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열풍이 거세다. 온 국가가 24시간 운영되는 사설 도박에 푹 빠졌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하고, 블록체인이라는 미래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신기술을 받아들이며 겪는 성장통이라는 시각도 있다. 부동산으로 자산 증식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흙수저 세대’가 목돈을 벌 마지막 기회라는 말도 나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가격 </font></font>이렇게 비트코인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이유는 놀라울 정도의 가격 상승세 때문이다. 비트코인 하나(1BTC·비트코인의 단위)의 가격은 연초 100만원에서 8월 500만원을 돌파했고, 12월8일 2500만원까지 올랐다가 이틀 만에 1500만원으로 떨어졌다. 이 글을 쓰는 12월14일 무렵엔 1800만~1900만원대를 오르내린다. 물론 이 가격도 언제 변할지 모른다. 생일 선물로 비트코인을 달라는 아들에게 아빠가 “뭐, 1570만원? 세상에, 1720만원은 큰돈이란다. 대체, 1690만원을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라고 답했다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다. 그만큼 비트코인 가격은 변동성이 심하다.
비트코인 열풍에서 빠질 수 없는 국가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암호화폐 정보사이트인 코인힐스가 취합한 자료를 보면, 12월14일 기준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한국 원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12.3%였다. 일본 엔화(40.0%), 미국 달러화(36.4%)에 이은 3위였다. 유럽연합의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러시아 루블화 등 세계 주요 화폐들이 원화의 뒤를 이었다. 비트코인을 넘어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리플 등 전체 암호화폐로 범위를 넓히면 전체 거래에서 원화의 비중은 20% 가까이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는 12월7일 한국을 암호화폐 투기 열풍의 ‘그라운드제로’(폭발 지점)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투기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지난 9월 초기코인발행(ICO·Initial Coin Offering)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고, 12월13일엔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미성년자, 국내 비거주자, 제도권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왜 이렇게 변동성이 심할까. 비트코인은 다른 재화나 통화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공급은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의 설계자이자 익명의 인물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발행량을 미리 정해뒀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출범할 땐, 10분에 50BTC가 새로 발행됐고, 이 발행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어 올해엔 10분에 12.5BTC가 발행된다. 2017년까지 발행된 비트코인 총량이 1600만여 개이고, 이를 합쳐 향후 100년간 발행될 양이 총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수요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해서 그에 맞춰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구조다. 이런 특성을 경제학에서는 ‘공급의 비탄력성’이라고 한다. 반면에 수요는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쉽게 변한다. 한마디로 비트코인은 매우 탄력적인 수요와 매우 비탄력적인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다.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따라 증가해 수급을 맞춰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그러다보니 가격은 철저히 수요로 결정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킹·위변조 없이 지급·결제 기능</font></font>그렇다면 수요를 보자. 사람들은 어떤 판단에 근거해 비트코인을 샀을까. 합리적인 가치 평가를 해서 샀을까, 아니면 그저 가격이 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샀을까. 흔히 전자를 ‘투자’라고 하고, 후자를 ‘투기’라고 한다. 합리적인 가치 평가를 하려면, 구매 대상의 ‘내재적 가치’(펀더멘털)를 따져봐야 한다. 기업의 지분증권은 주식 한 주가 얼마만큼 수익을 내는지 측정하는 ‘주당순이익’(PER), 한 주의 지분이 소유하는 순자산인 ‘주당순자산’(PBR) 등으로 내재 가치를 평가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 내재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먹거나 입을 수도 없고, 사용가치도 없다. 가치의 기준조차 없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지금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을 투기로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내재 가치가 없는 것은 비트코인만이 아니다. 달러·유로·엔 등의 법정화폐도 내재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들 화폐는 이 돈을 찍어낸 각국 정부가 가치를 보증한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아닌 블록체인 기술이 보증한다. 블록체인이란 일종의 거래 기록(장부)이다. 거래 기록 한 묶음이 디지털로는 하나의 파일이라서 ‘블록’이고, 이 블록들이 사슬(chain)처럼 묶여 있어 ‘블록체인’이란 용어가 탄생했다. 이렇게 ‘묶임 파일’을 참여자가 똑같이 공유한다. 한마디로 모두가 똑같은 장부를 공유하는 셈인데, 이런 분산형 공유장부는 기존 전자화폐가 풀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였던 이중지급 문제를 해결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저녁 식사를 먹고 자신이 소유한 0.1BTC를 냈다면, 그 사람에게 이제 0.1BTC가 없다는 정보를 수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이 때문에 그 사람은 다음날 어제 썼던 0.1BTC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지갑의 주인은 공개되지 않지만, 어느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지갑 간에 얼마가 이동했는지는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공유된다.
이런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인해 비트코인은 2009년 출범 뒤 단 한 번도 해킹을 겪지 않았다. 이론상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컴퓨터들의 성능을 총합한 것에서 절반이 넘는 컴퓨터 자원을 갖지 않는 이상 해킹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비트코인을 이중지급하지 못했고, 위변조하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트코인은 ‘화폐’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해킹이나 위변조 없이 지급·결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난 9년간 증명한 셈이다. 비트코인의 취약점을 찾으려 했던 해커들은 오히려 비트코인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왔다. 대신 해커들은 블록체인이 아닌 거래소, 개인의 지갑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해킹 사태로 파산한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Mt.Gox)가 대표적인 사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올해 유독 크게 오른 이유는? </font></font>그렇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왜 올해에 유독 크게 올랐을까. 크게 세 요인이 꼽힌다. 바로 초기코인발행(ICO), 하드포크(시스템 업데이트), 선물 거래 때문이다.
2013년 비트코인의 가격은 처음 1천달러에 육박하며 연초보다 70배 이상 급등했다. 이 무렵 암호화폐의 미래를 둘러싼 주된 관심사는 ‘이것이 미래의 결제 수단이 될 것인가’였다. 그런데 비트코인 가격이 연초 1천달러로 시작해 12월 중에 2만 달러에 육박한 올해에도 여전히 비트코인을 받는 상점이 늘었다는 보도는 흔치 않다. 비트코인을 지급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거래 수수료가 올라가는 중이고, 거래량이 몰리면 거래 체결이 지연되는 등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한계도 드러냈다. 그런데도 올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용처를 분명히 확인한 분야가 있다. 바로 초기코인발행이다.
초기코인발행이란 ‘암호화폐(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로 투자를 받고 투자자에게 새로운 암호화폐를 지급’하는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는 사업자는 새로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특정한 가치를 담는다. 그 가치가 회사의 소유권일 수도 있고, 새로 추진하는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일 수도 있다. 혹은 새로 발행하는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처럼 지급·결제 수단을 지향하거나, 이더리움처럼 플랫폼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초기코인발행 사례였던 이더리움은 2015년 개발된 이후 수많은 코인 발행의 기폭제 구실을 했다. 올해에만 수백 개의 코인이 새로 발행되면서 전체 암호화폐가 1300여 종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지난 9월 정부가 초기코인발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초기코인발행이 사기에 자주 악용되고, 이 방법을 쓰지 않고도 기업공개(IPO)나 크라우드펀딩 등 기존 제도화된 자본조달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종의 배당 역할을 하는 하드포크도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하드포크란 시스템 업데이트를 뜻한다. 밥상에 올라가는 ‘포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기존 블록에 새로운 체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만일 기존 장부에 새로운 체인을 연결하지 않고 기존 체인을 이어가겠다고 결정하면, 블록체인은 두 개로 분화된다. 이런 이유로 기존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하드포크로 탄생한 비트코인캐시, 비트코인골드가 무상으로 주어졌다. 기업의 경우 분할되어 주식시장에 상장되면, 두 기업의 시가총액 합은 기존 기업의 가치와 유사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하드포크된 뒤 새로 등장한 암호화폐가 기존 것과 동반 상승하는 경우가 잦았다.
마지막으로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가 비트코인 파생상품을 상장한 것도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트코인의 파생상품이 미국의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12월10일부터, 시카고선물거래소(CME)에서는 12월18일부터 거래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이 소식을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들 거래소 편에서 보면, 비트코인 선물 거래는 새로운 수익사업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단계 사기 수법에 기댄 투자” </font></font>이런 호재들을 고려한다 해도, 최근의 폭등 상황을 완벽히 설명할 순 없다. 오히려 비트코인의 최근 가격 상승세는 비이성적 기대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2월4일 국회 공청회에서 “최근 가상화폐 열풍은 다른 투자자들이 자기가 산 것보다 높게 사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투자에 뛰어드는, 다분히 폰지(다단계 사기) 수법적인 특성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시카고선물거래소의 수석경제학자인 에릭 놀랜드도 12월13일 금융투자협회교육원에서 주최한 특별강연에서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구매 자체를 원하는) 순수한 구매자는 없다. 이 시장의 (수익)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투기 성향의 구매자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인들의 투기 성향은 비트코인 이전에도 증명된 바 있다. 인터넷 붐으로 형성된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1990년대 후반에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엔 환율 변동으로 시세차익을 얻는 FX마진거래가 큰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엔 하루에도 10배 가까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주식워런트증권(ELW)이라는 단일 파생상품의 거래액이 코스닥 시장보다 많은 적도 있었다. 주식시장에선 심심치 않게 테마주 열풍이 불면서 ‘묻지마 투자’ 트렌드를 이어간다.
현재 한국에선 암호화폐의 가격 측면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의 첫 상용화 사례일 뿐이며, 이 기술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될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리크 부테린은 9월25일 한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비트코인은 암호화폐를 운영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했지만, 이더리움은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한다. 가상화폐는 경제적인 도구일 뿐이다. 한국 투자자들이 이더리움 플랫폼의 기술과 철학을 더 많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투기 에너지가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됐으면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암호화폐 거래소 투명성 높아져야 </font></font>마지막으로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분명히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블록체인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거래소 안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내부 서버에만 기록될 뿐, 블록체인에 기록되지 않는 이른바 ‘오프체인’ 거래다. 따라서 은행 등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서버의 기록이 훼손되면 고객 자산은 보호받지 못한다. 보안이나 투명성 등에서 금융기관에 못 미치는 거래소에 자산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만일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온체인’ 거래를 하려면, 거래소 지갑에서 개인 지갑으로 암호화폐 자산을 이동해야 한다. 이 경우 거래소와 블록체인 네트워크 양쪽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고객도 자기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지, 때때로 거래소에 정보공개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은 해킹된 사례가 거의 없지만, 자신의 개인 지갑은 언제든 해킹될 수 있단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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