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사회조사’(지난 7월 전국 15살 이상 인구 3만7천 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소득분배에 대해 “(매우 혹은 약간) 공평하다”는 답변이 4.1%였다. 2007년 2.3%보다 높다. “보통이다”는 응답도 2007년 20.8%에서 25.7%로 늘었다. 반면 “(약간 혹은 매우) 불공평하다”는 2007년 76.9%에서 70.1%로 꽤 줄었다. 소득이 있는 응답자 중에 본인의 소득에 “만족한다”는 답변도 14.1%로 2007년(10.0%)보다 높아졌고,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46.6%로 2007년(53.5%)보다 많이 줄었다. 소득불평등이 그만큼 해소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총체적인 소득분배 그림 속에서 자신의 소득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얀 펜(Jan Pen)은 란 책에서 현실의 소득불평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미있는 방법을 제시했다(이정우, 참조). 그는 소득을 가진 모든 개인이 출연하는 가상적인 행렬을 제시했다. 이 가장행렬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키는 그 사람의 소득 크기에 비례한다. 평균소득을 가진 사람은 성인의 평균키으로 이 행렬에 나타나고, 평균 소득 이하를 가진 사람은 작은 키로, 평균소득 이상은 큰 키로 출연한다. 이처럼 키가 작은 순서대로 지나가는 가장행렬이 1시간 동안 계속된다. 펜의 방법을 활용해 우리나라의 2007년 당시 전체적인 소득분배 모습을 한번 묘사해보자(참고로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가구의 소득계층별 구성비’ 자료는 가 가장 최신자료다. 통계청은 2008년 조사자료의 소득계층별 구성비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예산부족을 이유로 를 발행하지 않고 있다).
2007년 소득계층별 구성비 자료를 기반으로 하되, 가구소득자의 직업에는 상상력을 약간 동원해보기로 한다( 참조).
머리 파묻은 난쟁이, 그리고 완만한 상승맨 먼저 나타나는 사람은 땅속에 머리를 파묻고 거꾸로 나타난다. 파산한 사업가 등 소득이 마이너스인 사람들이다. 그 다음에는 월소득이 50만원 미만인 사람, 즉 파트타임으로 몇 시간 일한 주부와 신문배달 소년, 장애인 등 ‘소인국’ 사람들이 출현한다. 이들이 처음 2분40초 동안 계속해서 지나간다. 한참 뒤에 등장하는 사람은 키가 1m가 채 안 되는 난쟁이들인데 연금생활 노인, 실업자, 영세한 구멍가게 주인, 돈벌이를 제대로 못 하는 천재 화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6분30초가 되면 키 1m가 조금 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출현한다. 월소득 150만원 이상인 사람을 보려면 12분이 지나야 한다.
주목할 대목은 소득구간마다 ‘여성 먼저’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고 있는 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키는 매우 완만하게 커진다. 가장행렬이 시작된 지 18분이 지나면 월소득 20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평균신장보다 낮은) 난쟁이들만 나오고 정상 키를 가진 사람들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키는 아주 서서히 조금씩 커질 뿐이다. 이제 기술을 가진 생산직도 나오고 사무직 노동자도 지나간다. 25분이 지나면 월소득 25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비슷한 키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서 계속 나온다. 즉 250만원은 소득구간에서 빈도가 가장 높은 집단의 소득(최빈값)이다. 이어서 정확히 30분이 되자마자 출현하는 사람의 월소득은 279만8700원이다. 이른바 중위소득(인구를 소득 크기 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이다.
행렬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면 평균키인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빗나간 예측이다. 32분이 지나면 30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가장행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평균(월소득 322만4800원)을 가진 사람은 37분 정도가 돼야 나타난다. 중위소득(30분 후 출현)에 비해 평균소득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평균소득이 지나가고 나면 키의 변화는 급속해진다. 39분이 되면 월소득 350만원 이상인 사람이 등장하고, 이제부터 지나가는 사람의 키가 쑥쑥 커진다. 44분·48분·50분이 되면 각각 400만원·450만원·500만원 이상인 대기업 직원·공무원 등이, 그리고 52분이 되면 55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6분여를 남긴 54분30초가 되면 월 600만원 이상인 거인들(의사·변호사·대학교수·법원 판사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월 600만원 이상인 사람으로, 이 가장행렬 참여자의 9.0%를 차지한다. 이들을 가구수로 따져보자. 통계청의 소득계층별 구성비 조사에서는 1인 가구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2007년 우리나라 총 가구수(2005년 추계) 1641만7천 가구 중 1인 가구(329만8천 가구)를 뺀 나머지(1311만9천 가구)의 9.0%를 계산해야 한다. 약 118만 가구가 월소득 600만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은 600만원을 상한선으로 하고, 그 이상인 소득계층에는 세분화한 통계자료를 따로 작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만 판단해도 이후 가장행렬에서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키가 가파르게 커진다. 키 5m, 8m인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곧바로 20m에 이르는 거인이 등장하고, 마지막 몇십 초를 남겨두고 대기업 최고경영자·거액 유산상속자 등 굉장한 거인들이 등장한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키가 크다. 행렬의 맨 마지막에는 머리가 구름 위에 닿을 정도인 사람이 몇 명 등장한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같은 사람들이다(전국 일반가구 중 8700가구를 대상으로 매일 수입과 지출을 가계부에 직접 기입하는 방법으로 조사하는 에서 이건희 전 회장 같은 거인을 표본에 포함시킨다면, 평균신장인 사람은 37분 뒤가 아니라 행렬 끝나기 10∼20분 전에야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3분기 평균소득은 345만원, 중앙값은 299만원이제는 현재(2009년 3분기)의 소득분배 모습을 추정해보자.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2인이상 가구의 올 3분기 평균소득은 345만6300원이다. 전체적인 소득분배 모습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그리려면 평균소득뿐 아니라 중앙소득값과 최빈값이 필요하다. 통계청의 올 3분기 자료에 제시된 것은 평균소득값뿐이다. 그러나 2007년 조사자료의 중앙값과 최빈값을 이용해 올 3분기 중앙값과 최빈값을 근사적으로 추정해볼 수는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평균값과 중앙값, 최빈값의 차이 수준은 2007년과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조사자료에서 평균값은 322만4800원, 최빈값은 250만원, 중앙값은 279만8700원이었다. 이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올 3분기 현재 최빈값은 267만9300원, 중앙값은 299만93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위의 난쟁이 행렬에 나타난 소득계층별 구성비와 이 평균·중앙·최빈소득값을 활용해 올 3분기 소득계층별 분포를 그릴 수 있다.( 참조)
때로는 복잡한 수치보다 그래프 하나가 많은 것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의 곡선을 보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급속히 상승하는데, 가장 많은 사람이 밀집돼 있는 소득(최빈값)을 지나고 나면 하강하기 시작한다. 이 곡선의 특징은 오른쪽, 즉 소득상위층으로 갈수록 긴 꼬리 모양을 갖는다는 점이다. 고소득을 올리는 데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 끝은 도저히 다 그릴 수 없어서 중단된 상태다.
또한 우리는 흔히 평균소득을 소득 상태의 기준으로 삼지만, 평균소득은 중위소득값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평균 이하의 소득인 사람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고소득층이 비록 수는 적지만 이건희 전 회장 같은 몇 사람만 표본에 들어가도 평균소득값을 대폭 끌어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평균소득 수준은 전반적인 소득 상태의 실제 모습을 부풀려 보여줄 위험이 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의 표본 설계 단계에서 최고소득층 집단을 배제시켜야 하는데, 통계청은 개별 가구소득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쪽은 “국세청에서 근로소득자 정보를 통계청에 건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다른 통계가 재분배 정책 왜곡할 수도이와 관련해 전국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2003년 264만원에서 2008년 341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월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의 비중은 2003년 13.7%에서 2008년 9.8%로 줄어든 반면, 600만원 이상 가구는 2003년 4.47%에서 2008년 10.7%로 훨씬 크게 늘었다. 고소득층의 분포가 대폭 증가하면서 평균소득을 끌어올린 것이다. 극히 부유한 일부 계층을 단지 ‘사회적 호기심’의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의 소득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소득 수준’을 과도하게 끌어올려 소득재분배 정책의 기획·수립에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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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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