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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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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

혁신 실패의 과정과 고민을 낱낱이 담은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대담…

매체 이용 ‘푸시’에서 ‘풀’로, 뉴스 가치 알려주는 새로운 문법 찾아야
등록 2014-06-10 04:55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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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의 ‘혁신보고서’가 미디어 업계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유력 신문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의 고민과 과제, 한계를 솔직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은 의 혁신보고서가 한국 미디어 산업에 주는 의미를 짚어보는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은 지난 6월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는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가운데)이 맡았고,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왼쪽)과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 센터장이 토론을 벌였다. _편집자


사회- 이번 보고서에서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부터 말씀해주시죠.

김익현(이하 김)-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나 해법이라고 제시한 것도 사실은 국내에서 많이 논의된 내용입니다. 이 보고서가 의미 있는 건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고민의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단 거죠. 도 별수 없구나 싶으면서도 참 대단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스노폴’(Snow Fall)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보기에 보고서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복 가능한 플랫폼’이에요. 스노폴로 대표되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반복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약해진 뉴스 브랜드

강정수(이하 강)- 가 혁신의 시작점과 관련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했다고 봐요. 그간 는 혁신을 기술적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 일간지 의 경우엔 처음부터 조직문화를 건드렸거든요. 이 어떻게 조직을 혁신할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는 전세계를 선도하는 언론으로서 일회성 프로젝트를 폼나고 멋지게 해보려 했으나 정작 기본적인 조직혁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한계를 뒤늦게 드러낸 거죠.

사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매체 이용 방법은 ‘푸시’(Push)였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늘 우리 집 앞에 배달됐고, 방송 뉴스는 우리가 TV를 켜면 볼 수 있었죠. 보고서를 보면 더 이상 푸시가 아니라 ‘풀’(Pull) 미디어가 중요하다, 이러거든요.

- 2000년대 초반 이후 음반시장이 망했습니다. 대부분이 불법 복제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음반 소비 방식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음반 하나를 구매했어요. 아이팟이 나오면서 곡별 구매가 가능해졌죠. 소비자는 이젠 패키지로 묶어서 사는 걸 싫어해요. 뉴스도 마찬가지예요. 뉴스도 건별로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패러다임의 변화고, 독자(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권력 변화죠. 이제 뉴스 브랜드의 이미지는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소비자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소비 방식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지적으로 읽었습니다.

-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는 저널리즘이 ‘캐논 회의’ 역할을 해왔다고 봐요. 수많은 뉴스거리 중에서 가치를 정해 독자에게 전달했죠. 디지털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캐논 권력의 붕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간의 캐논 역할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캐논이 작동할 수 있었던 프레임이 해체되는 거죠. 2008년 가 표적집단면접(FGI)을 했어요. 20대의 뉴스 소비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서요. 그때 26살 여학생이 했던 말이 지금도 회자되죠. “뉴스가 중요하면 이제 그 뉴스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If the news is important, it will find me.) 결정타는 스마트폰이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은 이미 끝났다고 느낍니다.

과연 독자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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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뉴스의 브랜드 효과가 사라진 것, 나 같은 권위 있는 언론의 브랜드 효과가 사라진 것과는 별개로, 뉴스란 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알고 싶어 하는, 어쨌든 캐논이 정해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왜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엔 달라지게 됐을까요.

- 캐논을 만들어 이게 오늘의 중요한 뉴스야, 이러던 시기보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던 시기가 훨씬 길었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매체 시대가 뉴스 전체의 역사에서는 굉장히 이단적인 시대입니다. 대중매체 시대에 뉴스를 대량 유포하는 구조는 구비됐지만 대량 소비하는 기술은 못 따라갔던 거죠. 이제 SNS 등이 발전하면서 대량 소비 플랫폼이 전세계적으로 구축된 거죠.

- 보고서의 메시지는 우리가 독자를 진짜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나름대로 진화한 조직임에도 그랬다는 점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언론사는 독자를 진지하게 알려는 노력이 미진했다는 거죠. 조금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본다면, 19세기 말 윤전기가 하루 생산하던 양은 기껏해야 7천~8천 부였다고 해요. 7천 명이 누가 될까, 타기팅이 명확했어요. 그러다 윤전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갑자기 많이 찍어낼 수 있게 되니까 흔히 말하는 중산층에도 읽게 하자, 이러면서 나타난 게 육하법칙에 의한 사건 보도죠. 저는 이때부터 저널리즘이 독자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신문은 5천만 명에게 팔리지 않더라도 항상 5천만 명을 의식합니다. ‘과연 독자가 누구일까’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혁신보고서는 그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사를 쓸 때마다 그룹 만드는 기자

사회- 뉴스가 ‘여럿 중 하나’(one of them)의 콘텐츠가 돼버린 상황에서, 뉴스를 최상의 콘텐츠라고 인식하면서 제작하는 사람들이 반성하는 보고서네요. SNS가 뉴스 유통의 기본 플랫폼이 돼버렸다면 뉴스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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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에서도 지적하지만, 자기네가 잘못한 것 중 하나가 는 계속 완성본을 하나 만들어서 내놓으려 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뉴스라는 건 완성품을 소비하는 단계에서 시점시점마다 계속 소비하는 쪽으로 많이 달라졌다는 거죠. 보고서에선 대학 미식축구 스타가 커밍아웃한 사례가 나와요. 자기네는 멋지게 완성품을 하나 내놓고 다음날 칼럼 하나 달랑 올리고 끝났다는 거죠.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 이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산자 입장에선 왜 안 밝혀주냐는 거예요. 소비자 입장에선 ‘좋아요’(Like) 수로 밝혀주지만, 생산자 입장에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몇 명의 기자가 달려들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얘기해준 적 있냐는 거예요. 팀 풀이라는 기자가 있어요. 기사를 쓸 때 매번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요. 관심 있는 사람은 공개 그룹으로 들어오라고. 기사 주제도 얘기해주고 취재 과정부터 사진으로 남겨요. 내가 오늘 누구를 인터뷰할 건데 뭘 물어볼까 올리고,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또 글을 올리죠. 이제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이 뉴스가 생산자 입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전달하는 새로운 문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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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저희도 고민이에요. 한겨레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고 해서 ‘핵아시아’ ‘사월, 哀-세월호 최초 100시간의 기록’ 등을 계속 선보였어요. 우리 스스로도 경탄할 정도로 엄청난 공력이 들어갔지만, 정작 트래픽 수는 허무할 수준에 가깝습니다. 기자로서는, 언론사로서는 폼이 나는 작업이지만, 이것에 지속적으로 자원을 할당하는 게 맞느냐 고민스러운 영역입니다.

-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는 스노폴이란 얘기를 많이 했어요. 미디어 혁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스노폴 얘기를 너무 많이 해요. 우리나라가 유소년 축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월드컵 4강에 올라갔어요. 중요한 성과죠. 스노폴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유소년 축구부터 시작해 인프라를 다지는 거죠. 혁신의 초점이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는 혁신의 아이콘이었어요. 착시였다는 거죠.

뉴스 소비자와 대화할 준비부터

- 보고서 전문에도 지적했던 것처럼 반복 가능성을, 프로세스를 봐야 하는데, 스노폴을 자꾸 결과물(Product)로 본다는 거예요.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사월, 哀-세월호 최초 100시간의 기록’이 훌륭해서 잘 봤는데, 그걸 얼마나 프로세스 관점에서 접근했느냐는 거예요. 사전에 페이스북에서 독자들과 얘기했는지, 팬페이지에서 사람들과 얘기했는지, 아무런 대화가 없다가 ‘짜잔’ 하고 공개합니다, 비밀 프로젝트를 공개하듯이. 네이버에 송고할 수도 없는 형식이거든요. 사실 네이버에 송고만 했어도 트래픽이 더 많이 나왔겠지요. 갑자기 기사를 내놓으면서 기자들은 좋아해요. 저도 엄청나게 추천받았거든요. 대중은 이런 부분에 익숙하지 않아요. 만일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뒀다면 대중이 이런 작품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생산자가 소비자와 대화할 준비가 안 된 거죠.

사회-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최우성 편집장, 녹취 나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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