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보다 그것이 좋아>(미국·2017·넷플릭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젊은 예술가 놀라 달링은 재능도 많고 애인도 많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놀라를 “별종”이라 부르지만, 그녀가 여러 애인을 동시에 만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술, 사랑, 섹스, 자유 그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놀라는 동시에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삶을 꿈꾼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당신보다 그것이 좋아>는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 놀라 달링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연출자인 스파이크 리 감독은 1986년 발표한 자신의 동명 영화를 직접 10부작 드라마로 옮겼다. 여성 작가들과 협업한 각색은 원작의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더 진전시킨다. 본인을 ‘흑인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정체화한 놀라는 브루클린 지역 공동체, 흑인 공동체 등과 교감하면서 사회비평가로서도 점점 성장해나간다. 비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여성주의 드라마가 많지 않은 현실에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언내추럴>(일본·2018·왓챠·채널J)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는 일본 부자연사규명연구소(UDI) 소속 법의학자다. 부자연사, 즉 ‘언내추럴 데스’의 이면에는 사회 모순이 녹아 들어간 경우가 많다. 부검이 단순히 사망 원인 규명을 넘어 사회 현실을 해부하는 행위라는 설정은 김은희 작가의 <싸인>(SBS), 노도철 피디의 <검법남녀>(MBC) 같은 메디컬수사극에서도 본 공식 같은 설정이다. 다만 <언내추럴>의 결정적 차별점은 주인공 미스미가 여성이라는 데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편견에 처한 법의학의 현실은, 그 능력을 자주 폄하당하는 젊은 여성 법의학자의 위상과도 맞물린다. 이미 일상에 편재된 성차별과도 맞서야 하는 미스미의 이야기는 기존 남성 중심적 메디컬 드라마보다 한층 복합적인 갈등을 그릴 뿐 아니라 장르적 재미와 여성주의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례로 남았다. 2018년 일본 최고 드라마로 뽑혔다.
<나의 눈부신 친구>(미국·2020·왓챠)
“그때까지 가장 성실하고 똑똑한 건 나였다.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노년의 레누는 그녀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친구 릴라와의 첫 만남을 회상한다. 1950년대 이탈리아, 패전의 후유증을 앓는 빈민촌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욕설과 싸움과 절규가 터져나온다. 그 답답하고 폭력적인 동네에서 마주친 두 소녀, 차분한 모범생 레누와 열정적이고 반항적인 릴라는 전혀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진다. 맹렬한 그리움, 동경, 질투, 애증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지독한 우정은 6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 두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연을 그린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는 에이치비오(HBO)가 제작한 첫 외국어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베일에 싸인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폴리 4부작’을 각색했다는 점도 화제였다. 놀라운 흡인력과 완성도로 호평받은 원작은 여성의 성장과 우정을 그리는 방식에서 눈부신 성취를 보여준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 안에는 전후부터 현대까지 격변하는 이탈리아 정치사회사가 반영돼 있다. 성장사를 곧 시대사로 그리는 대서사시의 주인공이 주로 남성이었음을 고려하면, 여성의 우정에 관한 이 작품의 시선은 사뭇 혁명적이다. 1부에서 제목을 따온 드라마는 현재 시즌2까지 공개됐다.
현실이 더 참혹하다, 한·중·일 스릴러사위와 함께 산에 오른 노부부가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기념사진을 찍어주던 사위는 갑자기 그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는 건너편에서 해맑게 놀던 아이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중국 아이치이가 공개한 범죄스릴러 <나쁜 아이들>은 충격적인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자는 왜 노부부를 죽였는가. 아이들은 어쩌다 목격자가 되었나. 드라마는 그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며칠 전으로 돌아가고, 시청자는 차츰 깨닫는다. 더 충격적인 것은 중국의 현실이며, 범죄는 그 반영일 뿐이라는 사실을. 방임된 아이들, 해체되는 가족, 심화하는 계급 갈등 등 <나쁜 아이들>의 범죄 이면에는 현대 중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돌봄과 차단된 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충격은 더 배가된다. 잔혹한 범행 묘사 없이도 섬뜩한 <나쁜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중국 장르물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이로스>(한국·2020·MBC)
대기업 건설회사의 최연소 이사로 승승장구하던 서진(신성록)은 생의 정점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린다. 사랑하는 딸의 유괴부터 아내의 투신까지, 잇단 비극으로 절망한 서진이 깊이 가라앉으려던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과거 속 인물과 단 1분간 교신할 수 있는 기적. 희망을 엿본 서진은 사라진 엄마를 되찾으려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2020년 MBC에서 공개한 <카이로스>는 미래의 남자와 과거의 여자가 시간을 초월한 공조로 비극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방영 당시에는 SBS <펜트하우스>의 화제성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보는 이들은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서진과 애리가 사건의 근원적 배경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개인사적 비극으로 출발했던 이야기는 어느새 사회적 비극의 진실을 향해 달려나간다. 개발주의에 매몰된 한국 사회의 수많은 참사와 유령들이 그 안에 있다.
<페이크 뉴스>(일본·2018·도라마코리아)
일간지를 그만두고 인터넷 언론사에서 일하게 된 시노노메 이쓰키(기타가와 게이코)는 양 매체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조회 수를 중시하는 편집장은 취재를 중시하는 이쓰키를 답답하게 여기고 그에게 화젯거리를 찾으라는 특명을 내린다. 위기에 처한 이쓰키는 인터넷에서 공분을 일으킨 한 사건을 조사하지만, 파고들수록 진위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결국 그녀는 역시 취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2018년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한 스페셜 드라마 <페이크 뉴스>는 제목 그대로 가짜뉴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속칭 ‘찌라시’ 수준을 넘어 갈수록 진화하는 가짜뉴스는 코로나19 범유행 시대에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이슈이기도 하다. <언내추럴>을 집필한 노기 아키코는 이 작품으로 가짜뉴스의 유해성뿐 아니라 전통 언론의 위기와 매체 변화 등을 폭넓은 시선으로 조명했다. 2부작 특집극으로, 밀도 높은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
<꽃들의 집>(멕시코·2018·넷플릭스)
한국에 막장드라마가 있다면, 해외에는 텔레노벨라가 있다. 텔레비전과 소설의 합성어인 텔레노벨라는 남미에서 시작돼 특유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스토리로 세계적인 유행 상품이 됐다. <꽃들의 집>은 텔레노벨라의 상품성을 잘 아는 넷플릭스가 이 장르의 원조 국가 중 하나인 멕시코와 공동 제작한 시리즈다. 스토리만 보면 전형적인 텔레노벨라의 흥행 공식을 모두 갖췄다. 아버지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 그와 불륜 관계였던 여성이 가게 안에서 목을 매고, 혼외 자식이 등장하며, 결혼을 앞둔 차남이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첫 회부터 이 장르의 클리셰가 총출동한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진부한 소재 안에는 양극화 심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억압, 성소수자와 인종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 등 현대 멕시코의 사회문제가 녹아들어 있다. 형식적으로도 차별점을 보인다. 보통 150회 내외로 진행되는 텔레노벨라와 달리 시즌 평균 15개 에피소드로 구성하고 빠른 편집과 화려한 영상미를 더해 ‘미드’ 같은 형식을 따랐다. <꽃들의 집>은 텔레노벨라의 진화를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다.
<포즈>(미국·2018·넷플릭스)
미국 에프엑스(FX) 채널에서 방영된 <포즈>는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성소수자 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그린다. ‘모든 소수자 그룹 중에서도 밑바닥’에 속하는 비백인 성소수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 블랭카는 아예 “여자, 흑인, 라틴계, 게이, 그다음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탄할 정도로 다층적 억압에 시달리는 흑인 트랜스 여성이다. 이들은 설상가상으로 미국을 휩쓴 에이즈의 공포와도 맞서야 했다. 2018년 첫 공개 당시, 트럼프 정부를 향한 시위와도 같았던 <포즈>는 요즘 보면 더 흥미롭다. 드라마 속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한층 심화한 에이즈 대위기 시대 미국 위로,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 기조에 기름을 부은 코로나19 범유행 시대의 그늘이 겹치기 때문이다. 다만 <포즈>는 상처 입은 소수자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판정을 받은 블랭카가 그동안 미뤄왔던 꿈, 새로운 대안공동체의 삶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모습을 그려낸다.
<스위트홈>(한국·2020·넷플릭스)
코로나19 범유행은 ‘재난 앞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2020년에 등장한 많은 재난물도 한결같이 유사한 물음을 품고 있다. 2020년 넷플릭스가 공개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은 그런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연대’라는 답을 내놓은 작품이었다. 홈드라마 같은 제목을 취한 이 시리즈는, 미증유의 재난으로 가족을 잃고 겨우 목숨을 구한 생존자들이 함께 위기와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아파트 그린 홈 주민들은 어느 날 원인 모를 감염으로 괴물이 된 존재들에 둘러싸인다. 괴물을 피해 방에 숨어 있던 이들은 생존자 그룹이 모인 1층으로부터 안내 방송을 듣는다. “살아남은 우리는 같이 있어야 됩니다. 부디 1층으로 내려와주세요.” 물론 생존자 그룹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어떤 이는 극단적 이기심에 빠져 괴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의 적에 맞서는 동안 대부분은 공고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가장 진한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것”이라는 대사가 위기의 시대에 깊은 울림을 전한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윤곽 6일 낮 나올 수도…끝까지 ‘우위 없는’ 초접전
숙명여대 교수들도 “윤, 특검 수용 안 할 거면 하야하라” 시국선언 [전문]
황룡사 터에 멀쩡한 접시 3장 첩첩이…13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회견 이틀 전 “개혁 완수” 고수한 윤...김건희 문제, 인적 쇄신 어디까지
미 대선, 펜실베이니아주 9천표 실수로 ‘무효 위기’
SNL, 대통령 풍자는 잘해도…하니 흉내로 뭇매 맞는 이유
“명태균씨 억울한 부분 있어 무료 변론 맡았다”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오빠가 무식해서…[한겨레 그림판]
[영상] “사모, 윤상현에 전화” “미륵보살”...민주, 명태균 녹취 추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