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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차 교사의 학생인권 시행착오기

조영선의 <학생인권의 눈으로 본 학교의 풍경>
등록 2020-03-18 21:43 수정 2020-05-03 04:29
조영선의 <학생인권의 눈으로 본 학교의 풍경>

조영선의 <학생인권의 눈으로 본 학교의 풍경>

교육은 온 국민이 당사자이자 전문가다. 학부모는 자신의 학창 시절 기억, 자녀 교육 경험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다. 전문가로 행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깔린 주장을 마치 객관적 의견인 양 내세운다.

최규석의 웹툰 에 나온 대사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처럼, 누구의 눈으로 어떤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교육문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교육문제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그린 풍경을 자기의 시각에 갇힌 풍경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이를 고백하는 순간 보편타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편협된 의견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공동체벗 펴냄)은 제목처럼 ‘학생인권의 눈으로 본 학교의 풍경’이다. 지은이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19년차 교사 조영선씨다. 그는 “내가 그린 학교의 풍경은 매우 편협한 시점에서 그린 것”이라고 책 머리말에서 밝힌다.

지은이는 청소년 참정권을 적극 지지한다. 18살로 선거권 연령이 낮아져 고등학생 3학년 일부가 유권자가 되면서 ‘교실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은이는 교실의 정치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고 반박한다. 그는 투표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문제가 사회와 정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정치의 주체가 되는 건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을 지지하면 학교가 더 교육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학생을 미성숙한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대하자는 ‘학생인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주장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이 책에 실린 ‘교실의 풍경’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험, 체벌 논란, 학생인권조례, 학교에서 잠만 자는 학생들 등등. 요즘 ‘교실 풍경’이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고, 학생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이 책은 ‘좋은 교사’의 성공담이 아니라, 학교에서 좌절한 교사가 학생인권을 만나며 어떻게 학교를 견디고 있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지은이는 애초 교사가 되고 싶었을 때 인권, 배려 같은 아름다운 가치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참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당연히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교직 생활 8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은 8할이 절망이라고 고백한다.

지은이는 10년차 무렵 ‘좋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사명감을 내려놓자, 학생인권 등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 침해가 심해진다’는 주장에는 학생인권이 살아야 교사의 권리도 살아난다고 자신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개정판이다. 2011년 나온 초판 원고를 보완하고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18살 선거권 등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지은이는 10년 전에 품었던 의문이지만, 교사 경력 20년이 다 된 지금 풀지 못한 질문에 함께해줄 사람들을 만나고자 개정판을 냈다고 한다. ‘학교의 풍경’은 지난 9년 동안 일부는 바뀌었지만 크게 바뀌지 않았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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