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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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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기 위하여

‘쓰는 사람’을 위한 두 권의 책 <계속 쓰기>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등록 2022-04-02 22:21 수정 2022-04-03 00:12

정여울 작가는 작업실 방을 ‘여행’하며 책을 쓰고, 정은정 작가는 주방의 식탁에서 쓴다. 최재천 작가(교수)는 빨리 마감하고 100번도 고친다고 하고, 박찬일 작가(셰프)는 마감이 아니라면 쓸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이런저런 작가들의 집필 비밀을 여행한 다음(<한겨레21> 통권 6호 ‘WRITERS 2’)에 지긋이 뭔가를 쓰려는 마음이 든 사람이 계속 쓰려면?

그런 제목의 책이 나왔다.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한유주 옮김, 마티 펴냄). 글쓰기를 경외하고(그는 유대인이다), 글을 쓰기 위해 명상을 한다(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그래서 사람들이 식료품은 어디서 사느냐고 하는) 지역으로 들어가, 문자메시지와 소음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의 버지니아 울프 옆에, 침대 안의 프루스트 옆에, 아침 산책로의 폴 오스터 옆에’ 나란히 서기 위해서다. 언제 쓰느냐, 매일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신앙심 깊은 사람답게 답한다. ‘다른 걸 필요로 하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그것만으로 빛이 충만하기에. 소설을 완성한다는 행위는 《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인터뷰나 <뉴요커>(미국 시사문화 주간지) 서평보다 가슴 벅찬 일이라고 한다.

책은 글을 쓰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자기 계발서’다. ‘비기닝스’(Beginnings)를 통해 쓰고 싶은 사람을 자리에 앉히고(“오직 행위만이 생산적이다”), ‘미들스’(Middles)에서 두 걸음 간 길을 세 걸음 뒷걸음치는 사람의 어깨를 밀어주며(“우리는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엔즈’(Ends)에서 책을 완성했음에도 질투심에 사로잡힌 이들을 다독인다(“우리의 그림자 책을 알아보고 그 책이 잘되기를 기원하기가 가장 힘든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수십 번을 고쳐 썼는데 한 챕터를 지워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은 적이 있을 것이다, 혹독한 비평을 듣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대한, 미리 겪은 자의 사려 깊은 경험담이 있다. 당연한 말(“잘 쓴 산문은 그 자체로 영향이다”)도 인상적이다. 부사를 줄이고, 다 아는 것은 생략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런 책이 있다.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양혜원 지음, 책읽는고양이 펴냄)에서는 박수근 전시회를 갔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던 박완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시 마흔 살 데뷔는 지금보다 신기한 일이어서 기자가 취재하러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작가가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찾았다고 한다. 당시 작가는 다섯 아이 중 제일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미로 쓰고 싶으신 분들 많지만) 취미로 하기엔 글 쓰는 건 힘들어요.” 마흔이라면 인생의 중앙이다. 박완서는 딱 80살까지 살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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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人’ 취급하고, 젊은이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어르신’으로 모시며, 개인의 즐거운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 등으로 조명해온 ‘노인’의 대안적인 상으로 ‘선배시민’을 필자들은 제시한다. 선배시민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후배시민을 돌보는 공동체 속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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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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