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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지 않을 생쥐의 권리

등록 2001-05-08 00:00 수정 2020-05-02 04:21

강건일의 과학읽기

지난해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110명은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동물실험 허가와 관련된 관료적 형식주의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실험동물과 관련된 ‘3R’ 원칙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3R 원칙은 가능한 소량을(Reduction), 고통을 최소화한 방법으로(Refinement), 동물 외의 다른 방법을 찾도록 노력한다는(Replacement)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원칙을 따르는지 엄격하게 검증을 받고 실험허가를 얻기까지 최소한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영국 과학자가 국제적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국생체해부철폐연맹’(BUAV)은 “아직도 동물보호 안전장치가 불충분한데 이를 더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관심사에 반항하는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유사한 ‘헌팅턴의 동물학대행위중지’(SHAC) 등의 단체는 2∼3년째 영국의 세계적 동물실험 위탁기관인 헌팅턴생명과학(HLS)을 폐쇄하려는 운동을 펴고 있다. 이들은 HLS의 대형 주주와 은행에 압력을 가해 현재 거의 파산지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전략이 승리로 끝난다면 다른 동물시험 기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들 단체는 단순한 동물보호가 아니라 일체의 실험에 동물 사용의 중지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들의 이른바 ‘동물권리’(AR) 운동 이념을 제공한 학자로 공리주의 철학자 싱어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의 (1975년)이 45만부나 팔린 것을 보아도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책에서 인종차별,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반대하며 생쥐 등 어떤 고통을 느끼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인 싱어는 자신의 생명윤리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의 변화를 모색한다. 1996년 녹색당 후보로 상원의원에 입후보한 사실로도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는 1979년 등의 저서를 통해 장애를 안고 태어나 평생 고통받을 신생아는 생후 28일 이내에 생명을 끊어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논지는 1999년 프린스턴대학으로 옮길 때 거센 반발에 부딪힌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환경과 생명윤리가 중요시되는 요즈음 우리 주위에도 싱어의 철학을 말하는 이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호킹은 “대다수의 인간이 동물을 먹을거리로 삼는데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연구에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이보다 나쁘다고 하는 것이 가소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AR 철학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미국도 영국식 엄격한 동물보호장치를 지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윤리적인 동물 취급을 위한 사람들’(PETA) 등에 대항한 ‘의학발전을 위한 미국인’(AMP)과 같은 단체가 결성되어 동물실험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어떤 문제이건 결정의 열쇠는 일반 대중이 쥐고 있다. 현실적으로 어느 선에서 평형이 이뤄질지는 각각의 대중 설득 역량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 숙명여대 교수·과학평론가 dir@kop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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