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초능력자들이 줄행랑친다

등록 2003-04-04 15:00 수정 2020-05-02 19:23

세기 마술사 제임스 랜디가 주관하는 SBS의

초능력자는 존재하지 않는가 SBS의 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능력자나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시한 시험에 통과해 진짜 초능력자임이 입증되면 100만달러(약 12억원)라는 거액의 상금을 받게 된다.

사기 또는 우연의 일치

이 프로그램은 미국·유럽·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 나라에서 명성을 쌓은 세기의 마술사 제임스 랜디의 주관 아래 진행된다. 1980년대부터 초능력에 대해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랜디는 국내에서 ‘숟가락 구부리기’ 열풍을 일으킨 유리 겔러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등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활약해왔다. 랜디는 1996년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하면서 ‘100만달러 챌린지’를 시작했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초능력자들이 그에게 도전했지만 이제껏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랜디의 주장을 증명하듯 6회까지 방송이 진행된 지금까지 아직 100만달러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가 초능력이라고 믿어온 기이한 현상들이 사기나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맨손으로 형광등을 켜는 전기인간은 슬리퍼에 전기매트를 깔고 있었고, 몸에 금속물질을 붙이는 능력도 각도 조절과 마찰력에 의한 것이었다. 손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염동력도, 숟가락을 구부리는 스푼벤딩도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투시와 다우징(일명 엘로드)을 할 수 있다는 초능력자들도 랜디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에 사람들이 많은 호기심을 보였듯 ‘초능력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이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청률은 문화방송의 기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등 같은 시간대 인기 오락 프로그램과 비슷한 15%대를 기록하고 있고, 랜디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인터넷 팬카페가 생겨났을 정도다.

의 검증방법은 믿을 만한 것인가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연출을 맡은 남상문 프로듀서(PD)는 “랜디의 재단에는 노벨상을 받은 칼 세이건, 리처드 파인먼 같은 유수의 과학자들이 엄격한 검증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제시하는 시험도 통계학자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만든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철저하게 구성된 것인 만큼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초능력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가짜’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검증방법은 믿을 만한가

실제로 가짜임이 판명된 이들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줄행랑을 쳤고, 많은 유명 초능력자들이 랜디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증명된 초능력은 없다’는 이 프로그램의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동안 저급한 속임수에 속아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많지만 자신이 가진 믿음과 사고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데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남 PD는 “초능력이 없다고 100%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은 있다. 다만 초능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들의 경우 대부분 돈과 결부된 경우가 많고 위험한 치료행위로 피해를 준다. 보이는 대로 믿지 말고 초능력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능력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의 의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신비한 우주 원리를 부정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일지 모른다.

피소현 기자/ plave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