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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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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나가신다

등록 2003-02-27 15:00 수정 2020-05-02 19:23

안석영의 만문만화에 나타난 근대의 얼굴… 신세대 식민지 청년의 절망과 환상 읽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은 일제시대 정보와 유행의 첨단을 좇던 신세대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들이 만난 세상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또 반대로 이들을 바라본 세상의 눈길은 어떠했을까.

‘만문만화’(漫文漫畵)라는 렌즈로 ‘모던 보이’의 동선을 추적해 근대의 얼굴을 묘사한 (신명직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가 나왔다. ‘흐트러진 글과 흐트러진 그림’, 만문만화는 석영 안석주(1901~49)가 1920~30년대에 선보인 것으로 한컷의 그림에 짧은 글을 곁들인 형태로 신문에 실렸다. 안석영은 영화 감독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사가로 젊은 시절 카프 멤버로 활동한 인물이다. 말풍선이 들어 있는 만화보다 만문만화는 우회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어 일제의 언론검열이 심한 시기 만화 대신 선보인 장르다.

동아시아 변방 도시의 다양한 풍경들

안석영이 1925년 처음 그린 만문만화의 첫 문장이 “류행은 사회를 화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라고 시작했듯 그가 포착한 근대의 코드는 ‘유행’이었고, 유행의 주체는 단연 ‘모던 보이’, ‘모던 걸’이었다. “일초 동안에 지구를 네 바퀴”를 돈다는 전파만큼이나 빠른 유행 탓에 동아시아 변두리 조선땅에도 영화와 유성기와 신학문이 도입됐다. “영화배우 ‘빠렌티노’의 ‘귀밋머리’는 조선 청년들의 뺨에다 염소털을 붙여놓았고, 미국 서부활극에 나오는 ‘카-보이’의 가죽바지는 조선 청년에게 ‘나팔바지’를 입혀주었다.”( 1928.2.7) 하지만 아무리 경성의 모던 보이들이 첨단패션으로 치장해도 뉴욕과 경성의 유행은 같지 않았다. 미디어 덕분에 조선 사람들이 아무리 ‘속성 세계인’이 됐다 해도 경성의 초가집이 뉴욕의 빌딩 숲으로 바뀔 리 없었다.

게다가 같은 경성 안에서도 조선인이 사는 청계천 이북, 북촌지역과 일본인이 사는 남촌은 천양지차였다. 조선인이 사는 종로통을 중심으로 한 북촌지역은 늘 누추했다. 하수구는 막혀 있고, 쓰러져가는 작은 집에 아이들은 앙앙 울어댔다. 노는 물도 달랐다. 종로통 북촌 유흥시설엔 기생이 나오는 ‘료리집’이 많았고, 남촌은 서구식 ‘웨츄레쓰’들이 있는 ‘카페’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모던’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들은 종로통 부근보다는 남촌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부근 유흥공간에서 놀았는데 아예 이들을 ‘혼부라’라고도 했다. 이는 당시 긴자거리에서 놀던 일본의 모던보이들을 ‘긴부라’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들 ‘혼부라’가 노는 본정통(혼마치)엔 미쓰고시·조지야 백화점이 우뚝 들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쇼윈도에 빛나는 상품들을 가득 진열해놓고 휘황찬란한 엘리베이터로 조선인들을 손짓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가 창출한 소비의 유혹은 강렬해도 별다른 생산기반이 없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삶은 늘 팍팍했다. 월급쟁이들은 일년에 한번씩 주는 보너스를 믿고 힘겹게 살아와도, 막상 돈을 받고 나면 무섭게 달려드는 빚쟁이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며( 1932.12.24), ‘스윗홈’을 꿈꾸며 ‘문화주택’(2층집)을 지은 신식커플은 은행빚에 떠밀려 거미줄에 걸린 모기 신세가 된다.( 1930.4.14) 근대적 명물로 시공된 한강 인도교가 금세 만문만화에서 빈번하게 ‘자살의 명소’로 오르내릴 만큼 시대는 암울하다.( 1929.8.7) 그래서 신식문화와 무절제한 소비와 가난이 뒤범벅된 삶의 풍경은 “방문, 장판, 창호문까지 전부 떨어져나가고 찢어진 방에서 값비싼 축음기를 사다놓고 비단 양말을 햇트리면서 춤을 추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1933.2.18)
안석영의 눈에 비친 근대의 기괴한 모습은 모던 걸이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남성 자원’을 조달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대목에 이르면 정점을 이룬다. “사나희의 집행이(지팡이) 대신으로, 산보를 즐기는 사나희의 겨드랑이를 부축하”는 ‘스틱껄’, “사나희의 손을 대신하”는 ‘핸드껄’, 박람회 때 일금 오십전에 키스를 팔다 쫓겨난 ‘키스껄’,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본정통을 오가는 ‘마네킹껄’, ‘백의껄’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1929.6.4) 이들은 외모를 꾸미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겨드랭이 백어가튼 팔뚝을 꼿고서 뚱뚱한 사나희를 백화점으로 낙구어”드렸기 때문이다.( 1930.10.5) 그래서 안석영은 화사한 차림새의 모던 걸을 거지에 비유하며 신세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빈정대며 이들의 ‘기생성’을 꼬집는다.( 1933.2.16)

신식상품의 강렬한 유혹에 넘거갈까

지은이는 안석영의 만문만화 160여점을 분석한 결과 식민지 조선의 근대를 ‘환상과 절망’이란 이중적 키워드로 결론내린다. 영화나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와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신식상품의 범람은 욕망을 강제하지만 자신의 생활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양벽에 꽂힌 한 떨기 꽃처럼, 환상의 꽃에는 뿌리가 없다.”
덧붙여 만문만화 속에 드러난 흥미로운 것은 근대적인 시간과 규율이 아직 일상생활에 자리잡지 않아서 삐걱거리는 장면이다. 예컨대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떼지어 길거리에 나와 자다 순경들의 구둣발 세례를 받는 장면이 그렇다. 잠은 사적 공간에서 자야 한다는 일상적 규율을 강제하려는 순경은 무작정 집에 가라고 채근한다.( 1930.8.3) 또 출근길에 나서던 남편이 가방에 지팡이까지 짚었다가 도로 마루에 픽 쓰러지면서 “세상 없어도 잠을 자야겠다”는 장면도 이와 비슷하다. 상여금이 줄더라도 잠을 자겠다는 말에서 직장에 고용된 월급쟁이임을 알 수 있다. 덩달아 남편의 세탁물을 들고 우물가로 내려서려던 아내도 그 옆에 눕고야 만다.( 1929.7.25.) 출근을 접고 단잠에 빠지는 부부의 표정은 천진해서 더욱 안타깝다. 근대의 ‘시간규율’은 이들을 이렇게 ‘느슨한 평화상태’에 계속 놔두지 않을 것이므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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