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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경제학의 늦겨울

등록 2008-03-27 15:00 수정 2020-05-02 19:25

서울대 김수행 교수 후임 논란… 비주류 경제학의 필요성 커지는데 입지는 점점 좁아져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2월29일 정년 퇴임한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호에 실은 ‘나의 삶, 나의 학문’이란 글에서 “서울대 경제학과의 대학원 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농성을 통해 ‘정치경제학 전공자’를 영입하라고 교수들을 압박했고, 그 결과로 내가 1989년 2월 서울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강고한 장벽을 뚫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33명 중 유일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전공자였다.

김수행 교수 영입 때도 농성

19년이 지난 요즘, 비슷한 요구가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은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전공자를 후임으로 선발해달라는 대자보를 붙였고, 다른 대학의 경제학 교수 80명도 “김 전 교수 후임으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전공자를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지난 3월14일, 서울대 경제학부는 전체 교수회의를 거쳐 김수행 교수 후임 신규 채용 때 전공 분야를 ‘경제학 일반’(정치경제학 포함)으로 표기해 이달 말에 채용 공고를 내기로 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쪽은 “‘정치경제학’을 특정해 언급한 건 지원자 중 적절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전공자가 있으면 뽑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자로는 김수행 전 교수 외에 류동민(충남대)·정성진·김정주·김창근(이상 경상대)·조원희(국민대)·김성구·박영호·강남훈·윤소영·김윤자(이상 한신대)·조복현(한밭대)·이채언(전남대)·홍훈(연세대)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비롯해 ‘비주류’ 혹은 ‘이단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 학문이다. (포스트) 케인스주의를 비롯해 넓은 의미의 ‘비주류 경제학자’로 보면, 김균·박만섭(이상 고려대)·박종현(진주산업대)·신정완(성공회대)·안현효(대구대)·이강복(조선대)·이병천(강원대)·이정우(경북대)·김진일(국민대)·이일영(한신대)·장상환(경상대)·성낙선(한신대) 교수 등을 들 수 있다.

국내 마르크스주의경제학 1세대는 김수행·박영호·고 정운영 교수다. 1982년 이들은 함께 한신대에 교수로 들어간 뒤 이영훈·윤소영·강남훈 박사를 잇따라 교수로 영입하고 경제과학연구소를 설립해 이곳을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 거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제도권에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교육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1987년 초, 한신대 학내 민주화 요구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운영·김수행 교수는 해직됐다. 물론 한신대 경제학과는 그 뒤에도 김윤자·김성구·전창환·성낙선·정건화·양우진 등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로 채워졌다.

특히 1985년에는 이병천·김기원·김형기·윤소영·정성진 교수 등이 마르크스주의경제학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이들을 주축으로 마르크스주의경제학회 건설을 목표로 1987년 4월 ‘한국사회경제학회’(한사경)가 창립됐다. 정성진 교수는 “사회경제학회란 표현은 공안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완곡 어법이었다. 한사경이 마르크스주의경제학회라기보다는 비주류 경제학의 종합 학회적 성격이었음에도,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교육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988년 4월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자치회는 ‘정치경제학 전공교수 영입 문제를 계기로 드러난 경제학과 제반 문제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발표하고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그해 10월 김수행 교수가 전공교수로 채용됐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의 제도화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바야흐로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의 봄’이 온 듯했다. 1981년 대학 졸업 정원제에 따른 대학 입학 정원 급증과 대학 교수요원 수요 급증을 배경으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청년 연구자들이 대거 대학 전임교수로 진입했다. 그러나 봄은 짧았고, 상당수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 ‘전향’하거나 포스트주의를 표방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소장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자들은 생계와 취업의 압박 아래 부르주아경제학을 ‘부업’으로 하게 되었다.

물론 정운영 교수 등이 1992년 계간 을 창간(현재의 )하면서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의 명맥을 유지했고, 홍훈·김균·박만섭 등 마르크스주의경제학에 우호적인 연구자들이 주요 대학의 전임교수로 채용되면서 마르크스주의경제학 교육·연구를 계속하거나 지원했다.

“현안 문제에 개입하지 못했다”

정성진 교수에 따르면, 2007년 한사경 진성회원 81명 가운데 지금도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연구하는 회원은 12명에 불과하고, 이전에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연구했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연구하지 않거나 제도주의, 포스트 케인스주의 등으로 선회한 회원은 28명에 이른다. 서울대의 경우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전공 석사학위 수여자는 1990년 24명을 정점으로 90년대 후반 이후 5명 안팎으로 줄었다.

최근호에서 정성진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제학 분야만큼 ‘종의 다양성’이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학과에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자가 전임교수로 있는 경우도 단순 재생산조차 염려될 정도로 주변화돼 있다”며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경제학 연구는 지나치게 아카데미즘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 문제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고, 한국 경제의 구체적 분석과 대안 제시 부분에서도 취약했다”고 평가했다. 강남훈 교수도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마르크스주의경제학자들이 학교에 남는 길이 끝나버렸고, 먹고사는 문제가 당장 닥치고, 학교에 남은 연구자들도 강단화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수행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경제학도 자꾸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일정하게 주어진 목표가 아니라 민주·복지·노동자 권리 향상 등을 놓고 많은 참여와 논의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어가면서 새로워지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이 퇴조와 곤경에 처해 있지만,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양극화 심화, 반자본주의 지향 운동의 고양, 전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 대두 등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비주류 경제학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연구회’라는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고, ‘맑스코뮤날레’ 같은 토론회와 강연회도 어느 정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김수행 교수가 개설한 직장인 중심의 ‘사회과학아카데미’(마르크스주의경제학 8과목 개설) 수강생도 130명에 이른다. 강남훈 교수는 “학부 대상 강의 수강생이 최근 2∼3년 동안 조금씩 늘고 있다. 현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지니까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남미 좌파 정권 물결 등을 볼 때 비판경제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원희 교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갈등, 불안정성이 증대하면서 부르주아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그러나 서울대가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독점 생산할 이유는 없다. 한신대나 경상대가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의 메카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수행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마르크스주의경제학 교수를 뽑지 않으면 이것이 모델이 되어 다른 학교에서도 비주류 경제학자를 안 뽑는 명분이 될 수 있다”며 “내 밑에 박사과정 9명, 석사과정 4∼5명이 있었는데, 내가 퇴임해 논문 심사도 못 받을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프랑스 등에선 비주류 경제학 운동 일어

우리나라 경제학계가 주류 경제학 일색으로 고착화되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21세기 벽두부터 프랑스 등에서는 경제학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비주류 경제학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른바 ‘후자폐적(post-autistic) 경제학 운동’이다. 2000년 봄 프랑스 소르본대학 학생 15명은 ‘(자폐적)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현실 경제 설명력이 취약하다고 비판하면서, ‘참된 경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경제학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과 기타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제학도들의 공개 서한’을 발표하고 경제학 교육 내용에 다양성과 대안적 이론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전달됐고, 2001년 순식간에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로 확산됐다. 현재 후자폐적 경제학 운동 네트워크에는 전세계 수만 명의 학생들과 경제학자들이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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