상에서 빼라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근대국가의 기본 망각한 처사

정부가 복지포인트를 법적 근거 없이 미징수했다고 인정하면 너무 큰일이 벌어지게 된다.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이 지난 5년치 공무원 복지포인트에 따른 세금을 가산세와 함께 내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뿐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말단 공무원까지 세금과 가산세를 토해내야 한다면 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복지포인트 문제는 자기 임기 중에는 그냥 뭉개고 넘어가고 싶은 폭탄이 됐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발생하는 복지포인트는 과세하지만, 과거 5년치 미납 세금과 가산세를 면제하는 법적·정치적 해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적폐 청산이 마무리 국면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해마다 1천억원 넘는 세금을 법적 근거 없이 징수하지 않는 것은 적폐 정도가 아니라 근대국가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다. 빠른 해법 마련을 촉구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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