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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심장이 현대집안에 넘어간 까닭은?

삼성카드 소유 에버랜드 지분 17% KCC에 매각 합의…KCC는 주요고객 확보, 삼성은 편법 상속 논란 피해
등록 2011-12-14 15:46 수정 2020-05-03 04:26

삼성그룹이 자신의 ‘심장’을 재계 라이벌인 범현대가(KCC)에 선뜻 내준 내막은 무엇일까?
삼성카드가 갖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중에서 17%를 범현대가의 일원인 케이씨씨(KCC)에게 팔기로 합의한 삼성-KCC 간의 ‘12·12 빅딜’을 둘러싸고 시장에서는 이면계약설, 일시적인 위탁설 등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과 KCC(범현대가)가 서로 윈윈했다.”
삼성과 KCC는 13일 이번 주식거래에 대해 에 이렇게 설명했다.
외국계 투자은행이 에버랜드 주식거래 의사를 두 그룹에 타진한 것은 수 개월 전이다. 두 회사의 실무진들은 선듯 나서지 못했다. 특히 삼성으로서는 에버랜드 주식을 KCC에 매각하는 것은 자신의 심장을 라이벌인 범현대가의 일원(KCC)에게 넘기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삼성은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소유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또 삼성과 현대는 재계 1·2위를 다퉈온 전통적인 라이벌이다.

KCC 연간 수천억원 신규물량 확보
하지만 사후보고를 받은 양사의 최고경영진이 긍정적인 검토를 지시하면서 협상은 본격화됐다. 두 그룹의 최고경영진이 이 거래를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KCC로서는 무엇보다 삼성이라는 주요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최대 매력으로 꼽힌다. KCC는 도료 등 건자재가 주력사업이다. 삼성 계열사인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등은 조선과 건축 등에 연간 1조원 어치 이상의 도료 등 건자재를 사용하지만, 그동안 KCC와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KCC 관계자는 “에버랜드 제2대주주가 되는 걸 계기로 최소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신규 물량 확보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년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소 수천억원 규모의 신규시장 창출은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KCC 최고위층에서는 이미 임직원들에게 “삼성으로부터 KCC 제품의 경쟁력이 다른 회사보다 더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 KCC로서는 주식투자 자체로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는 계산이다. 에버랜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기업공개를 하게 된다. 삼성의 지주회사인데다, 현재 삼성의 신수종사업 등 유망한 신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차후 주식가치는 현재의 장부가(주당 215만원)나 KCC의 매입가(주당 182만원)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내부적으로는 에버랜드 상장준비는 이미 끝낸 상태이지만, 시기는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으로서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문제와 특혜시비 등을 고려해 상장 시기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오누이는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주당 7700원에 인수했다. 에버랜드 상장으로 이들이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게 되면 과거 편법 상속증여 논란이 재연될 위험성이 있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 “KCC 적대행위 위험성 적어”

그럼 삼성은 왜 KCC를 선택했을까?

삼성으로서는 계열사나 외국 투자자에게 에버랜드 주식을 매각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데, KCC와의 거래는 이런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실제 KCC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일시 위탁설 등 근거없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삼성과는 어떤 이면계약도 없다”면서 “우리가 그런 의혹을 살 일을 할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KCC는 주식가격이 장부가 대비 15% 할인된 것은 너무 헐값 아니냐는 지적도 일축한다. 삼성은 “KCC쪽에서 상장기업의 경우에도 대규모 주식거래는 상당한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이고, 더구나 에버랜드는 비상장기업 아니냐고 주장하면서 처음에는 장부가 대비 15%이상 할인된 가격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 C&C의 주식이 대량으로 거래될 때 7%의 할인율이 적용됐다. 에버랜드 주식의 장부가는 올해 6월말 기준인데, 그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크게 떨어진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대주주다. 삼성생명의 주식은 지난 6월말 이후 12% 정도 떨어졌다. 삼성으로서는 KCC와의 거래로 에버랜드 주식에 대한 일종의 공정가격 기준을 마련한 셈이 됐다. 앞으로 삼성 계열사나 대주주 간 에버랜드 주식거래도 이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말썽날 소지가 없게 됐다.

삼성으로서는 무엇보다 KCC가 자신들에게 적대행위를 할 위험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삼성과 현대그룹은 재계 라이벌이지만, 각기 2세 경영체제로 전환한 뒤에는 특별히 불편한 일이 없었다.

또 삼성과 KCC는 사업적으로 경쟁관계가 없다. KCC는 에버랜드의 경영에도 관심이 없다. 삼성은 “KCC가 앞으로 사외이사 1명을 파견하기로 했다”면서 “제2대주주로서 경영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CC가 에버랜드 주식을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제3자에게 재매각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도 주요하게 고려됐다. 외국계 투자자의 경우 이런 위험성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KCC가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삼성은 KCC와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경쟁사에 팔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KCC는 삼성에 에버랜드 조기 상장과 관련해 명시적인 요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빅딜로 양가 관계 증진 전망

삼성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에버랜드 지분을 10%선만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KCC가 난색을 보였다. 결국 삼성카드가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25.64% 가운데 17%를 넘기는 것으로 절충이 이뤄졌다. 삼성카드는 재벌 금융회사의 경우 계열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5%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금산법)에 따라 20.64%를 매각해야 하는데, 나머지 매각대상 3.64%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KCC의 풍부한 자금사정도 거래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KCC는 올해 현대차와 만도 주식 매각만으로 보유 중인 현금성자산이 9천억원에 달한다. KCC는 매입자금을 현금으로 바로 지급할 수 있다는 의사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KCC와의 계약 전날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삼성과 KCC의 이번 빅딜이 삼성과 현대차 등 범현대가 간의 관계 증진에도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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