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노동자위원이 항의하자 “어린 것이…”

[처음 참여한 청년노동 당사자의 최저임금위원회 참관기 ①] 청년노동을 ‘용돈벌이’로 취급하는 등 ‘비공개 장소’에서 막말 오가, 필요하다면 생중계라도 해야
등록 2015-07-15 04:18 수정 2020-05-02 19:28

최저임금위원회는 세종시 정부청사에 자리하고 있다. 잿빛 건물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높고 검은 울타리들은 외롭고 삭막하다. 의전용 의자가 둥그렇게 배치된 회의장 내부도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절박한 염원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공간은 아니다.
나는 지난 4월30일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으로 위촉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988년부터 운영됐는데, 청년노동의 당사자가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그 뒤 짧은 시간이나마 최저임금을 삶의 기준으로 놓고 살아가는 많은 분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지난해 6월18일 세종시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모습. 최저임금위는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이 회의를 열어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한다. 노동계 위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으로 결정됐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지난해 6월18일 세종시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모습. 최저임금위는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이 회의를 열어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한다. 노동계 위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으로 결정됐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인사 뒤 기자들은 정중히 ‘추방’

숱한 만남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절박함을 읽었다. ‘오늘의 생존을 넘어, 내일의 희망까지 품을 수 있는 최저임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되뇌었다.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조직도, 노동조합도 가져본 적이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공명할 수 있는 논의 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청년유니온은 2010년 출범한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만 15~39살이라면 취업준비생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실업자도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우리는 매년 최저임금을 청년노동 문제를 풀어갈 중요한 열쇳말로 잡고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벌여왔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 바깥에서의 싸움은 대개 허망한 기억으로 남았다. 노사 양쪽이 몇 차례 최저임금 요구안을 주고받다가 어느 날 새벽 공익위원이 제출한 최종안을 표결에 부쳐 ‘최저임금 ○○○○원’으로 결정됐다는 등 언론 기사로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보고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언론에 공개되는 시간은 대단히 짧다.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의 위원이 자리에 모이면 국기에 대한 경례가 진행된다. 그다음은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의 인사말이 이어진다. 인사말이 끝나면 기자들은 회의장 바깥으로 정중히 ‘추방’된다.

위원 27명이 밀도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에도 논의 구조, 위원 구성, 협상 시기와 같은 기초적인 정보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용자위원이 쉽게 폄하하는 ‘노동’

어차피 회의장에서 오간 논의를 바깥에서 알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일까. 일부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막중한 권한에 따르는 민주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한 사용자위원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업체의 노동자들을 “근무시간에 당구 치며 놀러다닌다”고 모욕했다. 한 노동자위원이 강하게 항의하자, 고성이 오고 갔다. 그는 노동자위원에게 “어린것이”라며 반말을 퍼부었다.

이뿐이 아니다. 일부 사용자위원은 청년 노동을 ‘용돈벌이’ ‘부차적인 노동’으로 취급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특히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위태로운 지위의 노동자, 불안정하기 때문에 더 절박하게 일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느낄 수 없었다.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30원 수준만 인상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만 등장했다. 회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사용자위원들이 너무도 쉽게 폄하하는 노동이 알고 보면 나의 동료 조합원들의 삶이고, 내 형제의 삶이고, 아직 청년유니온의 이름으로도 대변되지 못한 이들의 삶이며,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금액은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정해져 있고, 회의장 안에서의 협상은 이미 정해진 정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두고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저임금위원으로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이런 의구심을 키워온 데에는 그간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책임이 크다.

앞으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삶의 조건이 좌우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를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올해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홈페이지에서 시시각각 공개하는 등 일부 문제점을 개선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생중계라도 해야 한다.

지난한 협상을 거쳐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6030원으로 결정됐다. 안타깝다. 현재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생존을 위한 기준선’으로 볼 때 적자 상태다. 최저임금을 올려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고, 인간으로서의 삶과 존엄을 채워줬어야 한다. 6030원이라는 금액은 이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10만원이 가져다줄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월급 기준으로 10만원가량 인상된 최저임금이 우리 삶에 가져다줄 가능성을 곱씹어본다. 이 10만원이, 고된 취업 준비 끝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영화 한 편의 여유가 되길 소망한다. 집에 있는 자식에게 자장면을 사주면서 탕수육도 함께 시켜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함을 채워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들이 단 몇만원이라도 저축해서 불투명한 미래를 조금씩이라도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길 소망한다. 이 작은 소망들이 모여 오늘의 싸움보다 더 큰 내일의 싸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