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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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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쇼핑 포털 꿈꾸는 온라인 장터

외환위기를 자양분 삼은 옥션과 타깃 수요층 이끌어낸 G마켓
등록 2008-12-18 14:32 수정 2020-05-03 04:25

시끌벅적 와글와글하다. 상인들이 물건에 가격을 붙여 예쁘장하게 진열한다. 손님들은 좀 깎아달라고 흥정을 한다. 물건을 값싸게 사려면 흥정을 잘하거나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손 붙들고 따라간 시장 풍경이다.
인터넷에서도 닮은꼴의 시장이 있다. 오픈마켓플레이스, 온라인 장터다. 그 옛날 장터의 에누리와 덤은 온라인의 할인판매와 마일리지로 다시 만난다. 시끌시끌한 소리는 ‘뽀샵’한 이미지와 깔끔한 텍스트로 바뀌었다. 시장 속 ‘그때 그 시절’ 꼬마는 지금 인터넷 장터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질 좋고 싼 물건을 찾고 있다.
인터넷 종합쇼핑몰이 백화점처럼 크고 작은 업체들이 모여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G마켓과 옥션은 서울 동대문시장처럼 많은 개인 판매자들이 모여 수수료(가게세)를 내고 판매하는 곳이다.

쇼핑 포털 꿈꾸는 온라인 장터 옥션과 G마켓.

쇼핑 포털 꿈꾸는 온라인 장터 옥션과 G마켓.

옥션이 먼저 인터넷 장터를 열었다. 1998년 4월 옥션의 전신인 CAN(Cyber Auction Net)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경매는 생소했다. 롯데·한솔 등 대기업들이 인터넷 쇼핑몰을 막 개설할 때였다. 당시 대기업은 경매에 눈곱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경매 사이트와 새 제품 위주로 판매하는 종합쇼핑몰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불황은 옥션을 더욱 강력한 브랜드로 키웠다. 우울한 외환위기를 맞은 그때, 사람들은 지갑 여는 것을 꺼렸다. 그저 싼 가격의 상품을 원했다. 새것부터 중고까지 질 좋은 상품을 싸게 구입하고픈 사람들이 옥션으로 모여들었다.

‘두발자전거론’으로 이베이와 손잡아

2000년 4월 G마켓 전신인 구스닥은 인터파크 자회사로 출발한다. 인터파크의 사내벤처에서 독립한 것이다. 인터파크가 데이콤의 사내벤처였으니 ‘사내벤처의 사내벤처’인 셈이다. G마켓도 독특한 쇼핑 서비스를 내놨다. 주식매매 방식이다. 상품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주식거래처럼 호가와 수량을 제시하면 상품 가격이 변동하면서 호가에 맞는 경우 거래가 체결된다. 이듬해 G마켓은 가격 흥정 서비스도 내놓는다. 상품을 사려는 사람이 판매가보다 싸게 사고 싶으면 흥정하기를 클릭해 싼 가격을 제시한다. 파는 사람이 미리 정해놓은 최저 가격보다 높으면 거래가 바로 체결된다. 제시한 가격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엔 판매자가 흥정 가격을 다시 제시해 조정이 이뤄지게 한다. 인터넷에서 깎는 재미를 준 것이다.

그사이 일본. 세계 최대 경매업체 이베이는 2000년 일본에서 짐을 쌌다. 일본 진출 1년 만이었다. 일본 NEC와 손잡고 진출했지만 현지화에 끝내 실패했다.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베이의 경매 서비스는 미국식이었다. 집 안에서 쓸모없는 물건이나 이사를 가면서 필요 없어진 물건을 길거리나 차고 앞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중고품 위주였고 이미지를 예쁘게 장식하지도 않았거니와 대부분 글로만 상품을 표현해 판매했다. 일본인들은 이런 식의 경매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시 한국. 그즈음 옥션은 시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경쟁자들이 등장했다. 와와·이세일·셀필아·야후경매·예스프라이스 등 경매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긴 것이다. 삼성도 삼성옥션을 만들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옥션에는 위기였다.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불안한 1위였다. 옥션의 매출은 늘어났지만 실적은 신통치 못했다. 적자가 이어졌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투자를 받아야 했지만 투자자를 찾기 힘들었다.

‘이효리 스타샵’에 젊은 여성층 열광

이런 상황에서 이베이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옥션으로선 이베이가 한국지사를 통해 진입하는게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였다. 옥션은 경쟁 대신 이베이와 손잡는 전략을 세운다. 당시 이금룡 옥션 사장은 미국 이베이 본사에서 된장 내음 풀풀 나는 콩글리시로 투자유치 프레젠테이션을 벌인다. 이른바 ‘두발자전거론’이다. 옥션과 이베이가 두발자전거처럼 협력해야 윈윈한다는 게 뼈대다. 이베이 역시 일본에서의 실패로 섣불리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결국 옥션은 지분의 50%를 넘기며 1500억원을 투자받고 이베이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 홍윤희 옥션 차장은 “국내 벤처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M&A)으로 인정돼 2001년판 한국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말했다. 이베이는 2004년 옥션의 나머지 부분까지 모두 인수한다.

2003년까지 G마켓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다. 임직원들이 점심을 자장면으로 때우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자본금 18억원을 대부분 까먹었다. 남은 건 2억원. 투자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바닥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다시 무엇을 해보느냐, 아니면 여기서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쇼핑몰 시장에 나서야 할지 또는 옥션이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온라인 장터로 가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G마켓은 옥션에 도전장을 낸다.

G마켓은 치밀한 이용자 구매 분석을 했다. 종합쇼핑몰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가전·컴퓨터 대신 의류와 패션, 잡화 쪽에 무게중심을 뒀다. 가수 이효리를 내세워 ‘스타샵’을 열었다. 가격보다 스타에 민감한 젊은 여성층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박주범 G마켓 팀장은 “의류와 패션잡화는 인터넷 구매 패턴을 잘 대변해주는 품목이었다. 부담 없이 살 수 있는데다 다시 사는 주기가 빨라 단기간에 많은 구매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는 구매력이 높지 않다고 여겼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의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 특수 뒤 동대문시장의 의류상인들은 극심한 불황에 빠졌다. 동대문 의류상가들은 인터넷으로 진출하고 싶어했지만 쇼핑몰을 개설하기가 쉽지 않았다. G마켓은 이들에게도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며 장터를 열어줬다.

2000년대 초까지 G마켓은 옥션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4년 중반부터 G마켓은 치고 올라온다. 2006년에는 업계 최초로 연간 거래액이 2조원을 넘어섰다. 2007년에는 거래액이 3조2500억원에 이르렀다.

도전업체의 성공은 1위 업체의 위기였다. 옥션은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기) 전략을 쓴다. 고객 신뢰와 만족을 얻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았다. 옥션은 판매자들과 함께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짜 브랜드 단속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옥션에서 거래하면 백화점이나 할인점처럼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2006년 업계 최초의 쇼핑지식 커뮤니티인 ‘쇼핑백과’를 열었다. 현재 약 400만 건의 쇼핑 리뷰가 모여 있어 포털 못지않은 쇼핑 정보를 갖췄다.

2009년엔 중소상인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선보인다. 서민석 옥션 부장은 “풀뿌리 판매자인 우리나라 상인들은 패션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소상공인들이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를 대상으로 상품을 팔 수 있는 국경 간 거래 서비스도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도전 따돌리며 시장 키워

G마켓은 패션에 이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농수산 식품이 바로 그것이다. 농수산 식품의 매출 비중(현재 5% 수준)을 패션의류(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식품 시장으로 온라인 장터를 확대해 성장 동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정용환 G마켓 이사는 “20대 패션 시장에 이은 새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바로 지방의 농수산 식품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지방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션과 G마켓이 경쟁을 시작하며 온라인 장터는 크게 성장했다. 그 가능성을 내다본 대기업들도 뛰어들면서 시장 파이는 더욱 커졌다. 두 회사는 대기업들마저 따돌렸다. G마켓과 옥션은 모두 쇼핑포털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선 TV홈쇼핑과 백화점, 종합쇼핑몰과 싸워야 한다.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과도 맞장을 떠야 한다.



온라인 장터에 비친 불황 트렌드
곱배기 라면용 사리·70년대식 난로 불티


인터넷 장터는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폭설이 내리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하면 인터넷 장터 매출은 쭉 올라간다. 하지만 계속 춥거나 계속 비가 오는 것도 달갑지 않다. 박주범 G마켓 팀장은 “비가 와주는 것은 좋지만 장마는 반갑지 않다. 왜냐면 장마 초기에는 매출이 늘지만 장마가 계속되면 사람들이 밖으로 많이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잘 팔리는 시간대도 따로 있다. 오전보다 오후가 더 잘 팔린다. 오전에는 직장 업무 때문에 쇼핑 보기가 쉽지 않아서다. 화·수·목이 매출이 높다. 월요일은 낮다. 왜냐하면 월요일은 상품을 살까 말까, 어떤 상품을 살까 고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불황 역시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 옥션의 경우, 공중 화장실용 롱티슈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불황 탓에 일반인들이 대용량 제품을 저렴하게 사서 챙겨놓고 쓰기 때문이다. 사리면도 요즘 잘 팔리는 상품. 고시생 등 라면을 즐겨 먹는 이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보통 라면 하나에 사리면을 넣어 곱빼기 라면을 만들어 먹기 때문이란다. 생수와 중소 브랜드 세제도 많이 팔린다고 한다. 홍윤희 옥션 차장은 “이런 물건들은 무거워 주부들이 마트에서 사서 가져오기가 여의치 않은데, 인터넷 장터에선 택배로 배달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장터 상품은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몇 년 전 반신욕이 유행이었을 때, 옥션에선 한 아마추어 발명가가 욕조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고무통을 개조해 만든 반신욕조가 인기를 끌었다. ‘반신욕 욕조 고무 다라이’란 이름으로 오른 이 상품은 옥션에서만 일주일 사이 600여 개가 팔렸다. 올겨울 옥션에선 연탄·갈탄·나무 등 구식 연료를 쓰는 70년대식 난로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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