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도 광고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광고 대상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을 바꿨다고 ‘뻥’을 친다면? 하필이면 그 광고가 ‘광고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서 처음으로 그랑프리를 받은 한국 광고였다면?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 같다. 지난 6월21일(현지시각)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은 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미디어 부문 그랑프리 등 본상 5개를 받았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스크린도어에 설치한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 ‘가상 매장’(Virtual Store)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광고다.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는 제품 사진을 보고, 해당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홈플러스에 전송하면 소비자에게 배달을 해준다는 것이다. 광고는 이 가상 매장 운영 덕분에 2009년 1분기에 비해 2010년 4분기까지 홈플러스 온라인 가입자가 76% 늘었고, 온라인 매출은 130% 상승해 온라인 시장에서 홈플러스가 1위를 차지했다고 주장한다.
아이디어는 놀랍다.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 이용자가 필요한 물건을 지하철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 스마트폰 이용자는 인터넷 쇼핑몰보다 더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고, 홈플러스 쪽은 굳이 오프라인 매장 수를 늘리지 않아도 매출 신장을 기대할 수 있다. 칸 국제광고제 쪽도 이 점을 높인 산 것으로 보인다. 제일기획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칸 국제광고제의 마리아 루이자 미디어 부문 심사위원장은 “아이디어와 디지털이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소비자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든 점이 매력적이었다. 즐거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제공한 홈플러스 가상 매장의 강력한 아이디어 때문에 심사위원 간 논쟁 없이 만장일치로 그랑프리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과 QR코드를 활용한 가상 매장은 실제로 운영된 적이 없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은 지하철 6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 ‘한강진역 스크린도어의 홈플러스 가상 매장 광고를 언제 게재했느냐’고 물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쪽은 “그 광고는 (광고제에) 출품하려고 올해 2월인가 잠깐 저녁에 붙였다가, 광고 촬영 뒤 바로 떼갔다. 실제로는 광고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쪽의 설명은 이렇다. “제일기획이 상을 받았다는 6월24일치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한강진역에서 광고 촬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위를 파악해보니, 지난 2월28일 밤 10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촬영을 했다. 가상 매장 광고판도 촬영을 하려고 붙였다가 곧바로 떼갔다. 촬영 수수료 40만원도 추후에 받았다. 보통 우리 쪽에 미리 연락해 촬영 승인을 받고 일을 진행하는데, 이런 경우는 이례적이다.” 광고 촬영이 진행된 한강진역 쪽도 “그건 가짜 광고”라며 “몇 달 전 밤에 와서 잠시 광고판을 붙이고 촬영한 뒤 떼갔다”고 말했다.
매체에 실제 집행한 광고만 출품 가능지하철 가상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면, 보도자료를 내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홈플러스에선 그러지 않았다. 은 홈플러스에 지하철 가상 매장을 실제로 운영했는지 문의했다. 홈플러스 쪽은 “그 건은 제일기획 쪽에서 콘셉트를 잡고 제안해와 운영한 거라 우리는 잘 모른다. 제일기획이 내용을 우리와 공유해주지도 않았다”며 “이 광고와 관련해 공식적인 응대는 모두 제일기획에서 하기로 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쪽에 문의해보라”고 답했다. 회사의 가상 매장 운영 상황과 관련해 당사자는 잘 모르니, 다른 회사에 물어보라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더구나 제일기획은 광고대행사지, 홍보대행사나 매장운영대행사도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제일기획 쪽은 “지난해 11월20일께 한강진역에 가상 매장을 설치해 열흘 정도 운영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이 사실을 모를 수도 있고, 기록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매체 가운데 (광고판이) 비어 있는 곳이 마침 한강진역이어서 그쪽에서 잠시 운영했고,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고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가상 매장 광고판 설치와 관련해 ‘지난 2월28일 밤 2시간30분 동안’이라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쪽의 설명과 달리, 제일기획이 왜 ‘지난해 11월 열흘 동안’이라고 설명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열흘 동안’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칸 국제광고제에 출품하는 광고는 어떤 매체에든 실제로 집행된 적이 있어야 한다. 횟수나 기간은 제한이 없다. 이 때문에 국내 광고업계에선 광고제 출품용으로 작품을 만든 뒤, 인지도가 낮아 단가가 싼 매체에 한 차례 광고를 낸 뒤 출품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쪽의 설명처럼 ‘광고 촬영’만 했다면, 제일기획의 가상 매장 광고는 아예 집행된 적도 없기 때문에 출품 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다.
‘지난해 11월’은 가상 매장 운영으로 지난해 4분기 홈플러스의 온라인 매출이 급상승했다는 광고 내용과 관련된다. 2월에 촬영 혹은 매장 운영을 했다면, 홈플러스의 매출 상승과 가상 매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론 ‘지난해 11월’이라고 해도, 아무런 홍보도 없이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한강진역에서의 가상 매장 운영으로 매출이 그만큼 올랐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제일기획 쪽은 이 대목에서만 “지난해 11월부터 홈플러스의 온·오프라인 통합 캠페인을 석 달 동안 진행했다. 매출은 가상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 전단지 캠페인까지 통합한 실적인데, (광고에서) 가상 매장만의 결과인 양 (주장)한 것은 송구스럽다”고 인정했다.
만약 제일기획 말대로 열흘 동안 가상 매장을 운영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들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쪽에 추후에 한 설명은 거짓말이 된다. 또한 스크린도어 광고판도 ‘공짜’로 이용한 것이다. 스크린도어 같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광고매체 판매를 대행하는 업체 이야기는 이렇다. “제일기획이 한강진 역사를 광고로 도배할 계획이 있어서, 그 계획을 집행하는 대신 스크린도어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건 아니지만 담당자에게 구두로 양해를 구했다.”
증명 안 되는 ‘11월 열흘 동안’
제일기획 쪽은 “오는 8월20일께 업그레이드된 기술로 가상 매장을 다시 운영한다. 그때 되면 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을 거다. (상 받은 것 때문에) 시기하고 의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어쨌거나 제일기획은 상을 받은 뒤 홈플러스 광고제작팀에 포상금 3억원을 주고 특진도 시켜줬다. 또한 보도자료를 통해 “(수상은) 2009년 이서현 부사장 취임 이후 아이디어 중심 조직 문화의 디지털 마케팅 역량이 더욱 강화되고, 직원들에 대한 투자와 혜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은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무 환경을 조성하고, 크리에이티브(독창성)의 퀄리티(질)와 디테일(세세한 내용)을 강조해 아이디어의 질적 제고를 유도했다”고 밝혔다. 이서현 부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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