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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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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번의 연서와 하나의 이별 노래

등록 2012-02-29 06:47 수정 2020-05-02 19:26

1.
친구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2월19일 밤 11시20분, 한겨레신문사 공채 6기 입사 동기인 김종수 기자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대지를 지키는 농부 같던, 겨울을 견딘 만물을 비추는 봄볕 같던, 듬직하고 따뜻한 그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없겠지요.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포착한 세상 사진도 더는 볼 수 없겠지요. 그와 저는 1993년 가을, 20대 끝자락에 한겨레신문 기자가 됐습니다. 합격 소식을 서울 종로에서 가판 신문으로 접한 그는 동대문까지 미친 듯이 웃으며 내달렸답니다. 그날, 저도 혼자 방 안에서 웃고 울고, 역시 미친놈처럼 날뛰었습니다. 며칠 뒤 동기들 모두 경춘선을 타고 강원도 새터로 모꼬지를 갔더랬죠. 옆구리에 한국현대언론사 책들을 끼고서. 밤새 술 마시고 토론했습니다. 어떻게 기자질을 하며 살아갈지…. 잊고 있었습니다. 일상은 꿈을 갉아먹는다지요. 친구를 하늘로 떠나보낸 날, 야속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기억 저편의 일들이 되살아났습니다. ‘기록하는 놈’(記者)의 길에 들어선 첫날의 다짐, ‘초심’을 되새깁니다. (종수야, 그러니 세상 걱정은 버려두고 밝고 푸른 세상으로 맘 편히 가거라. 살아남은 친구들이 네 몫까지 할 테니.)

2.
고나무 기자가 2년 남짓 연재하던 칼럼 ‘입만 살아가지고’를 마치며 조촐한 독자 초대 모임을 마련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 세례를 받으려고, 저도 그 자리 한 귀퉁이를 꿰찼습니다. 2월20일, 강원도 속초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까지 오신 50대의 수의사, 결혼한 지 석 달 됐다는 신혼부부, 독자편집위원 출신이라는 모 신문사 기자…. 그렇게 열혈 독자 십수 명과 밤늦도록 정담을 나눴습니다. 세상을 등진 친구 탓에 심장엔 눈물이 고이는데, 입으론 ‘치맥’(치킨+맥주)을 밀어넣었지요. 그날 맵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올려다본 밤하늘은 얼룩 한 점 없는 깊은 어둠이었습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요. 웃기도 해야겠지요. 산다는 게 참…. 수의사 선생님이 ‘ 기자들이 속초로 놀러오면 숙식 다 책임지겠다’고 하셨는데, 호의는 사양하지 않는 게 예의! 한겨레21부 동료들과 속초에 바닷바람 쐬러 가야겠네요. 앞으로도 종종 독자 초대 술자리를 마련해 임도 보고 뽕도 따야겠습니다.

3.
900. 표지에 찍힌 발행 호수입니다. 창간(1994년 3월15일) 18돌도 코앞이네요.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선배들의 바람이 “보다 더 오래 버티자”였답니다. 민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던 는 박정희의 5·16 쿠데타 사흘 뒤 지령 92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와 은 21세기에도 건재합니다. 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독자 여러분의 한없는 사랑과 격려 덕입니다.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900호 및 창간 18돌을 맞아 의 제호·디자인·기획 등 많은 것에 변화를 줬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스피커를 자임해온, 조화롭되 하나되기를 강요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상을 지향해온,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의 꿈을 담으려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죠. 그러니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는 삼키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여기, 900번째 연애편지를 두 손 모아 바칩니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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