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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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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의 건설적이지 않은 현대건설 쟁탈전

‘현대의 모태’라는 명분과 경영권 승계의 실리가 더해져 치열한 인수 경쟁…
‘정씨’ 일가와 현정은 회장 대립 재현돼
등록 2010-07-08 13:56 수정 2020-05-03 04:26

현대차그룹의 주력회사인 현대자동차와 글로비스의 주가가 7월1~2일 이틀 연속 떨어졌다. 현대차는 8500원이, 글로비스는 7500원이 떨어져 7월2일 13만2500원과 12만5500원이 됐다. 증발한 시가총액이 각각 2조6430억원, 3300억원에 이른다.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당분간 주가가 더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은 반기지 않는 정씨들의 단결

현대건설은 1947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이후 현대그룹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다. 2000년 부도를 맞은 뒤 이듬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현대가에서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2000년 10월 1차 부도가 알려진 뒤 서울 계동 현대건설 본사 건물을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현대건설은 1947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이후 현대그룹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다. 2000년 부도를 맞은 뒤 이듬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현대가에서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2000년 10월 1차 부도가 알려진 뒤 서울 계동 현대건설 본사 건물을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현대차그룹의 주식 가치가 급락한 것은 매출 부진이나 리콜 등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7월1일치는 최근 정몽구 현대차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남·장남 몽필씨는 1982년 사망)과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회장(정 명예회장의 6남), KCC 정상영 명예회장(정 명예회장의 동생) 등이 모여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또 그동안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고 의사를 밝혀온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회장단이 회동을 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현대건설 인수 결정 여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회장단 회동 사실을 부인하지만, 현대건설 인수 여부는 부인하지 않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현대건설 인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는데도 당사자인 현대차가 적극 반응하지 않는 것은 ‘긍정’의 뜻으로 읽힌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군침을 삼키는 현대건설은 현대가의 모태기업이다. 현대건설의 매출을 기반으로 자동차·상선·증권·백화점 등 각 방면에 진출할 수 있었다.

현대건설의 역사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서울 중구 초동에 세운 ‘현대자동차공업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듬해 정비소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것이 현대건설의 첫 발걸음이다. 다시 1950년 현대토건과 현대자동차공업을 합병해 현재의 현대건설이 탄생했다. 이후 국내 첫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를 1968년 12월 시공한 데 이어 1970년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등 국내 건설업의 역사를 만들었다. 고리·월성·영광에 세워진 원자력발전소나 88올림픽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부산지하철 1호선 토목공사 등도 현대건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외환위기 시절 매출이 급격히 추락해 1999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어 터진 왕자의 난은 은행들이 대출금의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고 회수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2001년 은행들이 출자전환(빚진 돈을 주식으로 전환해 소유)해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가게 됐다.

이처럼 현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어 현대 일가가 욕심을 낸다는 분석이 많다. 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모태기업을 인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팔을 걷어붙였다는 분석이 많다. 현대그룹도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룹의 후계자로 지목한 고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을 소유한 적이 있는 만큼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2000년 현대그룹 승계를 놓고 고 정몽헌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다툰 왕자의 난에 이어 또 한 번 악연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에서는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맞은편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대중공업, KCC 정상영 명예회장 등이 서있는 셈이다. 이런 사정이 현대차그룹의 주식 하락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에 현대엠코라는 건설사가 있는데도 무리해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것에 대해 시장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단순히 효심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현대건설을 가져갈 경우 각 그룹은 제각각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수와 함께 현대건설을 현대엠코와 합병하면 기업 가치는 더욱 커지고, 이는 현대엠코의 대주주인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현대엠코는 정몽구 회장이 10%, 정의선 부회장이 25.06%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데다 계열사인 글로비스(24.96%)도 대주주다. 글로비스는 정의선 부회장이 31.88%, 정몽구 회장이 28.12%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한 달 전부터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인수를 지원할 것으로 알려진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인수를 위해 GS칼텍스와 경쟁을 벌이느라 여유자금이 없고, KCC도 현금성 자산이 1조원 수준에 불과해 인수 여력이 없는 처지다. 대신 현대차그룹을 지원해 현대건설을 정씨 일가가 인수하게 되면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을 넘볼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주력회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이 이끄는 현대중공업(17.6%)·현대삼호중공업(7.87%)과 정상영 명예회장이 소유한 KCC(4.91%) 등의 현대상선 지분에 현대건설이 소유한 지분을 합치면, 정씨 일가의 현대상선 지분이 38%를 넘기게 돼 현정은 회장과 그 우호지분에 맞설 수 있다. KCC는 2003~2004년 현정은 회장에게서 정씨의 현대를 되찾아오겠다며 지분 전쟁을 치른 바 있다. 현대중공업도 2006년 현대상선의 주식을 집중 매입하면서 현대그룹과 갈등을 빚은 전례가 있다.

현대건설 인수 때 각 그룹의 이해관계

현대건설 인수 때 각 그룹의 이해관계

현대건설 뺏기면 현대그룹도 위험해

이에 맞서는 현대그룹은 계열사들이 적자로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현대건설을 인수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진한 대북사업으로 현대아산이 지난해 5700억원의 적자를 낸 것은 물론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 등도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한때 채권단에 경영권을 내줬지만 현재 알짜 기업으로 변신한 현대건설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대건설이 더더욱 절실하다. 앞서 살펴봤듯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넘어갈 경우 현대그룹 경영권을 통째로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정은 회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올해의 최우선 추진 과제로 현대건설 인수를 꼽았을 정도다. 현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확실한 신성장 동력”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현재 현대건설 대주주는 한국정책금융공사(전 산업은행·11.13%), 외환은행(8.72%), 우리은행(7.52%) 등이다. 이들 채권단은 지난 6월29일 회의를 열고 7월 중 현대건설 매각주간사를 선정해 올 연말까지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에 필요한 돈은 3조~4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를 놓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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