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장님한테 전화해봤어?” “궁금하면 당신이 해봐.” “L사장님 연락 왔어?” “아, 올 때 되면 오겠지.” 지난가을부터 봄까지 툭하면 우리 부부는 L사장님에게 해야 할 연락을 서로 미루며 투닥거렸다. 감자값 때문이다.
L사장님은 우리 밭 아래 왼쪽 빨간 지붕 집에 사시는데, 동네 토박이로 발이 넓고 수완이 좋아 웬만한 일은 부탁하면 해결됐다. 본업은 포클레인을 비롯한 중장비 사업인데 농사도 짓고 농산물 저장창고, 버섯농장, 전기 농사까지 문어발 경영을 하고 있다. 우리 농막을 놓기 전에도 L사장님네 포클레인을 불러 나무를 옮겨 심고 터를 다졌다. 지난해 욕심부려 심은 600평 감자밭의 씨감자도 L사장님 감자창고에서 샀다.
가을이 되어 감자 수확을 고민할 때도 의지할 곳은 L사장님이었다. 이장님이나 아랫집 어르신께도 조언을 구했는데, 모두 채산이 맞지 않으니 그냥 지인들 불러 캘 만큼 캐는 게 낫다고 했다.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라 땅속 감자에 대한 기대가 컸던 우리는 좀더 ‘프로답게’ 수확하고 싶었다. L사장님께 연락하니 자기 트랙터로 캐주고 수매까지 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캔 감자가 1200㎏(제1382호 참고 :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0982.html). L사장님은 트랙터에 600㎏씩 든 감자 두 자루를 싣고 가셨다.
그렇게 떠난 우리 감자는 소식이 두절됐다. 감자에 자신 있다면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전화해봤을 텐데. 사실 우리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게만 씨근대며 감자값의 실상을 외면하기를 넉 달. 3주 전 동네 막국숫집에서 L사장님을 딱 마주쳤다. 그리고 연락이 두려운 건 우리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아, 감자가~ 그게 나도 곤란해서 연락을 못했어. 감자가 너무 잘아서 값이 없어. 트랙터값도 안 나오더라고. 돈으로 치자니 몇 푼 안 되고, 감자값은 봄에 밭 로터리 쳐주는 거로 대신합시다.”
지난해 봄,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따로 엑셀에 기록했다. 4월엔 배수공사 100여만원, 비룟값 59만원, 비료 살포기로 비료 뿌려준 이장님께 드린 돈 10만원, 트랙터로 로터리 쳐준 아랫집 어르신께 25만원, 비닐값 10만원, 수동피복기 35만원, 5월엔 씨감자값 35만원, 감자 심는 기구 3만4천원, 감자 심는 날 비가 와서 우비 구입 8천원, 콩씨앗값 3만2천원, 옥수수 파종기 2만5천원, 예초기 35만원, 농약 분무기 16만원, 옥수수 씨앗 7만8천원…. 매달 들어가는 방값에 자동차 기름값은 기록도 하지 않았다. ‘비싼 수업료’란 관용어를 그냥 쓸 때는 별 느낌 없었는데, 감자농사 수업료를 치러보니 와 진짜 비싸네.
상품성 없어 절반은 버린 우리 감자. 지인들 데려와 한 상자씩 캐갔으면 잘 먹었을 텐데. 그래도 밭에 거름은 됐으려나? 후회도 속이 쓰려서 더는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올봄, 우리 부부는 또 연락을 미루고 있다. “L사장님이 언제 로터리 쳐준대?” “때 되면 해주겠지.”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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