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에 ‘햄버거 메이데이’가 처음 등장했다. 햄버거 노동자들의 분노가 전세계에 걸린 5월 달력을 바꾸고 있다.
지난 5월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오거리 맥도널드 신촌점 앞에 맥도널드의 마스코트 ‘로널드 맥도널드’가 나타났다. 과도하게 활발했던 맥도널드 마스코트가 이날은 고개를 숙였다. “생활이 가능한 최저임금 1만원으로”라는 글씨가 쓰인 손팻말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5월15일, 15달러 시급을 위해</font></font>이날 신촌 한복판에서 벌어진 맥도널드 마스코트의 퍼포먼스는 식품·농업·호텔·요식 등 관련 노동자가 모여 있는 국제식품연맹(IUF) 참가 단체인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이 알바노조·청년유니온과 함께 준비한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공동행동의 한 장면이다. 서비스연맹 등 참가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널드가 가맹점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맥도널드는 생활임금과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은 서울 신촌뿐만 아니라 같은 날 부산 남구 대연동 맥도널드 경성대점 앞에서도 열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스위스·이탈리아·필리핀 등 35개국 150여 개 도시에서도 벌어졌다. 말 그대로 ‘국제행동의 날’이었다. IUF에 참여하고 있는 전세계 30여 개국 노동단체 소속인 이들은 “모든 패스트푸드 노동자에게 권리와 정당한 임금을!”(Rights and Fair Pay. For All Fast Food Workers)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행진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햄버거 메이데이’를 선언하는 모습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중계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맥도널드에 화가 난 걸까.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불을 지핀 건, 뉴욕 패스트푸드 고용주들이었다. 2012년 11월29일 미국 뉴욕에서는 미국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프랜차이즈 업체 맥도널드·웬디스·버거킹·도미노·KFC 등에서 일하던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시간당 평균 8.94달러(연평균 1만8500달러=약 1919만원) 수준인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상시적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와 노동조합 설립 및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했다.
이날의 분노는 곧 전세계적 규모의 패스트푸드 노동자 공동행동으로 이어졌다. 올해 공동행동이 5월15일에 이뤄진 것은 미국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시급 인상안 ‘15달러’를 의미한다. ‘파이트 포 15’(Fight For 15)라는 캠페인 표어에 맞춰 이날 전세계 맥도널드 매장 앞에서 집단행동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5월15일 이후 예정된 맥도널드 주주총회를 겨냥해 압박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한국 맥도널드의 시급은 5210원(약 5.09달러)으로 알려져 있다.
맥도널드 등 전세계 패스트푸드 가맹점이 이윤을 내기 위해 근무시간을 조작하거나 초과근무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지난 5월5일 뉴욕에서 열린 ‘IUF 패스트푸드 노동자 국제회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대표단으로 참석한 이혜정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세계적 기업인 맥도널드는 단일한 조직으로 뭉쳐 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날 회의에서 전세계 30개국 대표단이 털어놓은 사례를 들어보니,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 업계가 ‘단일한 슬로건’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한국엔 ‘꺾기’, 영국엔 ‘제로아워 계약’</font></font>실제 맥도널드 등 우리나라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은 이른바 ‘꺾기’의 공포에 떤다. ‘꺾기’란 점포 매니저 등이 직원들에게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조기 퇴근’을 하도록 종용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월 60시간 이상을 일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업무 물량에 따라 초과근무를 시키거나 조기 퇴근을 지시해 ‘월 60시간 미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매출의 8% 안에서 인건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매장 규정 탓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생활이 불규칙해질 뿐 아니라, 월급조차 좀처럼 늘어날 수 없게 된다.
한국에 ‘꺾기’가 있다면 영국에서는 ‘제로아워 계약’(Zero-hour Contract)이 패스트푸드 노동자를 위협한다. ‘제로아워 계약’은 별다른 근무시간을 명시하지 않은 채,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대에 나와서 일을 해주는 이른바 ‘5분 대기조’ 형식의 고용 형태를 말한다. 실제 IUF 패스트푸드 노동자 국제회의에서 소개된 사례를 보면, 패스트푸드점 고용주가 제로아워 계약을 맺은 노동자 30명에게 “오늘 일이 있으니 나오라”고 연락하고 이 가운데 한두 명에게만 일감을 주는 식으로 고용 불안을 높이고 있다.
IUF 등이 전세계의 다양한 패스트푸드 업체 가운데 특히 맥도널드를 지목해 강한 비판을 하는 이유는, 패스트푸드 업체의 고용 관행을 주도하는 곳이 바로 맥도널드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IUF는 ‘햄버거 메이데이’를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로 정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동행동에 맥도널드뿐만 아니라 다른 패스트푸드 업체 노동자들도 참석하는 등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 공동행동은 그동안 미국 중심으로 이어져오던 패스트푸드 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유럽·남아메리카 등까지 확산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font size="3"><font color="#638F03">미국 중심에서 아시아·유럽·남아메리카로</font></font>론 오스왈드 IUF 사무총장은 국제행동이 벌어진 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생활임금과 일터에서의 권리 쟁취 투쟁에 전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5월15일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에 함께할 것이다. 이날의 국제행동은 전례가 없는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 운동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대 글로벌 패스트푸드 기업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옥순 IUF 한국지부 사무국장도 “어떤 나라에 가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 같은 노동조건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연대해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국’의 ‘햄버거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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