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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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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인기직종, 용역깡패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회사가 노조 파괴를 위해 직접 고용하는 ‘용역경비’들… 고용불안 시대에 장기투쟁 사업장 늘어나자 사용자들은 큰 돈 들여 폭력 행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3월13일 밤 경기도 부천 세종병원 로비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한 떼의 건장한 청년들에 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스크를 쓴 30여 명의 청년들은 로비에서 파업 농성 중이던 수십 명의 여성 조합원들(전국보건의료노조 세종병원지부)에게 물대포를 퍼붓고 소화기를 쏘아댔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소화기 분말 가루와 물대포를 뒤집어쓰고 쓰러졌고 구토와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청년들은 병원 쪽이 고용한 임시직 직원들이었지만 사실상 ‘용역경비’들이었다.

‘노조파괴 전문가’들 스카우트

이들은 주 5일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병원 로비 차가운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성조합원들의 화장실 사용까지 통제하면서 화장실 앞에 일렬로 줄을 세웠다. 또 줄선 여성 조합원들의 온몸을 훑어보다가 “너 참 이상하게 생겼다”며 모멸감을 주고, “한 번만 더 떠들면 화장실을 못 가게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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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병원의 경우 병원 쪽이 교섭을 거부하고 단체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리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와 중재는 아예 실종된 상태다. 대신 병원 쪽이 고용한 용역경비들이 노사관계를 주도하면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노조 사무실도 병원 바깥으로 쫓겨나 가정집에 피난와 있는 형편이다. 세종병원지부 김상현 지부장은 “전기세 많이 나간다고 병원 쪽이 노조 사무실 전기도 끊어버렸다”며 “병원 쪽은 노조의 불법행위를 사전에 막기 위해 임시 계약직 경비를 고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용역깡패’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농성에 들어간 직후 세종병원에 ‘긴급’ 입사한 계약직 청년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한 달마다 재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표면상의 고용 형태만 보면 경비용역업체 소속이 아니라 병원 쪽이 고용한 또 다른 비정규 ‘노동자’다. 그러나 이름이야 ‘보안요원’이든 ‘경비’든 정상적인 병원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실제로 세종병원이 고용한 청년 상당수는 대한경호라는 경비용역업체 소속으로 드러났다.

세종병원 사례는 그동안 노사분규 사업장에 투입돼온 용역경비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다. 잠깐 동안 용역경비원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용자가 용역깡패들을 직접 채용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되면 경비업법의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위장된 용역경비’인 셈이다. 사실 용역경비는 경찰청의 감독명령을 준수해야 하지만, 세종병원 사태 당시 병원 로비에 상주하고 있던 경찰은 이 광경을 빤히 보고도 “마스크 쓴 사람들은 용역경비가 아니고 병원이 직접 고용한 임시직 노동자들”이란 이유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했다. 김상현 지부장은 “회사가 시설보호 요청을 하니까 즉각 경찰이 달려와 출입구를 봉쇄하고 조합원들의 이동을 막았다. 반면에 이번에는 용역깡패들이 공업용 칼로 조합원 게시물을 훔쳐가는 과정에서 조합원의 옷이 칼에 찢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경찰은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발을 뺐다. 이게 말이 되냐”고 분노했다.

용역경비를 동원한 세종병원의 파업 파괴는 큰돈을 들여서라도 용역을 투입해 파업을 깨려는 사용자들의 음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노조에 따르면, 세종병원의 노사관계를 총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병원의 김아무개 본부장은 3∼4년 전 대전성모병원 파업과 천안중부도시가스 노조를 파괴하는 등 화려한(?) 전력을 가진 ‘노조파괴 전문가’로 알려졌다. 노조 와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력을 인정받아 세종병원에 영입됐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윤성봉 연구원은 “사용자들이 한번 큰돈 써서 용역을 투입해 노조를 파괴하고 나면 ‘학습효과’에 따라 재미를 붙여 여기저기서 노사 대립 현장에 용역을 넣으려고 한다”며 “대전성모병원의 경우 노조를 와해시킨 뒤 5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학자금 보조를 없애 크게 경비를 절감했다는데, 이렇게 재미를 본 사용자들이 용역 투입을 더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용역경비업체는 투입된 현장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해야 다음에 사용자들이 또 써주기 때문에 더욱 폭력적으로 노조를 파괴하게 되고, 그래서 폭력이 도를 넘어서게 된다”고 덧붙였다.

“용역 비용만 수십억원 육박”

경기도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100일 넘게 천막투쟁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3월 코오롱 구미공장의 15만V 전류가 흐르는 고압송전탑에 올라갔다. 끝까지 ‘대화는 없다’고 버티는 회사에 맞서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코오롱은 2005년 초 ‘임금삭감과 고용보장’을 맞교환한 노사합의를 파기하고 노조 활동가를 비롯해 78명을 정리해고해버렸고,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자 곧바로 용역경비 120명을 채용해 지금까지 공장에 상주시키고 있다. 코오롱노동조합 황인수 사무국장은 “용역들이 노조 사무실 주위에 빙 둘러서 보초근무를 서고 있다. 이들의 하루 일당만 해도 수십만원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1년이 넘었으니 회사가 용역에 지출한 비용만 해도 수십억원에 육박할 것이다”고 말했다. 시설경비·신변보호·호송경비 외에 노사분규 사업장에 투입되는 용역경비한테는 사용자들이 일당 20만∼30만원씩 준다는데, 노동쟁의 현장만을 전담하는 용역경비는 ‘프리팀’이라고 불린다. 노조 파괴에 성공하면 성과급이 지급되기도 한다. 군산·인천에 공장을 둔 자동차 부품업체 KM&I는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에 피해액 20억원 중 7억원을 ‘용역경비 비용’으로 명시해 청구하기도 했다.

특히 코오롱 공장에 배치된 용역경비원들은 서울에 근거지를 둔 용역경비업체 소속인 것으로 알려지는데, 요즘 용역경비들은 전국 이곳저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활약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합섬(경북 구미)의 경우 140여 명의 용역이 동원됐는데, 100∼200명 단위로 모집공고를 내서 용역을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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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부는 코오롱 공장에 있던 용역을 그대로 빼서 여기에 투입했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전국에 등록된 경비업체는 2515개 법인(용역경비원 12만2천명)이다. 용역경비원 중에는 정리해고된 뒤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고 한다.

1990년대 ‘구사대’에 이어 ‘용역경비’가 최근 들어 노조와 파업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활개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역경비는 세종병원처럼 주로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에 동원되고 있다. 여성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또 용역경비는 주로 장기투쟁 사업장에 배치되는데, 이런 사업장이 늘면서 용역경비와 충돌하는 양상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용불안·비정규직 시대에 노동자들은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더 나빠질 것도 없다” “40살 넘어 일할 데가 어디 있는가”라며 끝까지 극단적으로 저항하고, 그래서 싸움도 격렬해지고 장기화되기 마련이다.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보다는 물러설 수 없는 ‘고용’을 둘러싼 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다 보니 파업은 대개 장기화된다.

경찰·자본·용역의 윈-윈게임?

민주노총 문선곤 노사대책위원장은 “노동 유연화 시대에 사용자와 노동자들의 신뢰가 깨졌고, 파업에 들어가면 한 식구인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짓밟고 용역을 불러 깨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파견 문제가 노사갈등을 일으키고 장기투쟁 사업장을 만드는 심각한 원인으로 등장했는데, 현재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을 책임지고 해결할 주체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용역깡패가 투입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불법파견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화하면 사용자로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조를 깨려고 한다.

민주노동당 윤성봉 연구원은 “용역경비는 경찰, 자본, 용역깡패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합법으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악역을 용역경비에 떠넘기고 자신들은 팔짱 끼고 지켜보고, 사용자는 부당 노동행위 책임을 비켜가면서 남의 손을 이용해 노조를 파괴할 수 있고, 용역깡패들은 용역경비업이라는 근거를 배경 삼아 큰돈을 받고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비업법’ 지키면 바보?


민주노동당은 ‘위장 고용’ 방지와 처벌 조항 두는 개정안 준비

현행 경비업법 및 용역경비업에 대한 경찰청의 ‘감독명령’을 보면, 노사분규가 진행 중이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에는 용역경비원을 배치할 수 있다. 이때 경비원은 동일한 복장을 착용해야 하고 안면을 가리기 위한 마스크·두건 등을 착용하면 안 된다. 또 대규모 용역을 파견할 경우에는 24시간 전에 배치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현행 경비업법 15조는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용역경비는 폭력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용역깡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는 게 현실이다. 또 경비원이 휴대하는 장구는 경적, 경봉, 분사기 등에 국한되는데 현장에서는 소화기·쇠파이프 등이 등장하기 일쑤다. 이 밖에 노사분규 사업장에서 경비업무는 시설·장비·신변 보호를 위한 소극적 방어만 허용되는데도 쟁의행위를 방해하거나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통제해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노조를 파괴하는 ‘불법’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경비업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병덕 변호사는 “경비업법을 위반했을 때 이를 사주한 사업주에 대한 제재나 처벌조항이 거의 없다”며 “세종병원처럼 용역경비원을 정식 임시직으로 아예 직접 채용해 경비업법 규제를 피하고 있는 ‘위장 고용’ 수법을 막을 장치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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