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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야임마(塞壘裏堂野林馬)

등록 2013-08-20 08:18 수정 2020-05-02 19:27

이 정도로 관심 있는 줄 몰랐네요. 이 지난 8월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에서 배포한 ‘특별판’(사진)을 두고, 새누리당이 지난 8월12일 박재갑 수석부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하나 냈거든요. 가뜩이나 푹푹 찌는 날씨로 짜증이 한가득인데, 새누리당의 ‘뜨거운’ 사랑까지 받을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감사의 표현으로 이번주 부글부글에서 논평 내용을 한 줄씩 잘근잘근 씹어볼까 해요.

무엇보다 이날 국민들의 짜증을 폭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한 언론사가 발행한 특별판(호외)이다. 선동격문을 연상시키는 붉은색 표지에 ‘국정원개색희야(國政原開塞熙夜)’라는 선동적인 제목을 앞뒷면 표지에 가득 채운 형식의 호외다.
박승화

박승화

붉은색 표지, 많이 당황하셨어요? 새누리당이 로고도 붉은색으로 바꿔 달면서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붉은색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한가봐요.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입는다는 붉은색 ‘투자활성화복’을 보면서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표지 제목도 ‘국정의 근원은 막힌 곳을 열고 어두운 밤에 빛을 비추는 데 있다’는 깊은 뜻이 있어요. 표지 밑에 쓰여 있는 작은 글씨에도 관심 좀 가져주세요. 작은 것부터 챙기는 자세, 평소에 좀 기르셔야죠. 그나저나 ‘국정원개색희야’가 등장하는 969호 ‘부글부글’은 안 보셨나봐요. ‘대화록을 깎아 파는 노인’ 이야기를 읽어보셨으면 이런 논평 안 나왔을 텐데 말이죠.

더욱이 해당 언론사는 자사(自社) 공식 트위터 계정(@han21_editor)을 통해 배포를 알리기도 하고, “펼쳐서 구호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안내까지 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촛불집회로 서울 도심의 열대야를 더욱 심화시키는 민주당에 언론이 앞장서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주는 듯하다. “겉으로는 대선 불복이 아니라면서 속으로는 제3자가 불을 붙여주기를 바라는 민주당과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세간의 평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직접 트위터 계정까지 홍보해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할 길이 없네요. ‘맞팔’이라도 해드릴게요. 그나저나 촛불집회가 올여름 폭염으로 인한 서울 도심 열대야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건, 처음 알았네요. 하긴 밤마다 서울광장에서 촛불 몇만 자루를 지피고 있으니 온도가 오를 만도 하네요. 예사롭지 않다는 ‘세간의 평’은 그냥 웃어넘길게요. 개그 욕심이 과하신 듯?

새누리당과 국민 대다수는 야당 성향의 언론이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언론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해당 언론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에 사실관계를 독자들에게 긴급하게 알리기 위해 임시로 발행했던 특별판(호외)을 살포해 특정 정당을 위한 정치행위의 도구로 전락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

우리를 향한 애정을 뒤늦게 고백하시니, 우리도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려 해요. 때마침 새누리당이 ‘새누리를 디스해라’(ㅅㅂㅈㄹ)라는 제목의 공모전을 연다죠. 홈페이지를 보니 공모 주제가 새누리당에 대한 비난·욕·썰 등이래요. 은 이 공모전에 작품을 낼 거예요. 작품은 이미 완성했어요. 제목은 ‘새누리당야임마(塞壘裏堂野林馬)!’예요. 국정원을 비판하는데 새누리당이 성내는 이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을 담아보려고요. 1등, 문제없겠죠?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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