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항암제를 둘러싼 코미팜과 이상봉씨의 분쟁…법원은 일단 가처분 결정에서 이씨 권리 인정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인 코미팜이 개발한 항암제 ‘코미녹스’는 비소 대사체(Sodium Meta Arsenite) 물질이 암세포에 미치는 효과를 이용해 암세포의 증식·전이를 억제하는 것으로, 전립선암 등 여러 종류의 암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독일에서 임상시험(제3상)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05년 코미팜 주식은 코미녹스 개발 소식을 타고 불과 10개월여만에 28배나 폭등했고, 액면가의 100배 이상 올라(시가총액 4천억원) 최대 화제주로 부상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코미녹스의 특허권을 둘러싸고 코미팜과 이상봉 전 코미팜 중앙연구소장(약학박사)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빚어지고 있다.
사실관계를 놓고 둘 사이에 몇 군데 이견이 있지만, 다툼이 빚어진 사연은 대략 이렇다. 이상봉씨는 1998년 네덜란드에서 라데마커(레파톡스사 대표)를 처음 만났고, 그해 12월 암스테르담 노보텔 호텔에서 라데마커에게 비소 대사체를 이용한 항암제 개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뒤 2000년 12월, 이씨는 ㄱ제약에 근무할 당시 라데마커에게 이메일을 보내 “ㄱ제약을 스폰서로 실험을 재개하자”고 연락했다. 2001년 1월19일 서울에서 이상봉·ㄱ제약 전무·라데마커 3자가 만나 특허 협의를 하고, ㄱ제약을 개발 스폰서로 하는 메모랜덤(계약의 사전단계 합의서)을 작성했다. 이때 이씨가 라데마커에게 “1998년에 내가 비소 대사체 실험을 제안했다”는 내용의 메모랜덤을 만들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고, 2월21일 라데마커로부터 메모랜덤을 받았다. 그런데 2001년 2월 ㄱ제약은 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당시 이씨는 한국미생물연구소(2004년 9월 코미팜으로 회사명 변경)의 양용진 사장을 만났다. 이씨는 곧장 라데마커에게 ‘당신이 동의하면 스폰서를 코미팜으로 바꾸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2월25일 라데마커와 코미팜 간에 연구실험 계약이 맺어졌다. 실험 비용은 코미팜이 투자하고 레파톡스사가 실험을 대행하기로 한 것이다.
공동특허를 둘러싼 논란
즉시 성공적인 실험 결과가 나왔고, 2001년 4월 코미팜·이상봉·양용진 3자 공동으로 한국특허를 출원했다. 이씨는 “처음에 코미팜과 이상봉이 50 대 50으로 특허 지분을 나눠갖기로 약속했는데, 한국특허 출원 당시 양 사장이 ‘코미팜·이상봉·양용진 3인이 33%씩 공동으로 특허지분을 갖자’고 요구해 내가 수용했다”고 말했다. 2002년 5월에 특허협력조약(PCT·여러 국가를 한꺼번에 지정해 단 한 번의 특허출원으로 각국 특허등록을 마치는 것)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80여 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할 때도 코미팜·이상봉·양용진 3자를 공동 출원자로 등재했다. 그리고 2003년 4월, 이씨는 ㄱ제약에서 코미팜 중앙연구소장으로 직장을 옮겼고 2004년 11월 한국특허는 등록 완료됐다. 2005년 3월 코미팜 이사회는 항암제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씨한테 주식 13만 주를 스톡옵션으로 부여했고, 2005년 5월 코미팜·이상봉·양용진 3자는 ‘특허권 및 이익분배’와 관련한 계약서를 작성해 ‘이상봉·양용진이 발명자이고, 코미팜은 자금지원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공증까지 마쳤다.
이씨는 “2005년 9월 코미녹스 특허권 소송을 맡고 있는, 뉴욕에 있는 로펌 ‘맥더맛’에서 라데마커가 특허권을 요구할 것에 대비해 청문회를 열었는데, 당시 맥더맛이 2001년 2월21일자 메모랜덤에 기초해 ‘라데마커는 특허권이 없다. 이상봉이 특허권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미팜과 이씨는 공동 특허권자로서 좋은 동반자 관계를 이어갔다.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 건 2005년 10월부터다. 이씨는 “코미팜 쪽이 당시 일방적으로 연구소장직에서 나를 해임했다. 이사회를 소집해 스톡옵션도 무효화하고, 특허권을 회사에 양도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공동 특허권자로 등재돼 있던 양 대표는 이미 2005년 8월, 국제특허 출원서류에서 자신의 특허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코미팜에 넘겼다. 양 대표는 2008년 1월 말 현재 코미팜 지분 31.9%를 소유한 대주주다. 이와 관련해 코미팜 쪽은 “맥더맛 로펌이 연구 진행 과정, 연구자들의 역할 등 특허권을 실사한 결과 발명자는 라데마커이고 코미팜만이 유일한 특허권자로 나타났다”며 “이상봉·양용진은 연구자금을 부담하거나 연구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특허권은 무효다. 3자 공동특허 공증서는 양 대표가 잘못 알고 맺은 절차상 하자 있는 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2007년 7월 코미팜은 “이씨는 특허권이 없다”며 이씨를 상대로 특허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코미팜 쪽은 “2001년 2월25일 레파톡스와 항암제 개발계약을 맺을 때 코미녹스 특허권은 코미팜에 귀속한다고 명시했는데도 이씨가 불법으로 공동 특허권자로 등재해놓고 특허권을 양도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씨도 “내가 공동 특허권자”라며 가처분 이의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에 맞선 한 개인의 싸움?
코미녹스 특허는 한국특허, 미국특허, PCT 국제특허 세 가지로 나뉜다. 특허출원은 ‘출원자’와 ‘발명자’로 구분되는데 발명자는 명예일 뿐이고 특허권의 실시권(특허 발명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 등 재산권은 출원자가 갖게 된다. 발명자와 출원인은 권리 양도 등을 통해 변경될 수 있다. 2004년 10월5일 코미녹스 PCT 국제특허(출원번호 PCT/KR2006/001731)의 출원자 겸 권리자는 이상봉·양용진·코미팜으로 돼 있고, 발명자는 이상봉·양용진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2006년 5월의 PCT 출원서류를 다시 보면, 출원자는 미국 이외의 모든 국가에서 ‘코미팜’ 단독으로 바뀌어 있고, 미국은 출원자가 ‘라데마커’로 변경돼 있다(미국 특허출원은 법인이 아닌 개인 발명자 명의만 가능함). 또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발명자가 ‘라데마커’로 바뀌어 있다(미국특허에서 발명자에는 이씨가 포함돼 있음). 애초에는 미국특허도 발명자 겸 출원자는 이상봉·양용진·코미팜 3자로 등재돼 있었다. 코미팜이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이씨의 특허 지분을 빼고 코미팜 단독 특허권으로 바꿔 출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코미팜 쪽은 “(유일한 특허권자는 코미팜이라는) 맥더맛의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정할 건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3자 공동 특허권으로 출원된 뒤 양 대표가 내 특허 지분을 50%에서 33%, 20%로 계속 낮출 것을 요구해왔다. 코미팜이 나를 고발하기까지 해 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코미팜이 제1 발명자인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특허출원 서류의 발명자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당시 ㄱ제약에 근무하면서 코미팜의 프로젝트 일체를 담당했고, 코미팜 연구소장으로 옮기기 전까지 네덜란드·독일을 오가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한 ‘직무발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라데마커가 2004년 10월8일과 2005년 8월10일 나한테 보낸 메일에서 ‘모든 국가에서 출원자를 코미팜·이상봉·양용진 3자로 한다. 레파톡스사는 코미녹스 특허권리를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했는데 라데마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고, 맥더맛이 개입하면서 나를 특허권자에서 박탈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허의 경우 아이디어뿐 아니라 연구 내용에 실질적으로 관여해야 ‘발명자’가 될 수 있다. 이씨는 “내가 비소화합물을 이용해 항암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항암제 개발연구를 실질적으로 진행했다. 코미팜은 연구자금을 지원했고, 협의에 의해 특허권을 3자 공유하로 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양용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미녹스 개발에서 이씨의 노력이 큰 보탬이 됐다”(2004년 10월)거나, “(이씨는) 코미녹스 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한 개발 책임 전무”(2005년 3월)라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씨가 코미녹스 개발의 최초 제안자임을 입증할 문건으로 볼 수 있는, 라데마커가 2001년 2월21일 이씨한테 보낸 메모랜덤을 둘러싸고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씨는 “코미팜이 제시하는 메모랜덤은 ‘당신(이상봉)이 1998년 노보텔 호텔에서 대사체에 관한 연구를 제안한 대로’라는 영문 문구가 삭제돼 있는 등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코미팜 쪽은 “맥더맛의 실사 결과, 이씨가 주장하는 메모랜덤은 2004년 12월28일 이씨가 라데마커에게 이 문구를 넣어 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 작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코미팜 “증거 많이 갖고 있다”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2007년 12월14일 서울중앙지법(제51민사부)은 이씨가 낸 ‘가처분 이의’ 청구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가처분 사건 결정은 본안 소송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적 판단일 뿐이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이씨가 라데마커와 실험 진척 상황에 관한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해왔던 점 △양 대표가 회사를 대표해 특허권 공동 등록을 추진한 점 △회사 쪽이 특허권 공동 등록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고, 특허 공동 등록은 회사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이씨가 항암제 연구 시작과 진행 과정, 특허 출원·등록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특허권의 공동 발명자로서 공동 출원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미팜 쪽은 이에 대해 “가처분 소송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지만 ‘이씨는 특허권이 없다’는 근거를 많이 갖고 있다. 맥더맛에서 추가 실사가 끝나면 새로운 증거를 위주로 본안 소송을 조만간 다시 제기하고, 모든 국가에서 이씨로부터 특허권을 양도받는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