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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 다시 ‘군침’

대주주 지분 매각 여부에 촉각… 노조 “흑자 돌아서니 날로 먹으려” 강력 반발
등록 2009-04-10 18:46 수정 2020-05-03 04:25

대한항공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하 카이)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카이는 ‘결사반대’를 천명하며 ‘파업 불사’를 외치고 있다. 대한항공과 카이의 ‘제3차 인수전’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카이는 산업은행이 30.54%, 삼성테크윈·현대자동차·두산인프라코어가 각각 20.54%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유일의 종합 항공기 제작회사다. 초음속 항공기 ‘골든이글’(T-50의 별칭)을 세계 12번째로 개발에 성공했다. 물론 한국 최초였다.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조원들이 3월26일 사내 운동장에서 ‘대한항공의 KAI 지분 인수 저지 보고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연합 지성호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조원들이 3월26일 사내 운동장에서 ‘대한항공의 KAI 지분 인수 저지 보고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연합 지성호

산업은행·삼성·현대·두산이 대주주

일단 인수전의 불씨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댕겼다. 조 회장은 지난 3월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카이 지분 인수 뜻을 내비쳤다. 당시 조 회장은 “대한항공은 이미 방위산업 부문 사업을 하고 있어 국가 산업에서 카이의 중요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좋은 제안이 온다면 (대주주인) 두산 쪽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카이 지분 매입과 관련해 대주주인) 산업은행에서 아직 공식 인수제안서를 받지는 않았지만 만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카이의 시작은 부실 대기업의 항공 부문 통폐합이었다. 1980년대 항공·우주 사업이 돈이 된다고 여긴 대기업들이 잇따라 항공기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데다 장기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이후 항공 사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한 대기업에선 항공기 제작 대신 시계를 만들 정도였다. 카이는 1999년 삼성·현대·대우(현 두산인프라코어) 항공 부문을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세워졌다.

하지만 카이는 2006년 산업은행이 채권을 출자전환하면서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돼 흑자 회사로 되살아났다. 2007년 8천억원 매출에 7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2009년엔 9100억원 매출에 19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재계에선 대한항공이 두산의 카이 지분을 매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3월27일 주총에서 (주)두산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도 이날 “카이 지분 매각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 일단 두 그룹 총수가 카이 지분 인수와 매각에 관심을 밝히면서 협상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회사채 발행과 계열사 사업부 매각으로 3조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한 두산그룹이 지분 매각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란 애기도 나돈다. 지분 매각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두산의 카이 지분을 인수하게 된다면 추가 지분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한진그룹이 두산 이외에 다른 그룹의 카이 지분까지 인수한다면 산업은행을 제치고 1대 주주로 올라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너지 효과 놓고 평가 엇갈려

여기에 삼성과 현대차 등이 카이 인수 의지를 밝힐 경우 경쟁은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이미 현대로템(전차)과 위아(항공기 랜딩기어) 등 계열사들이 방위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화그룹(항공기 엔진 부품 제작)도 한때 카이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2003년과 2006년에도 카이 인수를 시도했다. 2003년 대한항공은 카이의 공동 대주주였던 대우종합기계와 양해각서(MOU)까지 맺었다가 가격 차이로 협상이 깨졌다. 2005년부터 두산과 카이 지분 인수 관련 협상을 했지만 이듬해 가격 차이로 결렬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대한항공 경영실적 비교

한국항공우주산업(KAI)-대한항공 경영실적 비교

카이 쪽은 대한항공 인수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카이 노조는 3월26일 경남 사천 공장에서 ‘대한항공 카이 인수 저지를 위한 조합원 보고대회’를 열었다. 노조는 “대한항공이 기회만 되면 카이를 흔들고 있다. 비장한 각오로 인수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는 인수에 대해 180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시너지에 관해서다. 대한항공은 여객·화물 운송 서비스와 항공기 제작을 같이 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카이를 인수하면 대한항공은 항공기 부품 제작이 아니라 항공기 전체를 만드는 기술을 얻게 된다. 대한항공 쪽은 “차세대 항공기 부품 제작 사업을 장기 성장 동력으로 확보해 글로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카이는 시너지 효과가 허구라고 지적한다. 카이 관계자는 “그동안 대한항공은 항공 운송과 항공기 제작 사업을 같이 벌여왔다. 하지만 항공기 제작 부문의 경영 실적은 엉망이다. 매출액도 카이의 40%에 그친다. 대한항공은 제조업에 투자할 의지가 있는 기업이 아니다. 물류·관광·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기업”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흑자 기업을 날로 먹으려 한다’는 논란이다. 카이 쪽은 “1999년 항공 3사 통합 때 대한항공은 독자 생존하겠다며 통합을 외면했던 업체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카이가 흑자 경영으로 돌아서자 또다시 인수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당시 3사는 부실 덩어리였고 대한항공 제작 사업 부문은 부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합을 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며 “카이가 적자일 때도 인수를 추진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카이는 대한항공 제조 부문 부실 때문에 카이도 부실 업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카이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70~80년대 항공 사업을 독점해왔다. 하지만 소극적인 투자로 기술 축적과 국산화에 실패해 항공 산업의 정체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카이 쪽이 민영화를 피하기 위해 인수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기업 민영화 0순위 대상 될 수도

칼자루는 산업은행이 쥐고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카이 지분 매각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선진화란 이름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보인 성과가 없다. 그동안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우조선 매각도 실패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뭔가 하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카이는 대우조선보다 매각 가격도 싸 부담이 없다. 카이 매각이 0순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이 노조는 “정부는 대한항공의 카이 지분 인수 시도를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 대한항공에 카이를 넘긴다면 국가 항공 산업의 장래는 보장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8월과 10월 세 차례에 걸쳐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카이를 비롯한 14곳의 공적자금 투입 기업은 민영화 대상에 포함돼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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