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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는 역차별이 아니다/ 전해준

등록 2003-09-25 00:00 수정 2020-05-03 04:23

[홍세화와 함께하는 예컨대 | 여성 할당제는 정당한가]

전해준/ 인하대 사범대학 부속고 2학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호주제 폐지 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폐지 찬성쪽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깊게 뿌리박힌 남성 우월주의를 청산하고 남녀 평등구조를 확고히 다져나가는 초석으로써 호주제 폐지를 주장했고, 반대쪽은 실제로 남녀차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 시점에서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소중한 전통을 제거하는 행위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또한, 최근 대중매체를 보면 각종 여성단체 회원들의 성이 두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으로, 사회적으로 차별받아온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남녀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 시점에서 얼마 전 중앙선관위에서 제기한 여성할당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줄곧 육체적인 힘을 사회의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은 창의적 사고력이 요구되는 21세기다. 이러한 시점에서 전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소중한 인적자원 낭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비효율적 사회구조는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여성할당제는 이같은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여성권익 신장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전개돼왔지만 탁상공론에 그친 경우가 허다했다. 이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더 가시적인 결과를 수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여성할당제가 바로 그러한 방안 중 하나이다. 그저 “남녀는 평등하다”는 관념적인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여성할당제인 것이다.

국내 영화배우들이 두팔을 걷어붙여 사수하고 있는 스크린쿼터제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에 떠밀려서 설 자리를 잃을 우려가 큰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여성할당제와 유사한 점이 많다. 사회적 약자 위치에 있는 대상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 이에 따른 역차별을 주장하는 반대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이다. 역차별에 대한 반발은 미국에서 벌어졌던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수세기 동안의 흑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불평등을 보상하기 위해 1960년대에 미국의 고용주들과 기관들은 그들에게 특혜를 주기 시작했다. 이른바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가 그것인데, 이는 미국 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합당한 자격과 능력이 없는데도 단지 흑인 또는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백인보다 손쉽게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승진도 빨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차별철폐조치의 아킬레스건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세력들이 존재해서 이 또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차별철폐조치의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인데,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백인이지만 고조할머니가 흑인인 경우이다. 이처럼 차별철폐조치의 문제점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미국 전역에서 역차별 소송이 주 및 지역 법원에 제기되었다. 심지어 몇몇 소송은 미 대법원에까지 이르렀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고들이 승소했다. 이런 차별철폐조치에 대한 반발은 지금까지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반목은 사회구성원간에 불신의 골을 깊게 하였으며 역차별에 대한 분개로 다시 새로운 차별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여성할당제를 반대하고 나선다면 이는 사례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차별철폐조치와 여성할당제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별철폐조치는 그 대상이 모호하지만 여성할당제는 그 기준이 명확하다.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없다. 또한 여성할당제는 차별철폐조치와는 달리 사회 전반에 걸친 방안이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다. 여성들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인 정치 분야에 여성들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 남녀평등을 이룩하려는 방안인 것이다.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제시하는 대안으로 예상되는 것 중 하나가 여성할당제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후보자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성차별 인식도 투명성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이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면서 뿌리내린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이를 위해 사회 전반에 걸친 꾸준한 개선 의지가 필요하며, 공론(空論)에 그치지 않을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여성할당제는 꾸준히 지속돼온 여성권익 신장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섣불리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나서는 보수세력들은 이제 시대 흐름에 눈을 뜰 때다.




[칭찬과 아쉬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의 여성할당제 확대안을 예로 ‘여성할당제’가 정당한지 여부를 묻는 예컨대 논술에서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의 글이 뽑혔다. 이로써 전해준 학생은 지난주 예컨대에 이어 2연패를 차지했다. 전해준 학생처럼 지속적으로 예컨대에 글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감사드리고, 다른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예컨대 응모글의 양은 늘어나지 않고 있지만, 글의 수준은 고르게 향상되고 있다. 이번주에도 전해준 학생과 함께 전북 군산시 이일여고 성유진 학생, 경기 구리시 동화고 김신철 학생의 글이 최종 후보로 치열하게 경합했다.

전해준 학생의 글이 다른 글에 비해 돋보인 부분은 여성할당제의 현실 적합성을 ‘차별철폐제도’를 시행해온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짚은 부분이다. 그는 글에서 여성할당제와 차별철폐 조치의 차이점을 지적하면서 여성할당제 반대론자들의 주장인 ‘역차별’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처럼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대해 논술을 하는 경우, 주장을 앞세우는 것보다 이미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 경험이 있는 나라의 사례를 통해 그 제도의 현실 적합성을 따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신문, 잡지 등에 실리는 현안을 눈여겨보고 그 흐름을 익혀두는 일이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성할당제를 실시한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 이 제도가 여성의 권리 향상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를 덧붙였다면 더욱 논리적 완결성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성유진 학생은 여성 할당제 확대가 왜 필요한지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최저생활보장제와 스크린쿼터제라는 적절한 예를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최초의 여성 ○○○란 수식어가 많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제약이 길고 강했음을 반증한다”고 지적하는 등 상식을 뒤집는 날카로운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 충분히 논박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신철 학생은 여성할당제가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아 효율성에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는 여성할당제 반대글을 보내왔다. 김신철 학생의 글은 짧고 깔끔한 문장이 빈틈없이 맞물리는 탄탄한 문장력이 빛났다. 그러나 여성할당제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한 논증이 부족했다.

지난 주제글에서도 밝혔듯이, 여성의 정치 진출은 올 한해 한국 사회의 주요한 흐름 중의 하나이다. 선관위의 여성할당제 확대안 외에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전효숙 헌법재판관의 임명은 이런 흐름을 상징한다. 사회 흐름을 읽는 밝은 눈은 논술에 대비하는 기초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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