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방한에 맞춰 그의 책 을 감수한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목표는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책을 읽기에 벅찬 이들에게 쉽게 설명해보자는 것이었다. 지면 한계상 다 쓰지 못한 내용까지 온라인을 통해 넉넉히 풀어냈다.
세계는 불평등한가? 아니 한국은 불평등한가? 일반 사람 대부분은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학문의 영역은 다르다. 경제학계에서는 ‘부의 분배가 개선되고 있다’ ‘다른 나라와 견줘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이 지점에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뛰어든다.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왔다.” 피케티는 저작 서장에서 “각 진영이 상대편의 지적 나태함을 꼬집으면서 자신의 게으름의 구실로 삼는 이 귀머거리들 간의 대화를 생각하면, 완전히 과학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연구가 담당할 역할이 있다”고 밝힌다. 그리고 300년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부의 분배’에 관한 데이터를 내놓고 21세기에는 자본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자본이 자본을 낳는 이른바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세계는 피케티의 주장에 뜨겁게 반응했다. 한국 사회의 반응도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그러나 “토론의 관심이 좋은 질문들에 집중되도록 할 수 있다”는 피케티의 목표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9월16일 연 세미나에서는 심지어 “71년생 아들뻘 학자가 내놓은 논리”라는 말이 나왔다.
한글판 번역서를 감수한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부)는 “피케티 세미나가 많은 것은 반갑지만 책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주장들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생산적 논쟁이 되려면 연구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피케티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이강국 교수를 9월18일 만나 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본 수익률 떨어뜨리는 직접적 도구가 세금-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길게는 300년의 선진국 데이터를 사용해서 자본주의 자체에 불평등을 어떻게 심화시키는 동학이 있는지 밝혀냈다. 역사적 패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론적으로 접근한 것도 새로웠다. 피케티는 분석 결과를 통해 20세기 중반 전쟁과 대공황 등 충격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반짝 불평등이 감소한 것으로 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과정이 아니라 뭔가 (외부) 충격이 있고 이에 따른 정책 변화 등 정치적 노력이 있었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반짝 불평등 감소 효과가 사라졌고 감세 정책이 시작되면서 (부의 분배가) 19세기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피케티의 발견이다. 세습자본주의가 강화돼 불평등이 커질 가능성이 꽤 크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논리적인 귀결은 세금이다. 자본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직접적 도구가 세금이다.
-피케티가 결론 내지 대안이라고 얘기한 ‘세계 자본세’는 현실적인가.=피케티도 유토피아적이라고 썼다.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도 만나서 물어보고 싶지만 (웃음) 이상주의에 대한 열망이다. 몇 년 내에 실현되기는 힘들다. 그게 실현될 상황이라면 노동조합이 훨씬 더 강해지거나 다른 큰 변화도 가능한 상태일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보고서에는 ‘돈을 많이 벌거나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내용이 나온다. OECD에서도 탈세를 많이 하는 돈 많은 자산가들에게 세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물릴지 곧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한다. 세금에 대한 국제적 흐름은 존재한다.
세금과 성장률 간 유의미한 관계 없어-그동안 세금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생각이 달랐나.=피케티가 이 분야의 전문가다. 그의 심층 연구를 보면 최고소득세율은 경제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최고소득세율이 인하되면 상위 1%의 부만 증가한다. 논란이 꽤 많긴 한데 그럼 왜 상위 1%의 부만 증가하냐. 흔히 인센티브가 생기니 일을 더 열심히 해서 그들이 더 많이 받는다고 했다. 피케티는 이 주장을 부정한다.
예전에는 세금으로 많이 가져가버리니 기업 경영자가 협상할 필요가 없었다. 주주를 설득해 월급을 많이 받아도 국가가 가져가니 올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세금을 깎아주니 생산성에 기여하는 것은 예전과 똑같아도 많이 가져갈 수 있게 됐고 올려야 할 유인이 생겼다. 상위 1%의 부의 증가는 상당 부분 정치적이고 더 많이 가져가려는 노력 때문이다.
-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1억원을 교육비로 증여하면 과세하지 말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중이다. 피케티의 주장이 생각난다.= 돈을 진짜로 못쓰는 사람들은 서민,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들이 그거 면세해준다고 해서 수요를 더 창출하고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는 정말 적을 것이다. 의 관점에서 보면 세습자본주의를 강화하는 셈이다. 할아버지가 부자이면 (교육을 통해) 손자가 부자가 되는 이른바 불평등이 대대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몇몇 이들은 소득불평등보다 이동성이 더 중요하다고 피케티를 비판하는데, 사실은 미국같이 부와 소득이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세대간 이동성이 가장 낮은 나라고 북유럽처럼 평등한 나라가 이동성이 가장 높다. 그 가장 중요한 고리가 바로 교육일 텐데, 이미 한국은 미국하고 비슷한 상황 아닌가.
- 담배 세금을 높이겠다는 정부 방침도 요즘 증세 논쟁을 낳고 있다.= (담배 가격을 높이면 흡연율이 떨어지는) 가격탄력성으로 표현되는 효과도 있지만, 흡연율이 뚜렷하게 떨어지는 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담배세가 가장 높은 나라가 그럼 흡연율이 제일 낫냐, 그건 아니다. 그리고 담배소비는 가격상승 없이도 이미 감소되어 왔다. 진짜 국민들을 담배 끊게 만들고 싶으면 담뱃값을 엄청나게 많이 올리면 된다. 4500원으로 가격을 잡은 것은 세수에서 꼭지점 선을 잡은 거 아니냐.
물론 장기적으로 증세를 해야한다. 어느 정도 적극적인 재정지출도 필요하고, 특히 사회복지 확충을 위해서는 세금이 꼭 필요하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세금수준이 낮고 사회복지지출은 더욱 낮다. 심지어 그들이 2만달러 GDP 수준일때 견줘봐도 낮다.(현재 한국의 사회복지지출은 GDP의 9-10퍼센트인데 OECD 평균이 약 22퍼센트이다.)
복지를 하겠다고 합의가 있고 선언을 했으면 증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서민 세금은 반대해야 한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담배세를 올리는게 아니고 먼저 법인세 부터 원래대로 돌려야 한다. 다음으로 부자부터 세금을 올리고, 중산층까지 세원을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에 간접세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해를 못할까.
중요한 것은 세금을 효과적으로 낭비없이 쓴다는 것을 정부가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강바닥에 몇 조를 낭비했던 것처럼 정부가 말도 안되게 세금을 써버리면, 국민들은 내 돈 어디로 갔나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세금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니 피케티 방한을 앞두고 토론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짚고 있나.=한국에서 피케티를 통해 배울 게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한국의 불평등은 (피케티 연구처럼) 계측하면 (다른 나라보다) 더 높게 나온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소장이 잠정 추계한 것을 보면 자본/소득의 비율은 7이 넘는다. (불평등을 보여주는 이 값은 피케티가 내놓은 통계를 통해 볼 때 20세기 중반 2~3 수준으로 낮아졌다가 다시 5~6 수준으로 높아진 상태다.) 전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분배 상황이 나쁜 상태다. 학자들이 더 많이 걱정해야 하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면 투자가 저해돼 성장률이 떨어지고 더 불평등해진다고 말한다. (피케티는 세습자본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하기 위해 소득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국만 봐도 세금 변화와 경제성장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전엔 세금을 엄청 붙였는데 그때가 성장률이 더 높았다. 세금과 성장률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 그리고 피케티가 제시하는 누진소득세는 50만-100만 달러 이상의 매우 높은 소득구간에 80퍼센트까지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따라서 피케티처럼 세금을 올리면 샐러리맨이 세금폭탄을 맞는다는 것은 틀렸고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별로 근거가 없다.
=피케티의 자본은 생산에 쓰이는 자본뿐만 아니라 금융자산, 주식이나 채권 등을 다 포함한다. 부동산도 들어간다. 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기업이 아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개인 간의 불평등을 보려면 금융자산 등을 포함하는 게 현실적으로 맞다.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경제학식으로 보는 자본은 협소하다. 생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자본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양쪽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다 합쳐야 그곳에서 나오는 개인의 이익을 파악할 수 있고, (결론으로 내놓은) 세금을 매길 수 있으니, 피케티 자신의 정책 대안과도 맞는다.
- 스티글리츠 교수의 등 여러 다른 불평등을 다룬 책보다 이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역사적 데이터에 충실하다. 그동안의 접근법은 가계조사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다보니 상위 소득이 빠지는 게 많았다. 피케티 교수 등은 세금 자료를 사용해 기존 불평등 통계에서 빠진 부분을 제대로 보여준다. 특히 자산 불평등은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었다. 상속세 데이터를 통해 선진국의 역사적 패턴을 보여준 것은 그동안 학자들이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장기적 데이터에 기초하여 불평등 문제를 자본주의에 내재한 동학으로서 설명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대체탄력성 문제나 부동산의 역할 등을 둘러싸고 논란도 존재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이야기하듯이 경제학 교과서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까지 자본 개념에 포함시켜 -이준구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서평을 통해 “경제학의 배경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이 책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감수자로서 이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소개한다면.=아내와 같은 비전공자가 읽는다면 재미없고 딱딱한 책일 수 있다. 그래도 끝까지 읽기 위해 노력해 주시면 좋겠다. 피케티도 서민들이 특히 숫자와 데이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쓰고 있다. 감수자로서 오역을 잡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옮길 때 잘 읽히게 써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하기도 했다. 별도로 낸 해제(이정우 교수)도 같이 넣으려 했는데 프랑스 출판사에서 책에는 피케티의 원고만 들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서 뺐다.
굳이 다 읽기 힘들다면 서장은 다 읽는 게 좋겠고 1장은 개념 정리로 보고, 5장과 6장은 그래프가 많아서 볼 필요가 있다. 9장과 10장도 보고, 15장은 결론의 핵심이므로 꼭 읽어보면 좋겠다.
피케티의 연구에 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은 독자들은 피케티가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쓴 논문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100”, “Top Incomes in the Long Run of History” 등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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