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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은 거액 퇴직금, 노동자는 희망퇴직 종용

포스코 ‘부실’ 계열사 확장과 정리… “제대로 책임진 경영진이 누가 있나요”
등록 2016-02-23 14:24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한겨레 이정아 기자

포스코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적자를 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 때부터 국내 1위 철강업체로 그동안 적자를 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015년 경영실적은 연결재무제표(계열사까지 통합해 자본과 이익 등을 따지는 재무제표) 기준으로 당기순손실 96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58조1920억원으로 2014년에 견줘 큰 폭(10.6%)으로 감소했다.

포스코는 침울하다. 2년 전 정준양 회장에서 권오준 회장으로 사령탑을 바꿔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떨어지는 영업이익 등 실적을 반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내민 카드는 구조조정 가속화다. 포스코는 1월28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투자자포럼에서 2016년에는 35곳의 계열사를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4곳을 구조조정해 2조1천억원의 재무 개선 효과를 얻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계열사를 구조조정하는 것은 전임 정준양 회장 시절 사업 다각화를 위해 70여 곳(국내 기준)으로 계열사를 늘린 게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정 전 회장이 인수·합병과 계열사 신설 등으로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소진시켜 포스코가 불황에 휘청거리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 전 회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구조조정 자초한 급격한 계열사 확장

2014년 1월 권오준 회장 체제로 바뀐 뒤 포스코는 계열사 군살 빼기에 돌입했다. 2014년 4곳을 구조조정한 데 이어 2015년에는 34곳의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포스하이알 등 19곳은 청산했고, 포레카 등 11곳은 매각했다. 포스하이메탈 등 4곳은 다른 회사와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계열사를 급격히 늘렸다 줄이는 과정은 진통을 낳고 있다. 직원들은 물론 기업 전체에 생채기도 남겼다. 광양제철소 안에 자리잡은 계열사 포스하이메탈은 포스코가 지난 6년 동안 무엇을 잃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포스하이메탈은 포스코가 2009년 9월 동부메탈·동부제철과 합작해 만들었다. 세 회사가 모두 771억원을 투자해 자동차 강판 등에 들어가는 원료인 고순도 페로망간을 만들기로 했다. 포스하이메탈은 정준양 전 회장이 2009년 2월 포스코 회장에 오르자마자 의욕적으로 추진한 큰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수입 등에 의존하던 페로망간을 만들어 커지는 합금강 수요에 대응하자는 장밋빛 전망이 바탕이 됐다.

권오준 현 포스코 회장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시절 고망간강 기술 개발을 주도해 이 사업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포스하이메탈 직원들은 알고 있다. 포스코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의 힘으로 만든 계열사인 셈이다.

하지만 포스하이메탈의 실적은 장밋빛 전망과 달리 비탈길을 내려왔다. 포스하이메탈은 2011년 전남 광양에 연간 7만5천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불경기로 수요도 줄어든 상태에서 중국산 철이 값싸게 국내로 밀려들어왔다. 공장 수익성은 땅에 떨어졌다. 포스하이메탈은 2010년 58억원, 2011년 298억원, 2013년 121억원, 2014년 14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5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결국 지난해 자본금을 다 까먹는 상태까지 갔다.

경영 악화의 효과는 입사한 지 4~5년도 안 된 직원들에게 닥쳤다. 포스하이메탈은 지난해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60여 명이던 직원을 90여 명으로 줄였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생부’에 오른 개인에게 면담해서 퇴직을 종용했다”고 포스하이메탈 직원들은 전했다.

회사는 공문을 통해 “희망퇴직 뒤에도 회사가 계획하는 인력 구조조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득이하게 정리해고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입사해 회사를 다니다 군대에 간 직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종용했다.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아무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군대 간 사원도 희망퇴직시켜

“남은 동료들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려니’ 하거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까지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지 않냐’는 심정으로 희망퇴직당하는 동료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죠. 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청춘을 포스하이메탈에서 시작했던 김석원(가명)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에게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하이메탈에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포스코에 합병시키기로 결정했다. 철강시장 불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새로 습득한 기술과 설비를 남기기로 한 것이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키우자고 했던 권오준 회장 체제 아래서 고급 제품에 필요한 공장을 없애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지키려는 노력은 공장 설비에만 적용됐다. 합병 회사인 포스코는 설비만 가져갈 뿐 일하는 사람들을 포스코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포스코엠텍이라는 포스코의 또 다른 자회사로 입사하라고 했다. 포스코엠텍에 적을 두고 본사인 포스코에 ‘파견근로’ 형태로 옛 포스하이메탈 설비를 그대로 운용하라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 정도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겠죠. 어차피 갑이니까요.” 희망퇴직으로 포스하이메탈을 떠난 김씨는 회사가 2월19일부터 남은 직원들에게 전직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이미 간접고용 비율이 높은 기업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고용공시 현황을 보면, 포스코의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46.7%(전체 비정규직은 52.2%)에 이른다. 전체 공시 대상 2942개 기업 평균(20.1%)을 훨씬 뛰어넘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는 직영 노동자들과 차이가 크다. 포스코 사내하청노조는 열악한 처우와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을 키우려 하고 있다.

직원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강요되는 전직에 저항할 수도 없고, 간접고용이 싫다고 회사를 나가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포스코엠텍은 1년 단위로 공장 운영 계약을 포스코와 맺는다. 만약 포스코엠텍이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거나, 직영 노동자가 설비에 투입되면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직원들은 알고 있다”고 했다. 복지 수준도 기존 포스하이메탈보다 떨어진다.

먼저 회사를 떠난 희망퇴직자들의 모습도 이들을 불안하게 한다. 포스하이메탈을 나간 이들은 대부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서울의 4년제 공과대학을 나와 입사했다가 퇴직한 이도 재취업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살아남은’ 직원들은 전해들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들이 3~4년 전에 포스하이메탈을 선택했을까.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포스하이메탈이 존속하기 어려운 상태여서 합병을 결정했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포스코엠텍으로 옮겨 경력 인정 등 대우를 그 전과 동등하게 해주기로 했으니 현재의 구조조정 방안이 노동자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해명했다.

3년도 예측 못한 ‘우향우’ 경영의 대가

그러나 김씨는 직원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고용승계는 하지 못한다’는 합당한 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으니 직원들은 포스코에 화가 나죠. 직원이 기계만도 못한가요. 우리가 경영을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포스하이메탈 전 직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부실 경영은 이전부터 감지됐다. 공장은 시작부터 현장직보다 사무직이 많은 상태였다. 포스코 임원 출신인 포스하이메탈의 전 사장은 “10년 뒤면 회사가 잘나갈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호언했지만 쌓이는 부실을 보지 못했다. 어렵게 제철소를 만들었어도 나중에 탄탄대로를 걸었듯 ‘우향우 정신’(포항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동해 영일만 바다에 모두 빠져 죽을 각오로 하자는 뜻)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추억이 광양에 가득했다.

최고경영진의 판단도 비슷했다. 광양제철소장 출신인 정준양 전 회장은 취임 뒤 포스하이메탈 등 새로운 자원을 개발해 먹거리를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희귀금속과 원료 등을 중심에 두는 이른바 ‘자원 확보 외교’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포스코의 새 사업은 정권의 관심과 맞아떨어졌다. 정 전 회장은 내·외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철강 이외에 다각화된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36개이던 계열사는 71개로 늘었다.

포스코의 적극적인 다각화가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세계시장의 불경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현대제철이 경쟁자로 등장했으니 기존 사업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 이명박 정부 실세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취임한 탓에 정 전 회장의 ‘독립경영’에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이 소유한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줘 12억원 규모의 이익을 보게 하고 부실기업인 성진지오텍을 인수해 포스코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게 한 혐의(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등)로 지난해 불구속 기소되기까지 했다.

정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질 일이 그것에서 끝날지는 의문이다. 부실 경영 논란 속에 포스코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정 전 회장의 경영이 끝난 뒤 포스코의 매출액은 2011년 68조9387억원에서 2015년 58조1920억원으로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3조7143억원에서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 960억원으로 전환됐다. 한국신용평가는 2015년에 낸 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투자로 확대된 재무 부담이 있었고, 철강 경기 침체 장기화와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본원적인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용등급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빚어진 계열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포스코 경영진을 믿었던 직원들만 내몰리고 있다. 수백억원을 투자해 진출한 포스하이메탈은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자본금을 다 까먹었다.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현 경영진으로 옮겨간 부실 논란

포스코 부실 경영 논란은 현 경영진에게까지 옮겨붙고 있다. 지난 2월5일부터 포스코의 한 직원은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님 포스코를 살려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정부·국회를 상대로 대관 업무를 했던 회사 간부가 외부에서 권오준 회장 등 현 경영진을 비판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포스코는 안팎으로 뒤숭숭하다.

이에 대해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그 직원은 포스코 내·외부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대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적절치 않다고 판단돼 직무를 전환시켰고, 이후에도 회사를 음해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 징계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이 만든 포스하이메탈은 3월이면 사라진다. 정 전 회장 시절에 계열사 투자를 주도했던 임원들은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나갔다. 포스하이메탈에서 청춘의 꿈을 묻은 김석원씨는 “이렇게 만들어놓고 제대로 책임진 경영진이 누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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