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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도요타 한국시장 신경전

도요타의 ‘캠리’ 소리 없는 약진에 현대차‘ YF쏘나타’ 앞당겨 내놓고 추이 주목
등록 2009-11-05 17:09 수정 2020-05-03 04:25

도요타 ‘캠리’의 한국 상륙으로 현대·기아차와 일본 도요타의 자존심 싸움이 만만치 않다. 두 회사 모두 외부적으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며 상대방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도요타가 10월20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신차 발표회를 열고 ‘캠리 하이브리드’를 선보이고 있다(왼쪽). 현대자동차가 9월18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선상에서 신차발표회를 열고 ‘YF쏘나타’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연합

도요타가 10월20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신차 발표회를 열고 ‘캠리 하이브리드’를 선보이고 있다(왼쪽). 현대자동차가 9월18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선상에서 신차발표회를 열고 ‘YF쏘나타’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연합

도요타는 10월20일 신차발표회를 열고 캠리를 비롯해 ‘캠리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RAV4’를 선보였다. 그런데 캠리의 돌풍이 심상치 않다. 9월14일부터 캠리의 사전계약을 받은 결과, 최근까지 1800여 대 실적을 올렸다. 국내 시장에서 1·2위를 달리는 BMW, 아우디 등의 판매대수는 월 500~600대 수준이다.

그동안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도 2천만원대 후반대의 대중적인 모델이 선을 보였지만 현대·기아차가 수성하고 있는 대중차 시장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캠리의 등장으로 1차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캠리가 중산층 시장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자신들의 차 구매의사를 밝힌 고객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차를 사겠다는 사람의 94%가 현대차 보유자였다.

그랜저는 10월20일까지 판매량이 3048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판매량인 6146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랜저를 구매하려던 고객들이 가격경쟁력이 있는 캠리 쪽으로 옮겨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캠리의 충격이 그리 강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캠리에 맞서 YF쏘나타의 출시 일정을 앞당겨 신차 효과를 거둬들이고 있다. YF쏘나타는 계약 접수 한 달 보름 만에 6만 대를 훌쩍 넘겼다.

박동욱 현대차 재무관리실장은 10월22일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도요타 캠리가 신형 쏘나타와 비교되는데 상품성에서 쏘나타가 더 우수하다”고 못 박은 뒤 “가격 면에서도 쏘나타가 20~35% 정도 저렴한데다 서비스의 신속성과 용이성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정의선 부회장 직접 나서 임원들 독려

하지만 현대차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최근 한 회의석상에서 ‘초등학생도 현대의 잠재고객이 될 수 있게 만든다는 각오로 기술과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 고위 임원들이 도요타의 국내 진출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 부회장이 ‘초등학생’이란 단어까지 동원하며 임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으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캠리의 가격을 놓고서도 두 회사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캠리는 현대차의 쏘나타와 그랜저의 정확히 중간 가격을 책정하고, RAV4는 현대 투싼ix와 싼타페의 중간 가격을 책정했다. 이런 가격 정책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선 도요타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철저하게 현대차를 겨낭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도요타는 국내 판매가격을 애초 3천만원 후반대에 출시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뒤엎고 3490만원(부가세 포함)에 내놓은 것이다. 캠리의 경쟁 모델인 혼다 어코드 2.4보다 100만원 가량 싸고, 닛산 알티마 2.5와 비교하면 200만원 저렴하다.

현대차는 도요타의 이같은 가격 정책으로 ‘한국 차가 상대적으로 너무 비싼 게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수입차가 대중화될 것에 몹시 신경 쓰는 분위기다. 여기에 현대차는 신형 쏘나타를 내놓으면서 값을 크게 올렸다. YF쏘나타는 차종 평균 200만원 넘게 올랐다. YF쏘나타2.0 풀 옵션 모델 가격은 2820만원이다. 캠리2.4와 약 70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 현대차는 신형 쏘나타 2.4모델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인데 이 경우 가격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랜저Q270 풀 옵션의 가격이 3740만원으로 오히려 캠리보다 비싸다.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지만 현대차는 그랜저를 구입하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90만원씩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그랜저 겨냥했다는 분석에 현대차 불쾌감

도요타가 그랜저를 노렸다는 분석에 대해서도 현대차는 불쾌해하고 있다. 현대차는 또 도요타의 경쟁차종으로 그랜저가 아닌 쏘나타를 내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쏘나타와 동급인 캠리가 국내에서 자칫 그랜저의 경쟁모델로 인식될 경우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도요타는 쏘나타보다 그랜저급 비교모델로 캠리를 앞세우고 있어 두 회사의 자존심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차의 더 큰 고민은 안방에서 자리를 내주면 글로벌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도요타가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현대차를 공략하기 위해 심장부인 한국 시장 공략을 택했다고 분석한다. 사실 현대차는 일본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현대차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들뜬 분위기에 힘입어 야심차게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현대차는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판매를 확대하고 ‘욘사마’로 대표되는 ‘한류’를 마케팅 삼아 한 해 3만 대의 판매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지난 7월 한 달 동안 일본시장에서 13대를 파는 굴욕적인 판매를 보였다. 북미 시장에서 도요타와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현대차는 안방 시장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도요타는 약삭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기라 다이조 한국도요타자동차 사장은 “한국 시장에서 공급 물량을 대폭 늘리거나 새 모델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 없다. 올해는 월 500대이며 내년부터는 월 700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히 보수적인 목표치다.

도요타, 역풍까지 고려하는 치밀한 전략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는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됐다. 도요타가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여서 자칫 현대차를 자극하며 국내에 진출할 경우 반일감정과 같은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도요타는 판매 확대 보다 사회공헌 등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든 뒤 장기적으로 국내 시장을 파고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량을 한꺼번에 쏟아내기 보다 도요타의 친환경 기술과 가치를 널이 알리며 브랜드 이미지를 서서히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다.

또 수입차의 단점으로 지적받고 있는 애프터서비스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을 벌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판매 위주로 갔을 때 애프터서비스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후노 유키토시 도요타 본사 부사장은 “사후처리(애프터서비스) 등 자동차 업체에게 기본적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업무에 충실한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6만1648대로, 판매 1위 업체는 혼다코리아로 1만2356대를 판매했다. 국내 승용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외국차 비중은 2005년 3.3%에서 올 1~8월 5.4%로 크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조용한’ 출발을 한 도요타가 가속페달을 밝으면 국내 자동차 시장에 불러일으킬 파장은 잔잔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에 현대차가 어떻게 대응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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