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어느 자리에 외부 면접관으로 갔다. 면접 장소에는 하나같이 잘 준비된 지원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미 서류 전형을 통과한데다,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한 지망생이어서 기본 이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면접이 더 어렵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사람을 순간의 편견으로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본모습을 파악하려는 질문이 오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신에게는 이런 약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할 거냐?” 이런 질문이 나오면 대응하기 쉽지는 않다. ‘더 노력하겠다’는 답은 너무 평이하고, 그렇다고 그 약점을 인정하자니 점수가 깎일 것 같기 때문이다.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 삶을 소모 말자
그런데 그날 모인 지원자들은 솔직했다.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고민 중인데 이 자리에서 조언을 주셔도 좋겠다”는 당당함도 갖추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들 훌륭한지 점수를 주기 더 어려웠다.
그러다 “회사 상사가 당신이 낸 기획안을 감정적인 이유로 반대한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상사의 결정에 따른다’가 좋은 답일 리 없다.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때로는 밀어붙이는 강단이 있는지를 보기 위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최선을 다해 설득한다. 그러나 내 소신이 옳다면 한번 밀어붙여보겠다’는 식의 모범적인 답안들이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을 썼다. 순간 면접관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면접관들부터 공감한 듯했다. 다들 자신이 부하 직원으로 있으면서 말이 안 통하는 상사 때문에 열 받아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 나도 저런 자세로 회사 생활을 해야 했어’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남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나의 소중한 삶을 소모하지 말자.’ 이게 오늘날 숱하게 듣고 있는, 현대 심리학이 가르쳐준 영리한 삶의 명제 중 하나다. 그렇다 해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남는 찜찜함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그 찜찜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남과 거리를 두면 일시적으로 상황이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갈등을 빚었던 ‘과거의 순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고쳐 쓸 수 없다면 나 또한 고쳐 쓸 수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고쳐 쓸 수 없다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그 제목처럼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마음의 방어력을 키우려는 지침이 늘어난다. 그 방어력을 키우는 일이 자칫하여 나와 너와 우리의 변화 가능성을 막는다면, 얼마나 삶이 재미없어질까. 도대체 무엇이 앞으로 수많은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는 젊은 친구에게 저런 수동적인 방어막을 치게 했을까.
‘남을 내 방식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람 또한 자신의 방법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남과 나는 같을 수 없다. 그러나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변화의 가능성까지는 못 가더라도, 진짜 마음의 평온을 얻는 길이 아닐까.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문’ 중에 있는 대목이 생각난다.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며, 또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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