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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를 위한 비타민C 요법

등록 2001-02-28 15:00 수정 2020-05-02 19:21

강건일의 과학읽기

미국의 폴링(1901∼94)은 1954년 단백질의 알파 나선 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으며 1962년에는 핵무기 반대 운동의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많은 세월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살았으나 사망 1년 전 92살의 나이에도 “의학, 초전도성, 원자핵 구조 3가지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폴링의 의학은 1968년 창안한 ‘올바른 분자’라는 의미의 분자교정의학(orthomolecular medicine)을 의미한다. 겸상 혈구성 빈혈이 헤모글로빈 아미노산 잔기의 유전적 이상에 기인한 것임을 밝히기도 한 그는 질병의 중심에 유전자를 두었다. 그는 선천성 대사장애는 물론 효소, 수용체 등 개체적 유전자 발현의 차이가 질병과 관련됐다고 믿었기 때문에 체내의 적절한 분자를 올바른 농도로 만들어 생화학적 이상을 교정하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체 내 성분 중에서 폴링은 특히 비타민C를 중요시했다. 그는 1970년 감기에 이 비타민의 유효성을 주장한 다음 1974년 스코틀랜드의 카메론 등이 발표한 비타민C의 항암 효과에 주목했다. 이들은 말기암 환자에 고용량의 비타민C를 정맥, 경구 투여해 일부에서 극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관심을 가진 폴링은 카메론과 공동으로 연구해 1976년 고용량 비타민C 요법으로 암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폴링의 임상시험은 약 투여군와 대조군이 암 진행의 정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메이요클리닉은 1978년부터 3차례의 임상시험을 실시하였는데, 결과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1989년 폴링은 국립암연구소(NCI)를 방문해 자신의 연구를 변호하며 고용량 정맥투여에 의해 나타난 현저한 증상 개선 사례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NCI 위원회는 비타민C의 효과가 아닌 대체 해석이 가능하다는 등의 결론을 내리고 1991년 그에게 부정적 결론을 전달했다.

그뒤 분자교정의학은 대체의학으로 명맥을 유지한 채 폴링의 불명예로 남게 됐다. 그러던 것이 2001년 2월 호퍼 등은 에 메이요클리닉의 문제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일부 시험이 단기 투여에 그쳤으며 카메론의 결과를 확실히 하기 위한 정맥 투여를 시험하지 않은 문제의 지적이었다. 고용량 경구 투여에서 비타민C는 흡수율이 떨어지고 속히 배설되기 때문에 정맥 투여에 의해서만 적절한 치료 농도에 이른다는 분석이었다.

이들은 폴링과 의학계의 논쟁에서 폴링은 가설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이를 논쟁에 활용하지 않은 반면 의학계에서는 임상적 증거 중심으로, 그것도 서둘러 부정적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체의학도 이론적 가능성과 증거 모두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정통의학계에 대체의학을 쉽게 부정하는 편견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전 숙명여대 교수·과학평론가 dir@kop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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