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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음식 맞나요?

BBQ가 연 ‘2만원 치킨’ 시대…

광고·마케팅비 소비자에게 떠넘기기보다 경영 효율화가 우선
등록 2017-05-25 07:12 수정 2020-05-02 19:28
치킨 가격 인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수익 개선 효과는 적고 소비자 부담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치킨 가격 인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수익 개선 효과는 적고 소비자 부담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56년 전, 닭이 물 밖으로 나왔다. 오븐으로 직행했다. 1961년 전기통닭구이집 ‘영양센터’가 서울 명동에 문을 열면서다. 담백하게 백숙을 먹던 사람들은 로스트치킨(통닭구이)의 기름진 맛에 반했다.

1973년 식용유 대량생산이 프라이드치킨(닭튀김) 시대를 열었다. 조각난 닭에는 얇은 튀김옷이 입혀졌고 독특한 양념이 배었다. 한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 ‘림스치킨’(1975년)이 만든 ‘엠보치킨’이었다. 10년 뒤인 1984년 미국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 ‘KFC’가 물결무늬 튀김옷이 독특한 ‘크리스피치킨’을 한국에 들여왔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곧, 바삭하고 기름진 튀김옷과 짭짤한 닭의 조화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 됐다.

치킨이 ‘서민적’이었던 기간은 길지 않다. 1960~80년 치킨은 명동 인근으로 출퇴근하던 사무직이나 백화점에서 장을 보는 계층이 살 수 있던 중산층의 음식이었다. 1990년대에도 치킨은 여전히 운동회, 소풍, 생일, 미팅 때나 먹을 수 있는 ‘이벤트’ 음식이었다.

‘2만원 치킨’에 대한 심리적 저항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배달 서비스를 앞세운 프랜차이즈 간의 경쟁으로 치킨은 국민 메뉴로 떠올랐다. 급기야 5~6년 전부터는 누구나 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싸게 사서 먹을 수 있는 ‘1인 1닭’ 시대가 열렸다. 이윽고 치킨은 ‘솔(soul)푸드’로 격상됐다. 지갑이 얇은 청년들은 ‘치느님’으로 작은 사치를 부리고, 일에 찌든 직장인들은 ‘치맥’으로 위로받는다.

그러니 이들에게 ‘치킨 2만원 시대’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장면이 5천원에서 6천원으로 오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1위 업체인 제너시스BBQ(이하 BBQ·가맹점 수 기준)의 2만원짜리 치킨에 대한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서 거센 ‘심리적 저항’이 읽힌다.

대선 직전인 5월1일이었다. BBQ는 대표 메뉴인 황금올리브치킨을 1마리당 1만6천원에서 1만8천원(12.5%), 황금올리브닭다리반반을 1만8500원에서 1만9900원(7.5%)으로 올렸다. 지난해 신제품 마라핫치킨순살(2만900원)을 출시하며 ‘2만원 시대’를 연 데 이어, 일부 기존 상품의 가격도 2만원 문턱까지 인상한 것이다. 시장에선 교촌치킨·BHC 등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 전망이 쏟아졌다.

소비자들은 관련 기사 댓글 등을 통해 불만을 떠뜨렸다. “서민 음식 맞나요.” “이제 치킨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시대가 됐네요.” “전 요즘 치킨 대신 고기를 사다 구워먹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조차 못 먹겠네요.” “불매운동 합시다.”

이런 반발을 BBQ도 예상하고 있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닭값이 오르던 3월10일, BBQ는 당장 열흘 뒤부터 메뉴 가격을 평균 9~10%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론과 소비자가 비판에 나선 것은 물론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국세청 세무조사’ 의뢰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했다. 뭇매를 맞은 BBQ는 가격 인상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한 달여 만에 계획대로 치킨값을 인상했다.

매출 절반 이상이 본사로

BBQ가 고집을 꺾지 않은 이유는 뭘까. 관계자는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친 가맹점주들의 요구가 많았다”며 “이번 인상으로 본사가 취하는 이득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이후 8년간 가격이 동결되는 동안 인건비와 임차료는 상승하고 배달앱(애플리케이션) 수수료 등 신규 비용이 발생해 가맹점주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는 설명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부 가맹점주들 사이에선 4~5년 전부터 마진 하락을 이유로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나왔고, 이 내용은 최근 가맹점운영위원회 대표와 본사 협의로 최종 확정됐다.

다만 BBQ는 가맹점의 수익성이 얼마나 악화됐는지 따져볼 수 있는 ‘치킨의 원가 구조’ 공개를 꺼렸다. 그나마 가격 인상을 앞둔 지난 3월 BBQ가 소비자 설득 목적으로 제작한 광고 전단지를 통해 가맹점의 대략적인 비용과 수익을 추정해볼 수 있다. 1만6천원짜리 황금올리브치킨 기준으로 가맹점을 운영하는 부부의 인건비(수익)는 2009년 3500원에서 올해 500원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8년 전에는 부부가 하루 치킨 50마리를 팔아 둘이 총 17만5천원의 일당을 챙겼다면, 지금은 2만5천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도저히 매장을 운영할 수 없는 수준이다.(아래 그림 참조)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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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단지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각 비용의 산출 근거를 밝히지 않아서다. 예컨대 배달앱 수수료(900원)만 하더라도, 모든 소비자가 앱을 통해 치킨을 주문하는 건 아니다. “보통 10건 중 1~2건, 많아도 3~4건”이라고 가맹점주들은 말한다.

BBQ의 설명이 석연치 않지만, 일부 가맹점주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린 것만은 분명하다. 2015년 친구와 함께 BBQ 매장을 낸 김현빈(가명)씨는 1년 만에 사업에서 먼저 손을 뗐다. 한 달 3천만원 가까이 매출이 났지만, 친구와 수익을 나누면 50만~100만원이라도 집에 가져가는 달은 손에 꼽혔다.

일단 매출의 절반 이상이 본사로 들어갔다. 닭, 올리브유, 파우더, 치킨무, 소스, 포장박스 등 원·부자재 비용이었다. 본사는 고정적으로 로열티·광고비는 걷지 않는 대신 원·부자재에 마진을 붙여 수익을 낸다고 했다. 이를 가맹점주들은 ‘물류비’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본사 직원들이 물류비가 (매출의) 50~55%라고 설명했는데, 실제 해보니 60% 이상”이었다. 매출의 40%에서 상가 월세 120만원, 배달 직원 2명 인건비 400만~500만원 등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가격이 오른 뒤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박지훈(가명)씨가 운영하는 수도권의 BBQ 매장은 최근 보름 새 주문이 평소보다 30%가량 줄었다. 각오했던 대로다. 치킨은 ‘너무나 쉽게 대체 가능한 상품’이다. 치킨 프랜차이즈만 260개, 가맹점·개인 매장을 합친 업체 수는 4만 곳이 넘는다. 그래도 대표 메뉴의 가격이 1천~2천원 올랐으니 총매출은 엇비슷하다. 1마리당 판매 가격에서 비용을 뺀 마진율은 20%에서 30%로 회복됐다. “다른 업체들도 가격을 올리면 언젠가 매출이 늘어나겠지”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광고·마케팅에 주력하는 BBQ

핵심은 ‘2만원’이 아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인건비와 지대가 오르면 제품 가격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비자는 구매 행위로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다만 기업이 경영 효율화 노력 없이 손쉽게 제품 가격만 인상하려 한다면 소비자의 비판과 외면을 피하기 어렵다.

가격을 올리기 전, BBQ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가맹점주들이 가장 원하는 수익성 개선 방안은, 매출의 50~60%를 차지하는 본사 물류비를 줄여주는 것이었다. 여력도 있었다. BBQ의 영업이익은 2015년 139억원에서 지난해 191억원으로 52억원이나 껑충 뛰었다. 그러나 이는 선택지에서 빠졌다. ‘생산농가-대형 도계업체-프랜차이즈 본사-가맹점’으로 굳어진 프랜차이즈 물류 체계의 한계를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림 10호(1kg)의 (고기에 간이 배고 부드럽게 하는 과정을 거친) 염지닭이 개인점에는 4500원(2014년 기준)에 들어오는데, 프랜차이즈는 이보다 더 비싸게 염지닭을 (대형 도계업체로부터) 받는다. 개인점처럼 여러 납품업체를 선정할 수 없어 닭 가격 유인 효과가 없다.”()

프랜차이즈와의 거래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는 하림 같은 대형 도계업체가 닭을 키우는 생산농가에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다. 계약농가가 35일간 닭 1마리를 키워 하림으로부터 받는 사육 보수(순수익)는 400원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BBQ는 치열한 경쟁 속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며 광고와 마케팅에 주력했다. 야구선수 류현진과 배우 하정우 등 톱스타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빅모델 전략’을 고집해온 BBQ는 지난해에만 광고선전비와 판매촉진비로 128억원을 썼다. 경쟁사 브랜드인 교촌치킨(147억원)보다는 적지만 BHC(101억원), 굽네치킨(98억원), 네네치킨(10억)보다는 많다.

원칙적으로 광고비와 판촉비는 본사가 낸다고 하지만, 종종 가맹점주도 비용을 댄다. 예컨대 매출이 하락하면 본사와 가맹점이 광고비와 사은품 비용을 절반 정도씩 부담해 추가 광고와 이벤트를 한다.

5월 초 인상된 가격으로 인한 가맹점 수익의 일부도 광고비 명목으로 떼일 가능성이 높다. 5월 말 가맹점운영위원회에서 주문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가맹점에서 치킨 1마리당 500원씩 받아 광고비로 쓰는 방안을 검토·결정하기로 했다. 본사 역시 1마리당 500원씩 출연하지만, 결국 소비자가 BBQ의 광고비를 떠안게 된 셈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프라이드치킨 1마리를 1만원 안팎에 파는 호치킨·썬더치킨·부어치킨·치킨마루 등 저가 브랜드의 영업 비결 말이다. 우선 물류비에서 차이가 난다. BBQ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는 10호(1kg) 염지닭을, 중소형 프랜차이즈는 주로 7~9호(651~950g) 염지닭을 쓴다. 가맹점에 공급되는 가격은 각각 6천원, 4천원 안팎으로 2천원 차이가 난다. 원가 차이가 큰 건 아니다. 생닭고기 기준으로 8호는 10호보다 600원 정도 싸다. 그러나 대형 도계업체에서 넘겨받은 염지닭을 본사가 가맹점에 납품할 때 중소형 프랜차이즈 본사는 마진을 적게 남기는 편이다.

‘1만원 치킨’의 영업 비결

그보다 큰 차이는 운영 방식에서 발생한다. 서울 대학가의 썬더치킨 가맹점주 고광수(가명)씨는 매장에선 프라이드치킨을 1만원에, 포장은 8천원에 판매한다. 2천~3천원이 추가되는 배달은, 인건비를 줄이려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도 매출의 30%는 수익으로 남는다”고 했다. 본사가 마진을 적게 남기기도 하지만 비싼 광고를 하지 않는 덕분이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치킨 가격이 3만원으로 오르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 혜택과 부담을 당사자들이 적정하게 나눠진다는 전제가 있다면 말이다. “이번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가맹점주들 사정이 나아지고 육계 (생산) 농가들도 적정한 사육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면 BBQ에도 명분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치킨 매장이 포화상태라 매출이 오르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치킨 2만원 시대의 ‘치킨 게임’을 가난한 소비자와 생산자, 치킨집 사장님은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참고 문헌
, 정은정 지음, 따비 펴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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