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kg 등 법정 계량단위만 쓰도록 강제하는 방안 추진하는 정부… 척관단위는 일제 때 들어온 관행, 부정확한 표기로 소비자 손해도 많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통일을 이룬 뒤 제일 먼저 실시한 건 도량형 통일이었다. 대한제국의 건국 이후 제1호 법률도 도량형법이었다. 국가는 일반적으로 독점 징세권과 독점 화폐발행권을 갖고 있는데, 무게·길이·부피 등을 재는 계량단위는 독점적 권한은 아니지만 상거래 질서를 유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세금·화폐 못지않게 중요한 ‘표준’이다.
1961년에 계량법 제정하고 수차례 정비
내년 7월부터는 토지·아파트·건물 등의 넓이는 ‘평’ 대신 반드시 제곱미터(㎡)를, 금·은 등 귀금속과 육류·곡물·과일 등의 무게는 ‘근’ 대신 반드시 그램(g)이나 킬로그램(kg)을 써야 한다.
공식 법정 계량단위를 쓰지 않고 평·근 등 비법정 계량단위를 계약서나 광고, 상품 등에 사용하면 처벌받게 된다. 산업자원부는 최근 국무회의에 보고한 ‘법정 계량단위 사용 정착 방안’에서 내년 6월까지 홍보한 뒤 7월부터 단속을 벌여 법정 계량단위를 쓰지 않는 업소나 기업에는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고 있는(?) ‘평’ ‘근’을 못 쓰게 하고 왜 혼란스럽게 하냐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느닷없이 계량단위를 새로 도입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정부는 이미 1961년에 계량법을 제정해 국제계량단위(SI·이른바 미터법)를 채택하고 재래 단위인 척관단위(관·근·돈·평·리 등) 사용을 금지시켰다. 단, 당시에 ‘평’은 제외되었다. 등기부등본이 토지·건물을 평으로 기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20년에 걸친 작업 끝에 1983년에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이 ㎡ 단위로 모두 정비되어 평 단위 사용까지 금지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법이라는 것이 본디 가을 서릿발 같지만 유독 ‘계량에 관한 법률’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찬밥 대접을 받았고, 국민들은 지금까지 ‘평’ ‘근’ ‘돈’을 일상생활에서 평온하게 사용해왔다. 물론 60년대 이래 비법정 계량단위를 쓴다고 처벌받은 사례도 없다.
정부는 2000∼2001년에 평·근·돈을 못 쓰도록 하고, 미터법에 의한 법정 계량단위만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했다. 산업자원부 표준품질팀 관계자는 “2001년에 정부가 강력하게 법정 계량단위 사용을 추진했는데, 건축업자와 금은방 주인들이 반발하고 언론도 ‘당장 국민들이 불편해하는데 왜 쓸데없이 계량단위를 규제하느냐’라며 부정적 시각으로 보도했다”며 “지도·단속 주체인 지방자치단체 역시 민생과 관련된 문제라는 이유로 소극적이었고, 그래서 정부가 또 한발 빼고 말았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금 보증서에는 ‘돈’ 단위와 g을 함께 표기하도록 하고, 등기부등본과 부동산 매매계약서·입주자 공고문에 ‘평’ 단위와 ㎡를 병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고, 병행 표기도 금지하고 법정 계량단위만 단일 표기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뜻이다. 금 가격은 g 단위 단독고시로 바꾸고, 금의 거래 단위도 2g, 4g, 6g 등 짝수 정수로 유도하기로 했다. 산업자원부 쪽은 “유예기간을 더 준다 해도 어차피 과거와 똑같이 될 뿐”이라며 “당장은 불편해도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언젠가는 한번 치러야 할 홍역”이라고 말했다.
경기와 강원이 다르고 야채와 고기가 다르다?
사실 ㎡로 표기하면 ‘평’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예컨대 아파트 면적 30평보다는 100㎡(가로 10m×세로 10m)가, 여의도 면적 260만 평보다는 8.4㎢(가로 4km×세로 2.1km)로 따지면 면적의 크기가 얼추 감이 잡힌다. 전국 국유지 면적 69억 평은 도저히 그림이 잡히지 않지만, 2만3천㎢(가로 230km×세로 100km)로 표기한다면 대략 서울∼대전 거리를 가로로 잡고 거기에 세로로 100km를 곱해주는 식으로 크기를 짐작해볼 수도 있다.
특히 비법정 단위는 품목·지역에 따라 기준이 달라서 혼란이 발생한다. 똑같은 한 평이라도 토지는 3.3㎡이지만 유리는 0.09㎡를 뜻한다. 1근은 관습에 따라 야채는 200g, 과일은 400g, 고추·고기는 600g으로 제각각 다르다. 1마지기 역시 경기 지역은 495㎡, 충청 지역 660㎡, 강원 지역 990㎡로 다르다. 전자저울이 보급되면서 ‘근’ 단위 거래는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식당에서 g 대신 부정확한 ‘ㅇ인분’으로 육류를 팔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인분 대신 100g을 기준중량으로 하는 가격표시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골프와 볼링 등에 쓰이는 야드·파운드 등의 비법정 단위는 국제 관례를 감안해 당분간 병행 표기를 허용하기로 했다.
물론 생활에 익숙한 계량 단위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금방 바꾸기는 어렵다. 정부가 미터법을 받아들인 지 45년이 지났지만 법정 계량단위가 생활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고, 정부와 언론기관에서도 비법정 단위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 141종을 조사한 결과 2478군데에서 비법정 단위를 쓴 것으로 나타났고, 지난 9월 국내 일간지에서 평·인치·야드·배럴·마력 등 비법정 단위를 209번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흔히 쓰이는 자동차 배기량 1천㏄도 잘못된 표기에 속한다. ㏄는 국제 법정 단위가 아니며 세제곱센티미터(㎤)를 써야 한다.
과거에 ‘평’은 ‘척’(30.303㎝)으로 표시된 자로 측정(6척×6척=1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잴 수 있는 도구 자체가 없어 ㎡로 측정한 뒤에 평으로 재환산해 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척관 단위를 전파한 중국도 2000년대 초부터 평 단위를 더는 쓰지 않고 ㎡로 바꿨다. 요즘 중국에 가서 아파트 면적을 평으로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전통 계량단위를 왜 없애려 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 ‘돈’은 엄밀히 말해 전통 계량단위가 아니다. ‘돈’은 원래 금은보석에 쓰는 단위가 아니었다. 한국계량측정협회 윤병수 부장은 “‘돈’은 일본의 진주 양식업자들이 쓰던 것으로, 이들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은방 영업을 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평’도 조선시대에 쓰이던 평의 넓이와는 다른 일본식의 평 개념이 일제시대에 들어와 퍼졌다”며 “일본도 지금은 ‘돈’을 안 쓰고 그램, 온스를 쓰고 있는데, 바보처럼 우리만 ‘돈’을 여전히 쓰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업자들 반발 가능성 높아
정부는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비법정 계량단위인 ‘평’과 ‘돈’을 얼마나 빨리 뿌리뽑느냐에 제도 정착의 성패가 걸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건축업자들이 법정 계량단위 정착에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평’ 표기로 누려온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파트의 경우 실제 전용면적은 25.7평이지만 ㎡로 엄밀하게 재보면 25.6평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평’ 단위로 20평 아파트의 경우 66㎡(20×3.3㎡)이지만 등기부등본상에는 통상 65.5㎡로 표기되어 있다. 실제 거래면적이 공급자가 제시한 평수보다 적기 때문에 주택 구입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등기부등본에는 소수점 두 자리까지 면적을 ㎡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는데, 32평짜리 아파트 역시 등기부등본을 보면 105.6㎡(32×3.3㎡)가 아니라 104.75㎡로 표시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병수 부장은 “법정 계량단위가 정착되면 그동안 ‘평’ 단위를 쓰면서 소비자들이 입었던 손실이 없어지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돈’은 어떨까? 금 한 돈이 3.75g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도 극소수일 뿐 아니라, 금 한 돈을 살 때 3.75g으로 일일이 무게를 잰 뒤에 주는 것이 아니라 대개 기성품 한 돈을 내주게 마련이다. 금은방에서 쓰는 저울을 보면 대개 3.7g까지만 표시된다. 정확하게 3.75g까지 잴 수 있는 계량도구가 없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잴 수 있는 딸림저울은 대형 연구소에만 있다. 깨닫지 못했지만 ‘돈’ 단위를 쓰면서도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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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정 계량단위 때문에 생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들
199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억2500만달러를 들여 쏘아올린 화성 기후 탐사선이 286일의 항해 끝에 화성에 닿자마자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록히드마틴의 탐사선 제작팀이 비법정 계량단위인 야드와 파운드로 탐사선 제원 정보를 작성했는데, 운용사인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조종팀은 법정 계량단위인 미터법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140∼160km 높이의 궤도에 자리 잡아야 할 탐사선이 계획보다 100km 아래인 60km 지점의 낮은 궤도로 진입하면서 대기권과의 마찰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서로 다른 도량형 사용이 어이없게도 탐사선 폭발을 초래한 셈이다.
야드법을 쓰는 미국과 미터법을 쓰는 캐나다의 국경지역에서도 비법정 계량단위로 예기치 못한 과속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비법정 단위인 마일(mile)로 제한속도가 표시돼 있는 미국 도로를 달리던 운전사가 킬로미터(km)를 사용하는 캐나다 도로에 들어서면서 무심코 과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항공기의 경우 국내 항공사가 피트·마일 단위를 쓰는 반면, 다른 국가의 관제탑은 미터 단위를 사용한다면 서로 교신할 때 혼선이 일어나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산업자원부는 “국내총생산(GDP·약 800조원) 중 ‘계량 측정’에 의한 상품 거래가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평’ ‘근’ 같은 비법정 단위를 쓰면서 1%의 오차만 발생하더라도 2조7천억원의 소비자 손실이 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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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 이후 1500년 동안 척관 단위를 써온 중국은 1985년 국제단위계(SI)를 도입해 성공적인 정착 단계에 와 있다. 일본도 1976년부터 토지·건물의 거래·증명에 평 대신 ㎡를 사용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그동안 파운드·야드를 미터법과 병행 표기하다가 2010년부터 모든 상품에 SI 단일표기, 즉 미터법만 쓰기로 했다. EU는 특히 미국에 대해 SI 단일표기를 하지 않으면 2010년부터 미국산 제품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SI 단위 사용에 관한 한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연방정부는 미터법을 쓰고 있지만 미국의 개별 기업은 여전히 인치·파운드를 쓰고 있다. 미국은 이에 따라 현재 자동차 속도계에 km/h와 마일/h를 같이 표기하고, 포장 식료품에는 온스·파운드를 g 단위와 함께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계량측정협회 윤병수 부장은 “사실 국제 계량단위는 미국 때문에 빨리 확산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에 수출하는 나사와 볼트 제품에 인치·파운드 단위를 표기하고 있는데, 미국이 여전히 그 단위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코닥필름 공장에 가보면 미국에 팔리는 필름 롤에는 인치를 쓰고, 아시아 수출제품에는 미터 단위를 쓰고 있다. 똑같은 공장에 다른 두 가지 측정 기계를 갖춰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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