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높이 10m는 넘을 만한 언덕 전체가 건설폐기물들이다. 마을 노인회장님 집 바로 옆에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건설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의 이름은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다.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연상케 하는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석면과 폐기물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어느새 야금야금 넓어지고 점점 높아지고지난 10월17일 방문한 강정리의 풍경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건설폐기물 처리업체였다. 이 처리업체는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현장에 가서 보니 중간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매립을 하고 있었다. 트럭이 쏟아내는 건설폐기물을 잘게 부순 뒤 산더미처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림이 훼손된 부분들도 보인다. 감독을 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풍경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건 이 업체가 자리잡고 있는 장소가 석면이 나오는 광산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현장을 안내하던 마을 주민 한 분은 자신의 시어머니도 석면 피해로 의심되는 병을 앓으셨다고 한다.
어떻게 석면광산에서 건설폐기물을 처리하게 됐는지 물어보았다. 광산은 2011년 캐낸 사문석에서 석면이 검출되면서 채굴이 중단됐는데,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은 광산이 채굴을 하고 있던 2001년 무렵에 들어섰다. 한편에서는 석면이 들어 있는 사문석을 캐내고, 다른 한편에서는 건설폐기물을 처리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주민들도 일이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한다. 마을 이장이던 사람이 업체의 현장소장을 맡으면서 주민들이 말을 꺼내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건설폐기물 처리장은 야금야금 넓어졌고 폐기물 언덕은 점점 더 높아졌다. 참고 지내던 주민들이 문제제기를 하게 된 것은 사업자가 최근 이곳에 사업장폐기물(일반폐기물) 매립장을 지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간판이 ‘중간처리업’이었는데, 아예 2만 평에 달하는 매립장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매립장이 들어서면 전국에서 온갖 폐기물이 이곳 강정리로 들어오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충격적인 사실도 얘기한다. 지금 운영되는 건설폐기물 처리장에서 사문석이 나뒹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석면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석면이 포함돼 문제가 되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 조각도 폐기물 더미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홍성·보령에도 석면 폐광산이청양시민연대의 이상선 대표는 “석면은 위험해서 석면안전관리법이 제정돼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렇게 석면광산 위에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면 석면 위험에 주민들이 노출되게 된다. 정말 큰 문제”라고 얘기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도 “현재 발견된 석면에 대해 검찰청에 고발을 한 상태이다. 석면광산에서 폐기물처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석면과 폐기물 둘 중 하나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인데,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석면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석면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강정리에 있는 석면광산만 하더라도, 진작에 폐광을 하고 석면이 날릴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못하게 했어야 한다. 그러나 환경부의 대책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충청남도도 석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미흡하다.
충청남도에는 이곳 강정리 말고도 홍성·보령 등지에 석면 폐광산이 여럿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영되던 이 광산으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석면 피해를 입었다. 이웃 홍성군 광천읍에서 온 석면 피해자 한 분은 “주위에서 폐암 등으로 사망하는 석면 피해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이것은 강정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 지역 곳곳이 폐기물 매립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폐기물은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지만,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이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생활쓰레기 양은 940.4g에 달한다. 한 사람이 매일 1kg 가까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종량제봉투 폐기물, 음식물류 폐기물, 재활용품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장 폐기물의 양도 엄청나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배출된 전체 사업장 폐기물 발생량은 12만2064t에 달한다. 그 가운데 56%가 강정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건설폐기물이다. 그중에는 재활용되는 것도 있고 매립되는 것도 있다. 매립을 하는 경우에는 계속 매립장이 필요하게 되어 있다. 그 매립장들은 강정리 같은 시골마을을 사냥감으로 찾아다닌다.
우리의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청양군 인구는 3만 명 남짓이고 강정리의 인구는 250명 남짓이다. 이 농촌 지역에서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이 마을이 중간처리장이니 매립장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쓰레기 문제를 상당 부분 떠안고 있다.
매립은 수질·토양 오염 같은 환경오염 문제를 낳고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술을 개량해 영향을 줄인다고 해도 매립은 답이 아니다. 또한 대도시에서 많이 나오는 쓰레기를 시골마을에 갖다 묻는 것은 또 다른 환경불평등의 문제고 정의의 문제다. 이로 인해 시골 주민들의 삶은 파괴되고 있다.
얼마 전 (낮은산)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102t은 미국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배출할까?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과연 이렇게 마구 사고 마구 버리는 삶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의 건설폐기물 언덕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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