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자들만 아는 스마트폰의 비밀



아이폰 가입자 지도, 대한민국의 ‘재산지도’와 유사…
소유 여부가 정보의 양을 결정하는 ‘모바일 정보 격차’
등록 2010-04-22 14:31 수정 2020-05-02 19:26
부자들만 아는 스마트폰의 비밀

부자들만 아는 스마트폰의 비밀

#1. 서울 강남구청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강남인강’(강남구청 인터넷 수능강의)을 오는 6월 말께 스마트폰에서 서비스할 계획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미 SK텔레콤과 논의를 마친 상태”라며 “구청에서 수능 강의를 10분 정도 분량으로 압축한 뒤 SK텔레콤의 스마트폰을 통해 서비스하고, SK텔레콤은 구청과 동사무소, 보건소 등에 9억여원을 들여 와이파이(무선 인터넷 서비스 기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 KT는 지난 3월30일 교육방송(EBS)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석호익 KT 부회장과 곽덕훈 교육방송 사장은 이날 양해각서를 통해 대입 수능 동영상 콘텐츠를 아이폰을 비롯해 KT에서 출시하는 스마트폰에서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손을 맞잡았다. KT는 별도 요금제를 마련해 저렴한 가격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이용하게 할 계획이다.

아이폰 가입자와 인구·소득세의 상관관계·아이폰 가입자 성별 비중

아이폰 가입자와 인구·소득세의 상관관계·아이폰 가입자 성별 비중

휴대전화 가입자는 인구 비율대로인데…

‘내 손안의 PC’라고 불리는 스마트폰으로 대입 수능까지 준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셈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기존 강의를 압축하는 것은 물론 입학사정관제 등 인기를 끌 만한 콘텐츠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 이같은 알짜 수능 정보를 이동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들은 대부분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쏠려 있고, 지방에는 많지 않다.

지난 3월 말 KT의 아이폰 가입자는 50만 명을 돌파했다. 가입자 지역 분포는 대한민국의 ‘재산지도’와 유사하게 형성돼 있다. 가입자 50만 명 가운데 75.6%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특히 서울은 전체 아이폰 가입자의 절반가량인 44.6%를 차지하고, 그 중에서도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가 서울시 25개구 전체 가입자의 29.5%를 차지한다. 개인 벌이에 따라 매기는 세금인 소득세(2008년 기준) 가운데 서울에서 걷히는 게 52%에 이르는 등 73.9%가 수도권에 쏠려있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지방으로 가면 아이폰 가입자와 소득세 비율의 하락이 같은 궤를 그린다. 그나마 부산·경남이 가장 높은 편이다. 부산·경남은 전체 아이폰 가입자의 8.5%와 전체 소득세의 10.4%를 차지한다. 대전·충청은 아이폰 가입자 6.1%와 소득세 5.3%, 대구·경북은 아이폰 가입자 4.7%와 소득세 4.9%의 비율을 보였다. 호남권은 아이폰 가입자 4.9%, 소득세 3.6%로 가장 낮았다. 결국 아이폰을 사는 것과 개인의 부가 깊은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아이폰뿐만 아니라 SK텔레콤과 LG텔레콤에서도 마찬가지다. 모토로이, 블랙베리, 옴니아 등을 내세우는 SK텔레콤은 3월 말 현재 73만3천 명의 스마트폰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서울·경기 등 수도권이 65.1%를 차지하는 반면 호남권은 7.1%로 대조적 양상을 보였다. LG텔레콤 역시 스마트폰 가입자 9만7천 명 가운데 수도권이 66%로 절반을 훌쩍 넘지만, 호남권이나 충청권은 6~7% 수준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강남인강’을 준비하는 강남구청 역시 이같은 쏠림 현상을 잘 알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인강’ 외에도 강남구민에게 도움이 되는 평생교육, 요리 등을 담은 애플리케이션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며 “이는 스마트폰 이용자 가운데 강남구민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반 휴대전화 가입률은 아이폰처럼 소득에 비례하지 않고 인구와 비례한다. KT의 전체 가입자를 분석하면 부의 분포가 아닌 인구 분포(2009년 기준)와 유사한 흐름을 나타낸다. 한국인의 절반가량인 49.5%가 몰린 수도권에는 KT 이용자 역시 서울(22.7%)과 인천·경기(30.9%)를 합쳐 53.6%가 분포한다. 다른 지역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인구 분포와 가입자 비율이 부산·경남은 15.8%와 15.5%, 대구·경북은 10.4%와 10.6%, 대전·충청은 10.1%와 10.2%, 호남권은 10.1%와 11.2% 등으로 나란한 비율을 보여준다.

성별이나 연령별로 따져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인구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거의 같은데 KT 가입자 역시 남성(50.3%)과 여성(45%) 간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아이폰 가입자는 남성이 64.6%로, 여성(31.7%)보다 2배가량 많다. 연령별로는 KT 가입자 가운데 30대가 20.6%로 가장 많지만, 아이폰의 경우 20대가 43%로 가장 많다.

교육·보건 등 공공서비스에서도 격차 우려

이같은 현상은 휴대전화가 이미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아 대부분이 이용하는 반면, 스마트폰은 지역별 소득 격차와 인프라 시설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급속히 발전하는 모바일 환경에서 정보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은 기존 기기보다 실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 생활에서 명함을 카메라로 찍어 연락처를 저장하는 등의 간편함을 넘어, 업무 처리를 스마트폰으로 하는 등 점차 필수 기기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서울버스’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기능을 이용해 버스 노선 검색과 도착 시간을 예측하는 등의 편리함을 누리고, 주식 거래나 계좌이체 등도 기존 전화나 창구 거래보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래에셋증권이 선보인 스마트폰 주식 거래 수수료율은 0.1%지만,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4월 22일 수수료를 0.015%로 다시 낮췄다.) 주로 여성과 노인이 이용하는 전화나 창구에서의 수수료율은 4~5배인 0.4~0.5%에 달한다. 또 하나은행은 자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고객이 ‘11번가’ ‘예스24’ 등의 쇼핑몰을 이용할 경우 최대 35%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비전 포럼’에서 “모바일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는 특성을 기반으로 국가별·계층별 정보화 격차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며, 진보된 융합 서비스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스마트폰의 소유 여부가 개인의 정보량을 결정하고 지식 격차로까지 이어져 다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재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스마트폰의 활용 분야가 다양해 기존 정보 격차 외에도 트위터 활성화에 따른 ‘소셜 디바이드’(Social Divide·대인관계 격차), 라이프스타일 격차 등 세 가지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올 연말까지 전체 휴대전화 가운데 10%인 500만 대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 이같은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앞으로 공공 서비스도 ‘내 손안의 전자정부’ 형태로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될 전망이어서 교육·보건 등의 서비스를 누리는 데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이동통신사들의 투자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미흡하다. 국내 이통사 가운데 가장 많은 와이파이를 보유한 KT의 경우 전체 1만3천 개 가운데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됐을 뿐만 아니라, 올해 말까지 추가할 계획인 1만4천 개도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될 전망이다. 지방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값싼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려고 해도 해당 인프라가 적어 수도권 사용자에 비해 차별을 받는 셈이다. 또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음성통화료를 할인받지만 스마트폰의 가장 큰 장점인 무선 인터넷 사용료는 할인받지 못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08년부터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이동전화 요금 가운데 기본료 1만3천원을 전액 면제하고, 통화료도 최대 8500원까지 깎아주고 있다. 하지만 무선 인터넷은 월 4만5천원, 6만5천원, 9만5천원 등 정액제와 사용량에 따른 요금제만 있을 뿐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할인 혜택은 없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될수록 정보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겨레 자료사진

스마트폰이 활성화될수록 정보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민 PC처럼 스마트폰을 공급하자”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이폰 전도사’로 통하는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서 스마트폰을 공급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국민 PC’를 공급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더불어 스마트폰 활용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도 “과거 컴퓨터나 인터넷 등은 기기 공급 자체가 정보 격차 해소 방법이었지만, 스마트폰은 기기와 함께 활용 능력을 갖춰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이는 소득과 세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