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왜 담당검사를 수시로 바꿨는가”

등록 2005-10-11 15:00 수정 2020-05-02 19:24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소송을 이끌어온 조승현 교수의 힘겨운 승리
“삼성은 1996년 이전으로 돌아가 세금을 내고 제대로 경영권 승계해야 할 것”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다들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했다. 삼성이 어떤 곳인데…. 재벌에 약한 사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한탄도 흘러나왔다. 차일피일 기소를 미루던 검찰이 공소시효에 임박해 기소를 한 뒤에도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10월4일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은 ‘법 상식’으로 보아 지극히 당연함에도 ‘우리 현실’에선 의외로 받아들여질 만큼 재벌, 특히 삼성의 경영권 불법 변칙 세습 사건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에버랜드 CB 관련 송사를 초기부터 이끌어온 조승현(41)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도 “승패의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다”고 털어놓은 데서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바위에 계란치기’, 우리 사법의 현실

[%%IMAGE1%%]

조 교수는 2000년 6월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과 관련해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에버랜드 경영진 33명을 검찰에 형사고발한 전국 법학 교수 43명 중 하나다. 또 시민단체·학계 공동 모임인 ‘삼성 등 재벌의 불법 세습 척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와 함께 ‘삼성의 불법세습 반대운동’(이른바 ‘스톱삼성’)을 앞장서 이끌어왔다.

조 교수 등 법학 교수들의 고발은 3년을 훌쩍 넘긴 2003년 12월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고 이번에 법원의 유죄 판결이란 성과를 이끌어냈다. 물론 1심 판결에 지나지 않지만,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로 연결되는 삼성의 경영권 세습 과정을 사법부에서 불법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띤다. 삼성으로선 이제 경영권 승계를 문제 삼는 주장을 ‘1% 반대 세력의 삼성 발목잡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잃게 됐다. 법원 판결이 나온 이튿날 서울 동숭동 연구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승소, 패소의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면, 이길 수 있다고 본 근거는 뭐였습니까?

“유일반도체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회사 역시 삼성에버랜드건과 하등 다를 바 없는데, 사법적 처벌을 받았거든요.”

유일반도체의 전 사장 장아무개씨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적정가격인 7만원보다 훨씬 낮은 2만원에 발행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2001년 8월 서울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비상장주식은 가격을 산정할 근거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장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부산고법은 장외에서 1주당 2만~2만5천원대에 거래되는 상황에서 주당 3천원에 CB를 발행해 인수한 맥소프트뱅크 대표이사 정아무개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에버랜드 경영진이 주당 1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으로 평가되는 CB를 이재용씨 남매 4명에게 7700원에 발행한 것과 견줄 때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 게 없다.

“법의 형평성을 감안할 때 삼성에 무죄를 선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던 겁니다.”

법학 교수들이 나서서 고발했건만…

그런데도 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절반으로 본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그동안 삼성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거의 예외 없이 삼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삼성SDS의 BW 헐값 발행 사건 같은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이 또한 본질적으로 에버랜드 CB 발행과 다를 게 없거든요.” 또 하나 이유로는 현행 상법상의 조항 때문이라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본래 상법에 신규 주식 발행이나 회사채를 통한 주식전환 때는 기존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인수권을 주고 꼭 주주총회를 거쳐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1984년 개정된 상법에선 이사회를 열어 과반수로 의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에버랜드가 이런 형식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법원에서 삼성쪽의 손을 들어줄지 모른다고 본 겁니다.”

[%%IMAGE2%%]

조 교수는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이 이재용씨 남매에게 CB를 싸게 넘김으로써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것은 객관적으로 보아 당연히 배임임에도 승패의 가능성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자체가 바로 서지 못한 사법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하던 당시 상황으로 좀 돌아가보죠. 어떤 계기로 시작된 것인지….

“이재용씨로 승계 작업이 거의 끝난 1999년 그해 국정감사장에서 이 사안이 많이 거론되고 언론 보도도 이뤄졌는데, 국회나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어느 누구도 법적 고발을 하지 않는 겁니다. (법학 교수로서)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곽노현 교수의 제안으로 ‘법학 교수들이라도 나서서 고발하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시민단체들과 ‘불법세습 척결 공대위’를 꾸렸고, 법학 교수들이 직접 고발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100명 가까운 법학 교수들이 여기에 공감을 표시했는데, 고발장에 최종 사인을 한 이들은 43명이었습니다.”

법학 교수들이 갖는 무게감 때문에 당시 고발은 만만치 않은 사회적 파장을 낳았지만 검찰의 기소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검찰의 기소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2001년 들어 상법상 특별배임, 형법상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5년)는 지나버렸다. 2003년이면 공소시효 7년의 특별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도 공소시효를 넘김으로써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결국 법망을 피해나가게 될 것이란 관측이 높게 일었다.

“고발장을 접수한 뒤 담당 검사가 자꾸 바뀌더군요. 6개월만 지나면 인사 발령으로 담당자가 바뀌어서 대략 6~7차례 교체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하도 자주 바뀌니 ‘수사 김빼기’ 또는 ‘삼성 눈치보기’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요.” 불법세습 공대위의 고문을 맡고 있던 함세웅 신부가 김대중 당시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내 “기업·세법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철저한 수사를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IMAGE3%%]

스톱삼성 운동을 주도한 곽노현 교수는 교착 상태를 보다 못해 송광수 검찰총장 앞으로 경고장 성격의 공개 서한을 보냄으로써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특가법상 배임의 공소시효 종료(2003년 12월2일)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11월24일이었다. 당시 곽 교수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장문의 공개 서한에서 “중앙일보의 계열 분리(1998) 때 삼성 계열사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주당 10만원에 사들였고, 1996년 말 에버랜드 주식의 공정가격은 주당 50만원 수준”이라며 이재용 남매에 대한 CB 헐값(7700원) 발행을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다. 곽 교수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 자리는 국가와 시장의 최대 권력으로서 가장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창출돼야 한다”며 ‘법대로’ 수사를 촉구했다. 곽 교수의 경고 때문이었는지, 노무현 정부 들어 바뀐 분위기 탓이었는지, 아니면 대선자금 수사로 등등해진 검찰의 기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삼성에버랜드 CB건은 결국 검찰의 기소로 이어졌다. 검찰이 1996년 당시 대표이사였던 허태학씨와 재무담당 이사였던 박노빈 현 대표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공소시효 만료를 딱 하루 앞둔 2003년 12월1일이었다.

이건희 회장 수사도 이뤄져야

“검찰에 수사를 촉구할 당시는 참 답답했습니다. 검찰 역사에서 담당 검사가 그렇게 자주 바뀌고 3년이나 끌다가 기소한 사례는 아마 없을 겁니다. 노무현 정권 들어 검찰의 수사 의지가 높아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곽 교수는 이번 법원 판결로 에버랜드 경영진의 배임 혐의가 인정된 만큼 전·현직 사장뿐 아니라 당시 이사로 등재돼 있던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불법 승계 과정의 총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버랜드 CB 발행은 (삼성의 불법 승계 과정의) 한 사례일 뿐입니다. 삼성생명이 (이재용씨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에버랜드에 주식을 싸게(1996~97년 9천원) 넘기고 삼성SDS,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제일모직이 BW나 CB를 이재용씨에게 헐값에 팔아 대규모 이익을 안겨준 것의 전반적인 과정을 밝혀야 합니다. 그걸 통해 잘못된 부분을 원상회복시켜야죠.”

어떤 방법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나요?
“삼성에버랜드의 CB 헐값 발행에서 손해를 입은 쪽은 삼성에버랜드라는 회사입니다. 따라서 현 경영진이 옛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이재용씨 남매에 대한 CB 매각을 원인무효화해야 합니다. 그걸 통해 회사의 손실을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송이 이뤄질 가능성은 제로(0)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법적 정당성으로 봐서 마땅히 그런 소송이 제기돼야 합니다. 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우리쪽에선 현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회사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당연히 내야 할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배임이라고 봅니다. 올 연말까지 삼성쪽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소송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IMAGE4%%]

실제 가능성을 떠나 원상회복된다면 삼성의 체제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요?

“1996년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지금 같은 경영권 승계는 곤란해집니다. 세금을 제대로 내고 다시 받아야겠지요. 삼성의 결단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CB나 BW를 싸게 인수함으로써 세금을 회피한 만큼의 세금을 국고에 넣어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경영권 승계 목적의 CB 발행 막아라

제대로 세금을 낸다면 천문학적 규모가 될 텐데, 그 자체가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요?

“이재용씨가 에버랜드 신주를 받을 당시 평가액은 대략 4조원(삼성생명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가치 포함)에 이릅니다. 다른 상장·비상장 회사의 주식까지 합쳐 지금 가치를 따지면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재용씨가 이런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는 데 들인 비용은 1천억원에 미달합니다. 보유 자산 가치를 낮게 잡아 4조원 수준으로 보더라도 세금은 1조원(실제로 낸 세금은 16억원)을 훨씬 넘습니다.”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법원 판결 직후인 6일 피고발인 신분의 에버랜드 전직 이사를 비롯한 핵심 관련자들에 대해 출국을 금지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CB 발행에 공모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 피고발인과 참고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어서 이건희 회장으로 불똥이 튈지 눈길을 집중시키고 있다.

조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특별 입법을 통해 경영권 승계 목적의 CB, BW 발행 등을 무효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의 CB 발행건 뒤 상속·증여세 포괄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그건 과세의 문제일 뿐이어서 한계를 띱니다. 경영권을 강화하거나 넘겨주는 목적의 CB, BW 발행을 통해 주식시장,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대주주를 중심으로 작전이 횡행하는 걸 막을 장치가 필요합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 일지


·1996년 10월30일= 에버랜드 이사회, 주주배정 방식 CB 발행 결의
·1996년 12월3일= 에버랜드 이사회, CB 125만4천여주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이재용씨 남매에게 배정키로 결의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 이건희 회장 등 33명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
·2003년 9월= 검찰, 삼성 구조조정본부 간부 소환
·2003년 10월= 참여연대, 검찰에 신속 처리 촉구 공개질의
·2003년 12월1일= 검찰,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 불구속 기소
·2005년 1월10일= 검찰, 서울중앙지법 결심공판에서 허태학 징역 5년, 박노빈 징역 3년 구형
·2005년 10월4일= 서울중앙지법, 허태학·박노빈 유죄 선고(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