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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없는 ‘서민 주거안정 대책’

무주택자·하우스푸어 등 서민 위한 대책으로 포장한 박근혜 정부 부동산 대책이 서민 주거안정과 거리 먼 5가지 이유
등록 2013-04-13 14:55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과감하고 영리했다. 지난 4월1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 얘기다. 웬만한 대책엔 콧방귀도 안 뀌던 건설회사나 부동산 자산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파격적인 거래 활성화 방안이 곳곳에 담겼다. 그러면서 무주택자나 하우스푸어(주택을 보유한 빈곤층) 등 서민을 위한 대책인 것처럼 포장하는 데도 꽤 신경을 썼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 부동산 대책의 본질은 집값 띄우기에 올인했던 이명박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 절대로 서민의 주거를 안정시킬 수 없는 5가지 이유를 꼽아봤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월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월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소득·자산 적은 계층에 ‘폭탄’ 안기기

‘4·1 부동산 대책’에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46가지 세부 대책은 대부분 목표가 하나다. 아직 집을 살 만한 구매자를 찾아내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일이 그것이다. 정부가 가장 공들인 집단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다. 이례적인 혜택이 줄줄이 내걸렸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부부 합산 연소득 6천만원 이하)가 올해 안에 6억원 이하ㆍ85㎡ 이하 주택을 사면 취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주택 구입 자금이 부족하면 연말까지는 은행의 재량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에 상관없이 빚을 낼 수도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60%에서 70%로 완화된다. 일반 구매자들은 정부의 ‘빚 통제’ 때문에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원리금 상환이 부담된다면 30년 동안 나눠 갚아도 된다. 한마디로 세금도 안 받고 빚도 쉽게 내줄 테니 올해 안에 집을 사라는 얘기다. 이미 하우스푸어로 전락해 집을 살 여유가 없는 중산층이나 돈 안 되는 집에 투자할 마음이 없는 상류층을 빼고 나면, 무주택자나 신혼부부 등이 꺼져가는 집값을 떠받쳐줄 수 있는 마지막 손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터지기 직전인 ‘폭탄’을 소득·자산이 적은 계층에게 안기는 셈이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그동안 너무 높았던 집값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인위적인 부양책으로 반짝 집값이 오르거나 유지될 수 있어도 얼마 못 가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덜컥 빚을 내 집을 산 생애 최초 구매자들은 또 다른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서울 강남 소형 아파트 보유자에게만 유리

양도소득세(기본세율 6~38%)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획기적이다. 처음으로 기존 주택(연내 매매계약 체결시)에 대해서도 앞으로 5년간 양도세를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제 혜택까지 주면서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부동산 투자·투기를 해 집값을 띄우라고 실수요자·다주택자를 부추기는 셈이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급락해 서민경제 어려움이 크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이는 엄살에 불과하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2008년 2월28일~2013년 2월8일) 5년 동안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고작 2% 하락했다.

정부가 제시한 양도세 면제 기준에도 심각한 형평성 문제가 있다. ‘1가구 1주택자가 보유한 9억원 이하ㆍ85㎡ 이하의 주택’ 기준대로라면 상류층만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주로 보유한 서울 강남의 7억~8억원대 소형 아파트는 기준을 충족하는 반면, 서민이나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서울 강북·수도권·지방의 중·대형 아파트는 가격이 3억~4억원이어도 평수 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다. 하우스푸어가 집을 팔아 채무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다더니 거꾸로 상류층만 투자·투기 목적으로 샀던 집을 털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꼴이다.

하우스푸어 집 못 팔 게 하는 데 방점
956호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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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하우스푸어 대책도 마련되긴 했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은행에서 매입한 뒤 하우스푸어에 대해 원금 상한을 유예해주거나 장기로 나눠 상환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또 빚을 연체하지 않았더라도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느끼는 하우스푸어에 대해선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주택담보대출채권을 매입해주고 길게는 10년 동안 은행 대출금리 수준의 이자만 내도록 했다. 올해는 채권 매입 규모가 1조원대지만 점차 확대된다. 하우스푸어들이 빚을 천천히 갚더라도 집을 팔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임대주택 리츠(부동산 전문회사)에 집을 팔고 5년간 월세로 산 뒤 원할 경우 되사는 방안도 있지만 시범 구제 대상이 500가구에 불과하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정부는 하우스푸어가 내놓는 급매물이 부동산 가격 붕괴의 도화선이 될까봐 불안해한다. 그래서 (하우스푸어 대책의) 초점을 집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데 맞추고 있다. 만약 집값이 하락하면 하우스푸어는 물론 (부실 채권을 매입한) 공기업들도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도 허울뿐

렌트푸어(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세입자) 대책도 허울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구체화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세입자가 이자를 납부할 경우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세난이 심각한 상황에선 집주인이 굳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세입자를 구하려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나머지 방안도 대부분 전세금·월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빚을 쉽게 낼 수 있게 하는 정도다. 렌트푸어들에겐 집값 하락이 희망이지만 정부는 관련 안전장치를 오히려 풀기로 했다. 분양가상한제는 과도한 규제로 규정하고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 무주택자들이 그나마 유리한 조건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청약가점제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하고, 유주택자도 1순위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보금자리주택 대신 비싼 민간 아파트

이명박 정부의 핵심 부동산 정책인 보금자리주택은 점차 사라진다. 수도권 그린벨트 내 신규 보금자리지구 지정은 중단되고 기존 지구는 공급 물량이 조정된다. 정부가 공공분양주택의 공급 물량을 연 7만 호에서 2만 호로 대폭 줄이기로 한 탓이다. 공급 대상도 85㎡ 이하에서 60㎡ 이하로 축소된다. 보금자리주택이 민간 시장을 위축시키고 전셋값만 올린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주력하면서 분양시장은 민간 건설사에 맡기기로 했다. 벌써부터 국토교통부는 보금자리주택 건설 터를 민간 건설사에 넘겨 민영아파트를 짓게 하는 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하려고 수년간 청약저축을 부으며 보금자리주택 분양을 기다려온 무주택자들에게 느닷없이 비싼 민간 건설사 아파트를 사란 소리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절반은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투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는 여론이 강해 일부 미세 조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모든 실물경제 상황이 주택 매매 수요로부터 돌아서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 주택 공급은 늘리면서 자꾸 가수요(양도차익 등을 목적으로 거래하는 수요)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대세 하락기를 거스르는 이번 극약 처방은 (부동산 시장의) 생명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음만 빨리 자초할 뿐”이라고 우려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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