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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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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취해 현실을 잊으렴!

등록 2003-08-06 15:00 수정 2020-05-02 19:23

[정선태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 새뮤얼 스마일스 ]

부르주아지의 윤리관 예증하는 당의정의 보고… 자본주의 도덕률을 가슴에 새긴 조선의 청년들

거침없이 밀려드는 서구적인 사고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기가 힘에 부쳐서였을까.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격언’ 또는 ‘금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사상을 압축된 형태로 전파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인다. 1910년 7월15일에 간행된 은 ‘격언특집’을 실으면서 무더운 여름을 격언과 함께하라고 권한다. 왜 격언인가. 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탁월하고 위대한 사상은 인간의 꽃이라. 참 진귀하고 희한한 꽃이라. 이 꽃이 열매를 맺은 것이 격언이니, 격언은 사상의 정수(精粹)의 결정이요 인류의 가장 고귀한 노작 중 가장 고귀한 결과이니라.” 그야말로 격언은 ‘온갖 좋은 것을 다 포괄한 영혼의 샘’과도 같다는 말이다.

격언의 시대 연 ‘고농축 영양제’

이 특집은 동서고금의 격언들을 총망라하여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약간 사람만 믿고, 아무에게든지 못된 일을 하지 마시오. ―셰익스피어”(Love all, trust a few, do wrong to none. ―Shakespeare). 1896년 4월에 창간된 이 1898년부터 1면 제호 바로 밑에 ‘각국명담’이라 하여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이래, 격언은 사상을 흡수하고 삶의 좌표와 지침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종의 ‘고농축 영양제’였다. 바야흐로 ‘격언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은 새로운 ‘장르’로 떠오른 격언을 공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완역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대에 ‘역출’(譯出)이나 ‘초출’(抄出)이라는 형식으로 외국의 저작을 소개해야 했던 계몽적 지식인들에게 격언이라는 형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새뮤얼 스마일스(1812∼1905), 지금의 우리에겐 조금은 낯선 이 저술가의 책이 적잖은 ‘인기’를 누렸던 것도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 세네카, 셰익스피어, 나폴레옹, 칼라일, 에머슨, 프랭클린 등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위인’들의 말과 함께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새로운 가르침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의 갈증을 가시게 하는 ‘영혼의 샘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859년 영국에서 간행된 그의 대표적인 책 (Self-Helf)이 처음으로 소개·번역된 것은 1906년 7월1일에 간행된 잡지 를 통해서였다. 물론 부분 번역이었다. 이어서 근대 계몽기의 대표적 학회지 중 하나인 (西友) 1907년 11월호 ‘논설’에 그의 사상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아울러 이 책의 제1장 ‘국민과 개인’이 번역 연재되지만 미완으로 끝난다. 의 논설은 의 주된 목적이 “청년을 고무하여 바른 사업에 근면케 하여 노력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극기와 자제에 힘써 타인의 도움이나 비호를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노력에 의지함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1909년 10월호에는 과 함께 그의 4대 저서라 일컬어지는 이 ‘스마일스 선생의 용기론’이라는 제목으로 발췌 번역된다. 1910년대에 들어서도 그의 저작들은 지식인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드디어 1918년 이 시대 최고의 번역가 육당 최남선이 을 단행본으로 발간한다.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重譯)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06년 아제카미 겐조(畔上賢造)에 의해 상·중·하 3권으로 번역되어 선풍적 인기를 누린 바 있었다. 이 가운데 최남선이 번역한 것은 상권뿐이었다. 1907년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일부분이긴 하지만 단행본으로 발간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잡지 은 의 간행을 축하하며 5쪽에 걸쳐 대대적인 광고를 싣는다. ‘현대문명의 심사(心史), 천고위인의 신수(神髓)’를 펴내는 감회가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성공한 사람이 되려는 당신에 고함

의 광고는 을 “무수한 전기(傳記)의 집합이요, 절요(切要)한 격언의 유취(類聚)요, 인생의 대문제에 대한 가장 절실한 답안이요, 문명발달과 인사성패(人事成敗)의 파노라마요, 수제치평(修齊治平)에 관한 일대 논문”이라고 평가한다. 광고가 흔히 그렇듯 어느 정도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이 평가는 동시대인들의 감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보아도 알 수 있듯 에는 서양인들의 ‘석세스 스토리’가 총집결되어 있으며, 곳곳에 격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성공한 자들의 후일담치고 즐겁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것을.

성공한 나라의 국민 스마일스는, 아니 의 수많은 격언들은, 조선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말한다.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게으름이지 노동이 아니며, 게으름이 개인과 국민의 마음을 잠식하고 또 부식하는 것은 마치 녹이 쇠를 갉아먹는 것과 다름없다고. 어려움이 아무런 기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위협이 되게 마련이지만 용기와 과단성을 갖춘 사람에게는 도리어 유익한 권도(權道)가 된다고. 게으르고 의타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용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인의 ‘민족성’에 절망하던 계몽지식인들에게 스마일스의 이 말은 ‘애정 어린’ 질책이 되고도 남았을 터이다.

그런데 신문 편집인이자 전기작가이기도 했던 스마일스의 이 책은 19세기 빅토리아시대 부르주아지의 엄격한 윤리관을 예증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외부의 지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진짜 노예는 폭군에게 지배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도덕적 무지와 이기심 및 악덕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라고 주장에서 보듯 그의 논의는 철저하게 탈정치적이다. 여기에서 조금만 논리를 치고 나간다면 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전적으로 도덕적 무지와 이기심 그리고 악덕 때문이라는 자책과 자조로 귀결되고 만다. 봐라, 위대한 서양인들의 인내와 용기와 근면과 검약과 신사도를. 이런데 어찌 실패를 맛볼 수 있겠느냐. 조선 청년들은 책상 앞에 그의 ‘훈계’를 걸어놓고 자못 비장하게 다짐했으리라.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러니 배워야 한다. 자신을 수양하고 도덕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스마일스 선생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너희는 오로지 자기수양에 매진하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격언, 그리고 격언의 보고(寶庫)였던 은 사태의 심각성을 진정시키는 데 효력을 발휘하는 ‘충격요법’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차단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데 효과적인 ‘쓴 맛을 감춘 당의정’이었는지도. 조선의 청년들은 이러한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본주의 윤리를 신체에 새기려 애썼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엄혹한 현실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자기수양’에 매진해야 한다며 자신을 다잡았을 터이다.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스마일스의 교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야 그 말이 담고 있는 자본주의적 또는 제국주의적 훈육의 논리를 어찌 알았겠는가.

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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