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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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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선한 한-미 FTA 독소조항 11가지

비싼 약 먹어야 하고, 사이트 폐쇄 당하고, 투자자에 정부가 제소 당하고…
미국은 하지만 한국은 못하는 특권이 수두룩한 한-미 FTA에서 추리고 추린 불평등 조항들
등록 2011-10-13 15:29 수정 2020-05-03 04:26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비상시국선언대회 참가 인사들이 10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비상시국선언대회 참가 인사들이 10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는 과연 이 협정이 정상적 협상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독소조항이 그득하다. 한마디로 독소조항의 보고라 할 만하다. 그중 주요한 것들을 추려 살펴보기로 한다.

1) 협정문 서문을 보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조문이 하나 있다. 내용인즉, 한국 투자가가 미국 내에서 미국 투자자보다 ‘더 큰 실질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은 엉성한 번역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통상법의 관련 조항(미통상법 2102조(b)(3)항)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는 점이다. 한-미 FTA가 국회 비준동의를 받게 되면,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이처럼 우리 국내법이 될 협정문에 미국법을 그대로 심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미국 투자자는 한국에서 한국 투자자보다 더 큰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물론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주권국가인가.

미래의 서비스 산업 자동 개방

2) 투자자-정부 제소제(ISD)다. 독성으로 따지자면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다. 미국 투자자는 언제든지 한국 정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투자자는 어떨까? 이번에 오바마가 미 의회에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을 보면, 제102조 (c)항에 이렇게 되어 있다.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 정부의 조처에 대해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ISD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지만, 심각하게 불평등하기까지 하다. 한-미 FTA는 또 ‘간접수용’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위헌적이다.

한-미 FTA의 ‘투자’ 정의에는 지난 금융위기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을 울렸던 키코(KIKO)와 같은 ‘선도금리계약’이나 금융위기의 주범인 온갖 파생상품,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이 다 포함된다. 그리고 한-미 FTA는 사상 처음으로 ‘투자계약’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역시 ISD의 대상이 된다. 투자계약이란 외국 투자자와 당사국 정부 간의 ‘사법상’ 계약에 불과함에도, 공법적인 협정 의무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3) 한-미 FTA상의 투자 및 서비스장에는 ‘비합치조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역진 방지 조항이다. 속된 말로 ‘낙장불입’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스크린쿼터를 반으로 줄였기 때문에 이 조항에 따라 다시는 단 하루도 늘릴 수 없다. 한번 개방하면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드는 것으로, 정부의 공공정책 결정권을 제약하는 전형적인 주권 침해 조항이다.

4) 2010년 대미 무역수지를 본다면 제조업의 상품수지가 126억달러 흑자인 데 비해, 서비스산업 수지는 123억달러 적자다. 경쟁력이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에서 서비스 수지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서비스 시장의 개방과 관련해 포괄주의(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했다. 개방 안 할 것만 부속서 I·II에 나눠 등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 등재되지 않은 산업, 특히 미래의 서비스 산업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동적으로 개방된다. 한국 경제의 미래 밥줄이 위태로워진다.

5)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정부는 긴급 외환송금 제한조치, 곧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제한조치를 취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미 합중국의 상업적·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자본이 손해를 볼 때, 미 합중국은 그럴 의무가 있을까? 없다. 대한민국 정부만의 일방 의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은 제한할 수도 없다. 예컨대 KT의 지금 주인이 누구인가. 바로 미국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사실상 KT의 최대 주주들이다.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송금한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투자’에 해당되므로 송금을 제한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기업의 특허권 보호

6)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란 것이 있다. 우리가 먹는 약은 대부분 오리지널 약이 특허 만료된 뒤 나오는 복제약이고, 국내 제약업계 대다수는 복제약을 생산한다. 그런데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란 복제약을 만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시판 승인을 요청할 때, 이를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특허권자는 이런저런 핑계로 소송을 제기해 복제약의 시판을 늦춤으로써 사실상 특허 연장의 실익을 누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기간에 의약품 소비자는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의약품에 한해, 기본적으로 사권(私權)에 불과한 특허권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는 제도다. 이것이 시행되면 약값이 인상되고,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심하게 제약하는 이 조항은 심지어 미국 민주당조차도 과거 부시와 ‘신통상정책’ 합의시 삭제를 요구했다. 실제 미-파나마, 미-콜롬비아 FTA에서는 재협상을 통해 이 조항을 삭제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재협상 과정에서 허가-특허 연계 조항에 대해 3년 유예를 받았다고 정부는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해당 조항 전부를 유예한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만 유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성으로 인해 유럽연합(EU)에서는 이 조항을 허용하지 않는다.

7) 한-미 FTA에 의해 “저작물의 무단 복제, 배포 또는 전송을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게 됐다. 세계에서 처음이다. 물론 미국은 아니다. 한국의 해당 사이트만 폐쇄할 수 있다는 말이다.

8) 한국이 자동차 관련 한-미 FTA 협정을 위반했을 경우 미국이 철폐한 자동차 수입관세 2.5%를 환원시킬 수 있다.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이다. 협정 의무 위반시 대개 시정 조치를 취하거나 보상을 하면 된다. 하지만 한-미 FTA는 없애버린 관세를 다시 되돌리는 조항을 만들어 넣은 것이다.

9) 한-미 FTA 협정문에는 개성이란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협상 당시 우리 쪽이 ‘전략적’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고 했던 문제다. 하지만 온갖 단서조항을 줄줄이 달아놓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가 제구실을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게다가 미 의회에 제출된 이행 법안의 시행령에 따르면 개성산 제품은 사실상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 수출될 수 없다.

송도·제주도 영리병원 못막아

10)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곧 앞으로 우리가 체결할 FTA에 한-미 FTA보다 더 유리한 조항이 있으면 미국도 자동적으로 이 혜택을 누린다는 조항이다. 미국은 항공·원자력 등 제한적인 몇 개 분야만 개방을 유보했기 때문에, 이 조항은 미국에만 유리할 뿐이다.

11) 보건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유보 리스트(부속서II)에 따르면 미래에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 땅에서 보건의료 서비스 관련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 송도와 같은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 등에서는 예외다. 따라서 이곳에 영리병원이 들어설 때, 한국 정부는 이를 되돌릴 수 없다.

한-미 FTA에 담긴 독소조항들을 한두 가지로 요약하는 일은 힘들다. 그나마 중요한 내용을 추리고 추려서, 최대한 요약해도 위와 같은 양이 된다. 한-미 FTA는 독소, 불평등, 문제 조항의 교과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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