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그래픽, 장대하고 매혹적인 서사 구조, 정교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조작 방식과 그 뒤에 깔린 최신 물리 기술, 여기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배경음악까지. 이른바 ‘웰메이드 게임’은 다양한 장르가 응축된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게임 한 편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거야 그렇다 치자. 게임을 만들려면 ‘심장’인 물리 엔진부터 구매해야 한다. 투박하고 조잡한 그래픽은 어김없이 독자로부터 외면당한다. 게임 제작에 들어간 기술이나 노하우는 ‘저작권’이란 이름 아래 꼭꼭 봉인된다. 돈도, 전문 인력도 부족한 이에겐 게임 한 편 만들기 위한 ‘뼈대’를 갖추는 일부터 높은 문턱이 놓여 있다. 후발 게임 제작자는 말하자면 적잖은 비용을 치르고 선배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게임 제작 공식을 거스르는 실험이 등장했다. ‘핸드메이드 히어로’는 게임 제작 프로젝트다. 이들은 남들이 마련해둔 개발도구를 쓰지 않고 한땀한땀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게임 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으로 찍어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했다. 완성된 게임뿐 아니라 게임 제작에 필요한 노하우나 기술까지 남김없이 공유하겠다는 얘기다.
‘핸드메이드 히어로’ 게임 코딩 과정은 한 줄도 빠짐없이 동영상으로 공개된다. 지루한 코딩 장면만 나열하는 건 아니다. 이 대목에 왜 이 코드를 썼는지, 코딩 결과는 게임에서 어떤 형태로 구현됐는지 해설도 곁들인다. 게임 프로그래밍 동영상 강좌에 가깝다.
‘핸드메이드 히어로’ 프로젝트는 2014년 11월 출범했다. 게임 코딩 ‘중계’는 주 1회, 2시간 정도 진행된다. 원하는 이에겐 게임 코딩 동영상이 공개되기 전에 알림도 보내준다. 인터넷 게임 중계 서비스 ‘트위치’에 가입하고 전자우편 알림을 활성화한 뒤 ‘핸드메이드 히어로’ 계정(@handmade_hero)을 팔로하면, 새로운 코딩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전자우편으로 알려준다. 개인 사정으로 게임 강의를 빼먹었다 하더라도 낙담 말자. 강의 동영상은 유튜브 ‘핸드메이드 히어로’ 채널에 접속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게임은 윈도뿐 아니라 맥, 리눅스 등 다양한 PC 운영체제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될 예정이다. 심지어 모듈형 칩셋 ‘라즈베리파이’에서도 즐길 수 있다. 일정대로라면 올해 안에 주요 기능은 구현되고, 2016년께 최종판이 공개될 전망이다.
‘핸드메이드 히어로’는 엄연한 유료 게임이다. 15달러를 내고 사전 주문을 한 사람에겐 완성판 게임뿐 아니라 전체 소스코드도 무료로 제공된다. 물론 게임을 사지 않아도 동영상 강좌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15달러는 이를테면 게임 완성을 바라는 후원금이다. 굳이 후원자가 되지 않겠다면 좀더 기다리면 된다. 출시 뒤 2년이 지나면 게임은 저작권 제약이 없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개된다. 저작물 보호 장치도 걸지 않는다. 단, 2년이 지나기 전에 게임 전체나 일부 코드를 임의로 가져다 쓰려면 사전에 제작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게임을 통째로 무단 복사하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이다.
‘핸드메이드 히어로’ 프로젝트의 진행자인 캐시 무라토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게임 속 그래픽은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 양티안 리가 맡았다. 캐시 무라토리는 시중에 도는 ‘프로그래밍 방법론’ 가운데 적잖은 것들이 올바른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 곳곳에서 대학생들이 그에게 프로그래밍 코드를 봐달라며 전자우편을 보냈지만, 대개는 잘못된 교재 탓에 첫단추부터 잘못 꿰는 일이 수두룩했다고 그는 말했다. 캐시는 직접 제대로 된 게임 프로그래밍 교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가 ‘핸드메이드 히어로’를 띄운 이유다.
게임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최신 개발 기술이나 교재를 습득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발견한 특정 알고리즘이나 문제 해결 기법을 널리 공유하는 개발자는 드물다. 그러니 신참 게임 개발자로선 기초를 차근차근 다지기가 만만찮다. ‘핸드메이드 히어로’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대신, 앞장서서 새 루트를 개척하고 후학들이 올라올 계단을 놓았다. 프로젝트의 가치가 빛나는 곳도 이 대목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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